[데스크시각] ‘국익 보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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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의 기밀문건 유출 사건이 불거지자 해외 언론은 바쁘게 보도경쟁을 벌였다.
사건의 심각성을 처음 알린 뉴욕타임스는 동맹국을 상대로 한 미국의 스파이 활동이 탄로 났다고 보도했다.
바로 다음 날엔 영국의 탐사보도매체 벨링캣과 일간 가디언이 유출 경로를 취재한 기사를 보도했다.
"국익이 부딪치는 문제라면 언론은 자국 국익을 생각하는 게 먼저"라는 반응은 한국의 대통령실 관계자가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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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의 기밀문건 유출 사건이 불거지자 해외 언론은 바쁘게 보도경쟁을 벌였다. 사건의 심각성을 처음 알린 뉴욕타임스는 동맹국을 상대로 한 미국의 스파이 활동이 탄로 났다고 보도했다. 지난 9일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과 이문희 전 외교비서관의 대화 내용이 담긴 문건을 다룬 기사는 미 동부시간으로 새벽 1시21분 홈페이지에 게재됐다. 한국 특파원이 작성한 기사지만 미국에서 매우 급박하게 움직였음을 알려준다.
바로 다음 날엔 영국의 탐사보도매체 벨링캣과 일간 가디언이 유출 경로를 취재한 기사를 보도했다. 게이머들이 즐겨 찾는 채팅 앱 ‘디스코드’의 대화방에서 문건이 처음 유출됐다는 것이었다. 최초 유포자는 같은 대화방의 10여명에게만 문건을 공개했는데, 이 방의 누군가가 다른 곳에 이를 옮기면서 유출이 확산됐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월스트리트저널, 로이터통신도 유럽 각국의 속내와 은밀한 움직임을 알 수 있는 기사를 속속 냈다.
워싱턴포스트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러시아 전투기가 지난해 영국 정찰기를 격추할 뻔했다는 내용과 미국 우방인 이집트가 러시아에 몰래 로켓포탄을 공급하려 했다는 문건 내용을 잇달아 공개했다. 이 신문은 나아가 최초 유포 공간인 디스코드 대화방 회원 2명을 인터뷰해 미 군사기지에 근무하는 20대 총기광을 유출자로 특정했다. 미 정부는 다음 날 기밀문건 유출 혐의로 21세 공군 일병 잭 테세이라를 체포했다.
이들 언론의 보도는 미 정부 입장에서 좋을 게 없는 것들이었다. 동맹을 도·감청하고 있다는 사실은 동맹과 협력이 필요한 외교 당국을 곤혹스럽게 했다. 우크라이나 방공망이 한계 상황에 이르렀다는 내용도 교착 중인 전황을 고려했을 때 감춰져야 할 정보였다. 미·영의 특수부대 수십명이 우크라이나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정보는 러시아를 자극해 자칫 확전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는 것이었다. 언론 보도는 무엇보다 미 정보기관이 누구를 대상으로 어떻게 정보를 수집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했다. 경쟁국인 러시아와 중국은 이를 토대로 보안 체계의 약점을 보완하는 정비를 단행했을 것이다.
무엇 하나 자국에 유리할 게 없는 보도였지만 미국 사회 어디에서도 보도가 국익을 해쳤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국익에 저해되니 보도를 자제하라는 목소리도 없다. “국익이 부딪치는 문제라면 언론은 자국 국익을 생각하는 게 먼저”라는 반응은 한국의 대통령실 관계자가 유일하다. 이 관계자는 지난 14일 브리핑에서 ‘언론의 자유라는 게 늘 국익과 일치하지 않지만’이라는 단서를 단 뒤 그렇게 말했다.
언론 보도에 국익을 들먹이는 건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히는 일과 같아 우스꽝스럽고, 또 폭력적이다. 진실 추구, 사실 보도를 최우선 가치로 삼는 언론의 세계에서 국익은 차원이 다른 범주의 개념이다. 함부로 거부하기 힘든 개념이어서 이 말을 듣는 순간 기자는 자기검열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언론학 교과서에도 ‘국익 보도’라는 말은 없다.
국익은 모호하고 불특정한 개념이다. 어떤 국면에서 ‘국익을 위한다’고 했을 때 그것이 진짜 국익이 맞는지 누가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당장의 국익이 나중에는 국익이 아닌 것으로 판명 날 수 있고,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이번 기밀문건 유출 보도로 미국은 보안관리 체계의 허점을 알게 됐고 개선안을 찾을 것이다. 이는 훗날 있을지 모를 더 결정적인 기밀 유출을 막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최대한 낱낱이 쓰는 게 오히려 국익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국익을 생각하는 게 먼저’라는 권력기관의 말은 불편한 사실을 감추고 싶다는 뜻으로만 받아들여진다.
권기석 국제부장 key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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