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재의 사람사진]백성의 마음 담은 글씨/ 서예가 여태명의 '민체'

권혁재 2023. 4. 20.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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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의 사람사진/ 여태명


2018년 4월 27일, 남북 정상이 기념 표지석 가림천의 끈을 당겼다.
'평화와 번영을 심다'라는 문구가 드러났다.
효봉 여태명이 쓴 글이었다.
그 글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자 효봉의 작업실을 찾았다.

“정상회담 엿새 전 요청을 받았어요.
모두 세 가지 서체로 써서 보냈죠.
훈민정음과 용비어천가 서체, 완판본체, 그리고 민체죠.
셋 중 민체로 쓴 게 채택되었더군요.”

“민체가 무엇입니까?”

“궁중 서체를 줄여서 궁체라 하듯 민간서체를 줄여 만체라고 하죠.
사실 예술가가 똑같은 작업을 똑같이 하면 재미없잖아요.
왕희지 글씨, 누구 글씨, 뭔 글씨만 따라 쓰고 있으니 그냥 복사하는 것 같았죠.
새로운 걸 찾고자 간 고서점에 옛날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글씨가 있는 거예요.
그런 글씨를 보니 아주 재밌더라고요.
온 정성 들여 썼던 백성들의 글씨인 거죠.
그걸 수집해서 연구한 결과로 민체가 나오게 된 겁니다.”

효봉 선생이 모은 자료들이다. 보존 가치가 높이에 2012년 문화재청에서 개인 소장 동산 문화재 실태조사 학술용역 보고서를 만들 정도였다.

결국 민체는 백성의 글씨가 바탕이 된 터였다.
처음 민체가 공개되었을 땐 곱지 않은 시선도 많았노라 효봉은 고백했다.
“어떤 사람이 이런 글씨를 쓰겠냐, 이렇게 못 쓴 글씨를 어디다 쓰겠느냐고들 했죠.”

이렇듯 곱지 않은 시선으로 시작된 민체는였지만,
급기야 역사적인 현장을 기록하는 데까지 이르게 된 게다.

서예 작품이 수장고에 있는 것보다도 이 사회와 호흡을 맞추어야 살아있는 예술 작품이란 게 효봉 선생의 생각이다. 이른바 유리창에 갇혀 있기보다 유리창을 깨고 나와 쓰임새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효봉은 생활 서예를 시작한 게다. 이로부터 실생활에 쓰이는 캘리그라피가 태동했다.

이 민체에는 글씨 모양만 아니라 의미 또한 담겨야 한다는 게 효봉의 생각이다.
“전주로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톨게이트 현판 글씨가 다릅니다.
전주로 들어갈 땐 자음인 ‘ㅈ’을 작게, 모음인 ‘ㅓ’를 크게 썼어요.
자음은 자식이고 모음은 어머니인데 자식이 엄마 품에 안기는 느낌으로요.
전주에서 나갈 땐 자음인 ‘ㅈ’을 크게, 모음인 ‘ㅓ’를 작게 썼어요.
밖에 나가 있는 자식들 건강하고, 성공하라는 의미를 담은 거죠.”
결국 효봉의 글씨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서 비롯된다는 의미였다.

효봉 선생이 백성의 글을 살펴 민체를 만든 건 백성과 글로 소통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가 다섯 해 전 '평화와 번영을 심다'를 민체로 쓴 의미 또한 마찬가지일 터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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