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렬의 시시각각] 중국 시장과 작별할 각오
한ㆍ중 교역, 경쟁 관계로 변화
기술 고도화 및 시장 다변화 절실
지금 한국 경제의 최고 난제는 대(對) 중국 수출 부진이다. 한국 경제의 지정학적ㆍ구조적 문제의 종합판이다. 중국으로의 수출은 지난해 4월 이후 거의 1년째 감소세다(작년 5월 1.3% 반짝 증가). 올 1분기 대중 무역적자만 78억4000만 달러, 전체 무역적자의 35%다. 중국과의 무역에서 이런 적자를 보는 것은 한ㆍ중 수교 30년간 처음이다. 중국은 지난 수십 년간 한국의 황금 시장이었다.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해가 2001년. 그때부터 2022년까지 우리나라는 중국과의 무역에서 6816억 달러의 흑자를 거뒀다. 전체 무역 흑자(7462억 달러)의 91.3%다. 주력 시장에서 탈이 났으니 한국 수출 전체가 온전할 리 없다. 총수출은 6개월 연속 감소, 무역수지는 13개월째 적자행진이다. 전 세계 수출시장에서 한국 점유율은 금융위기 이후 최저(2.74%)로 떨어졌다. 이대로 가다간 ‘수출 강국 한국’이란 타이틀이 위태로워지고, 수출을 엔진으로 삼는 한국 경제가 위기 속으로 빠져들게 생겼다.
시중엔 대중 수출 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갖는 이가 적지 않다. 정부도 그런 쪽이다. 지난해 대중 수출 감소를 대하는 정부 반응은 “코로나 대봉쇄 탓이 크다”는 식이었다. 그러나 중국 리오프닝(경제 재개) 후 몇달이 지나도 수출 부진이 이어지자 입장이 달라졌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최근 “중국 경제가 살아나면 시차를 두고 한국 경제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물러섰다.
막연한 기대감은 문제의 본질을 가린다. 중국의 제조업 육성 전략인 ‘중국 제조 2025’ 이후 한ㆍ중 수출은 보완 관계에서 경쟁 관계로 급속히 전환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ㆍ중 교역 구조에 본질적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중국은 2016년부터 막대한 산업보조금으로 핵심 부품ㆍ소재 국산화에 매진했다. 그 결과가 중국 시장에서 중국 제품의 한국산 대체, 해외 시장에서 한ㆍ중 경합으로 나타나고 있다. 개도국이 기술력을 길러 수입 대체에 힘 쏟는 것은 보편적 전략이다. 한국이 일본을 쫓아간 것처럼 중국도 열심히 한국을 추격해왔고, 달라진 무역수지에 그것이 반영돼 있다.
전 정권이 하지 않고 미뤄둔 숙제가 어디 국민연금 개편뿐일까. 재계와 학계에서 중국에 편중된 무역구조 개편 요구가 나온 지 오래됐지만 제대로 대처하지 않았다. 한ㆍ중 경협의 단물만 즐겼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7년 베이징대 강연에서 중국을 ‘높은 산봉우리’라고 비유하고, 한국을 ‘작은 나라’라고 표현해 국민 자긍심을 실추시켰다. 한국 경제는 중국 주도 공급망에 안주했고, 중국 의존도를 낮출 골든 타임을 놓쳤다. 그 사이 현대차와 롯데 등 한국의 대표 기업들이 중국 시장에서 큰 실패를 겪고 공장을 접거나 철수했다.
앞으로가 문제다. 일각에선 중국과의 외교적 밀착 필요성을 거론한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최근 ‘국익 기초 실용 외교’ ‘대중 관계 개선’을 주장한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읽힌다. 그러나 ‘안미경중(安美經中: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식 접근은 미ㆍ중 패권 전쟁 시대에 유효하지 않다. 대중 밀착이 무역 수지 개선으로 연결될 것이란 인식은 비현실적이다. 대중 무역 수지는 한ㆍ중 관계 비중이 지금보다 훨씬 컸던 전 정부에서 이미 급격한 감소세로 돌아섰다. 무엇보다 중국이 우리의 흑자 시장으로 계속 머무를 것이란 안일한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중국은 내수형ㆍ자립형 경제로 빠르게 변환 중이다. 중국이 무역적자를 감수하면서 대체 가능한 한국 제품을 계속 사줄 리 만무하다. 산업구조 고도화, 초격차 기술 확보, 수출입 시장 다변화 등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실천 과정에서 무역적자 등 고통이 한동안 이어질 수 있다. 그럴수록 중국 시장과 작별하겠다는 각오로 시장 개척과 기술 개발에 더 매달려야 한다. 이미 많이 늦었다.
이상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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