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한국 지도를 다시 그리는 단어, 인도태평양
지난 토요일 서울 서소문로 프랑스 대사관에서 성대한 ‘집들이’가 열렸다. 5년 간 공사 끝에 새로 단장한 대사관 신축 개관식에 카트린 콜로나 프랑스 외교장관 외에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와 각계 인사가 참석했다. 특히 프랑스 건축 거장 르코르뷔지에를 사사한 김중업(1922~1988) 건축가의 1962년 완공 당시 원형을 되찾은 ‘김중업관’(옛 집무동)이 재개관의 주인공이었다. 콜로나 외교장관은 축사에서 “원형으로 복원된 이 건물은 이제 서울의 아이콘 중 하나가 될 것”이라며 양국 우호 협력을 강조했다.
콘크리트 처마 지붕이 우아하고 담대한 김중업관은 한·불 교류의 상징임이 분명하지만, 콜로나 장관이 이것만 보러 날아왔을 리 없다. 행사에 앞서 장관은 때마침 인천항에 기항한 자국 호위함 프레리알함에서 이륙한 헬기를 타고 판문점 등을 방문했다. 프랑스 태평양함대 소속 프레리알함은 남태평양에서 출발해 남중국해·동중국해 등에서 순찰 임무를 마치고 인천에 들렀다. 콜로나 장관은 축사에서도 한국을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프랑스의 핵심 파트너국 중 하나”라고 칭하며 “법에 근거한 국제질서에 대한 심대한 문제 제기가 일고 있는” 시기에 양국 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규칙(법) 바탕의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자가 중국을 일컫는다는 걸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이를 겨냥해 주요국들은 일제히 인도태평양(인태) 전략을 쏟아내고 있다. 2017년 1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의 비전 발표를 시작으로 일본·호주·캐나다·인도·영국·프랑스 및 아세안(ASEAN) 등이 제각각의 인태 전략을 냈다. 윤석열 정부가 지난해 12월 ‘규범과 규칙에 기반한 인태지역 질서 구축’을 골자로 인태 전략을 낸 것은 다소 늦은 편이나 국제 보조를 맞춘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다만 전략 안에 ‘중국 견제’를 명시한 미·일·호주·캐나다와 달리 한국을 포함해 인도·아세안 등은 ‘포용’ 등의 단어를 써가며 선명한 전선 긋기에 거리를 둔다. 각국 이해가 다르니 어느 정도 동상이몽은 불가피하다. 중요한 것은 인도태평양이라는 ‘마법의 단어’가 그려내는 한국은 중국이라는 거대한 대륙 세력의 끄트머리에 달린 반도국가가 아니란 점이다. 세계 주요 수출입이 이뤄지는 해로를 끼고 동남아시아는 물론 미국·유럽·호주 등과 자유로운 통상질서의 소망을 운명처럼 공유하는 해양국가다. 어느 외교부 당국자는 이를 두고 “이제 지도 보는 법을 다르게 익혀야 한다”고 말했다. 한·불 수교(1886년)를 포함해 구한말 한반도 외교는 수동적으로 이뤄졌지만, 21세기 대한민국은 달라야 한다.
강혜란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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