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부질없는 ‘국정 안정론 대 정권 견제론’
많은 언론이 내년 총선을 ‘국정 안정론 대 정권 견제론’의 틀에서 분석하고 예측하고 있다. 관련 설문조사도 계속 발표되고 있다. 올 초까지만 해도 국정 안정론이 좀 더 힘을 받는 듯하다가 대일 외교 논란과 대통령실 도·감청 의혹 사건을 겪으면서 정권 견제론이 우세한 양상이다. 내년 총선에서 어느 편이 승자가 될지 궁금은 하다. 그렇지만 선거 결과에 따라 우리 정치 양상이 바뀔 거라는 기대는 없다. 누가 다수당이 되든 대통령과 야당의 싸움은 여전히 치열할 것이고, 여당은 대통령실 눈치를 보면서 작은 존재감이나마 확인하기에 급급할 것이다. 무엇보다 선거 결과에 따라 국민의 삶이 어떻게 달라질지 알 수가 없다. 선거가 권력을 둘러싼 정치인들의 아귀다툼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여야 모두 막판까지 밀어붙이는 벼랑 끝 전술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한국 정치의 미래는 없다. 선거는 벼랑 끝 싸움의 전형을 보여준다. 가치와 정책이 아닌 인물 중심 선거이기에 상대 진영과의 대화와 타협이 더욱 어렵다. 가치와 정책의 차이는 적절한 수준에서 조금씩 양보하고 타협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인물 중심 정치의 권력 다툼은 제로섬 게임이 될 수밖에 없다. 선거에서 패배하면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최근에는 특정 정치인에 대해 무조건 열광하고 상대를 악마화하는 팬덤 정치가 확산하면서 선거가 사생결단 싸움판이 됐다.
정치제도가 민주적으로 잘 작동하는지는 대표성, 책임성, 반응성의 차원에서 평가할 수 있다. 정당은 비슷한 가치와 정책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모인 정치 집단이다. 정당이 권력을 추구하는 이유는 특정 가치와 정책을 대표하는 궁극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한국 정당이 존재하는 이유는 오직 권력 획득뿐이다. 그리고 그 권력은 특정 인물의 전유물이 된다. 선거 결과가 국정 안정이든 정권 견제이든 일반 국민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정당이 가치와 정책을 대표하지 않기 때문이다. 총선이 윤석열 대통령 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싸움이 돼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이 지향하고자 하는 가치와 정책을 둘러싼 경쟁이어야 한다.
선거는 정치 권력의 책임성을 묻는 제도다. 지난 선거에서 선출된 대표들이 지지자들의 가치와 정책을 잘 대표했는지 평가받는다. 민주주의에서 모든 권력은 감시받고 견제돼야 한다. 선거는 시민이 정치 권력의 민주적 책임성을 평가하는 장치다. 그런데 우리 시민은 권력의 책임성을 묻기에 앞서 지지하는 정치세력의 승리에만 집착한다. 권력의 책임성을 묻는 시민은 사라지고 열광하는 팬들만 남은 상황에서 정치 권력은 더없이 오만하고 방자한 행태를 보인다.
정당의 일차적 책임은 시민들의 요구와 필요를 어떻게 충족시킬 것인지 응답하는 것이다. 선거는 팬덤을 과시하는 공간이 아니라 정당과 후보들의 응답성을 평가하는 기회가 돼야 한다. 시민이 정당과 후보에게 먼저 묻고 잘 준비된 대표인지 따져봐야 한다. 우선 묻고 응답해야 할 문제는 양극화 현상이다. 소득 양극화와 빈부 격차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암울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정당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진보와 보수 세력 간 정서적 양극화는 극단을 향해 치닫고 있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는 말뿐이고 정치권은 지지 집단을 부추겨 상대를 악마화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 대일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당장에 논란이 되는 강제징용 배상 문제는 어떻게 매듭지을 것인가?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한 우리 입장은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 한반도를 위험천만한 상황으로 몰고 가는 북한 정권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나같이 시급하고 엄중한 사안인데 어느 정당도 이에 대한 답을 내놓지 않는다. 더 안타까운 점은 우리 시민이 정치권의 응답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대선은 역대 최악의 비호감 선거였다. 국민의 80%는 정당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걱정스럽게도 내년 총선도 비호감 정치인과 신뢰할 수 없는 정당들을 놓고 선택해야 하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 우리 국민이 지향하는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은가에 대해 묻고 답하고 선택하는 선거가 돼야 한다. 권력자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인물 정치를 극복하고 시민들이 원하는 삶의 가치를 찾고 실현하는 정치가 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국정 안정론 대 정권 견제론’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윤성이(경희대 교수·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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