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찬호의 시선] 300만원이 ‘식대’일 뿐이라는 민주당
“(300만원을) 국민이 큰 금액이라고 생각하지만, 실무자들의 차비, 기름값, 식대 수준이다.”
2년 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의원들에 살포된 돈 봉투 금액에 대해 당의 실세인 정성호 의원이 방송에서 한 말이다. ‘1000원의 아침’에 대학생들이 장사진을 치고, 전세 사기로 생활고에 시달린 젊은이가 “엄마 2만원만 보내달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세상을 뜬 마당에 ‘친명 좌장’ 의원님은 수백만 원대 뇌물성 돈 봉투를 ‘차비와 식대 수준’이라 선언했다. 고물가에 한 푼을 아끼려고 피눈물 흘리는 서민의 가슴을 갈가리 찢는 망언의 극치다. 그는 뒤늦게 ‘실언’이라고 사과했지만, 실언 아닌 진담이었으리라고 믿는 국민이 대부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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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봉투 의혹, 궤변과 물타기 급급
‘기획수사’ 주장도 사실과는 거리
자칫 총선까지 의혹에 묶일 수도
」
민주당이 이번 사건을 대하는 기조는 예견된 시나리오를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처음엔 ‘사실무근’이라고 했다가 돈 살포 정황이 적나라한 녹음 파일이 나오자 ‘소액’이라 물타기 하며 ‘검찰의 기획 수사’로 몰아가고 있다. 문제의 파일은 지난해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을 수사할 때 확보된 건데, 여권에 악재가 이어지는 요즘 검찰이 국면전환용으로 언론에 흘렸다는 주장이다.
과연 그럴까. 검찰은 문재인 정부 때 ‘검언유착’ 파동으로 큰 홍역을 치렀다. 그래서 자료 유출에 극도로 민감하다. 문제의 파일은 검찰 수뇌부도 들어보지 못한 1급 보안 자료다. 해당 수사팀의 극소수만 들여다보고 있다. 검찰은 그 인원 전부를 조사했지만, 파일을 언론에 흘린 이는 없음이 드러났다고 한다. 또 파일이 사전에 보도되면 수사에도 좋을 게 없다. 당사자들이 입을 맞추고 증거를 인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검찰은 해당 매체에 “수사에 지장이 우려되니 보도를 자제해 달라”고 간청했다고 한다.
민주당 주장대로 검찰이 파일을 쥐고 있다가 터뜨릴 시점을 쟀다면, 그 시점은 지금이 아니라 이재명 대표 체포 동의안을 국회에 보낸 2월 말이었어야 한다. 그때 돈 봉투 의혹이 함께 터졌으면 “자기들 체포동의안 막으려고 대표 체포동의안 부결시켜주나”는 여론의 맹공에 민주당 의원들이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키기 극히 어려운 상황이 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파일의 출처는 검찰이 아니라, 이정근 전 부총장 측일 가능성이 크다. 이 전 부총장은 파일을 확보한 검찰의 송곳 추궁에 손을 들고 수사에 협조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게다가 민주당이 ‘이 전 부총장 개인의 일탈’로 몰아가니, 이에 분노한 이 전 부총장 측이 “난 전달책일 뿐 몸통은 따로 있다”고 폭로하려고 파일을 흘렸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근거도 있다. 3만건에 달하는 녹음 파일을 이 전 부총장 측이 현재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 전 부총장의 휴대 전화를 압수한 뒤 내용물만 복사하고 돌려줬다. 영장에 적시된 압수 대상은 전화기에 든 정보지, 전화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전 부원장 측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녹음 파일을 언론에 제공하는 게 가능한 상황이다.
검찰 소식통에 따르면 돈 봉투 살포 의혹은 이 전 부총장의 10억여원 금품 수수 혐의 수사를 위해 녹음 파일을 하나하나 듣는 과정에서 튀어나왔다. “관석이 형(윤관석 의원)이 ‘의원들 좀 줘야 하는 거 아냐’라고 얘기하더라” 같은, 상상도 하기 힘든 대화를 들은 수사진은 경악했다고 한다. 혐의자를 수사하다 다른 혐의가 추가로 드러나면 별도의 영장을 발부받아 수사해야 하는 게 검찰의 의무다. 안 하면 직무 유기가 된다.
검찰이 녹음 파일 수사를 일찌감치 마쳐놨다가 최근 터뜨렸다는 민주당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 파일 수사는 간단하지 않다. 한 시간짜리 파일 수사에 10배 넘는 시간이 걸린다. “봉투 10개를 준비했다” 같은 결정적인 발언은 한 시간 동안 대화 중 수초에 불과하다. 그 말을 잡아내려면 같은 파일을 여러 번 들어야 한다. 발언의 맥락과 의도까지 파악하려면 발언 전후 대화도 다시 여러 번 들어봐야 한다. 파일 필사에도 시간이 적지 않게 걸린다. 녹음을 풀어 써주는 프로그램이 있지만 정확도는 90% 정도다. 수사는 100% 완벽한 필사를 요구하므로, 속기사들을 써야 한다. 이런 이유로 검찰이 돈 봉투 의혹을 확실히 파악하고 수사에 나선 것은 극히 최근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게 끝이 아니다. 3만건의 파일 중 검찰이 푼 건 수천개뿐이라고 한다. 남은 파일을 푸는 과정에서 또 어떤 의혹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다.
국민이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 민주당이 궤변으로 시간을 끌며 물타기와 은폐에 급급하다면 1년 내내 녹음 파일 게이트 수사와 재판에 묶여 내년 총선에서 낭패를 볼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강찬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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