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대량학살 땐…” 우크라 무기지원 시사
윤석열 대통령은 러시아 침공으로 시작한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만약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공격이라든지, 국제사회에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대량 학살이라든지 전쟁법을 중대하게 위반하는 사안이 발생할 때는 (우크라이나를 위한) 인도 지원이나 재정 지원에 머물러 이것만을 고집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19일 보도된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다.
윤 대통령은 “불법적인 침략을 받은 나라에 대해 그것을 지켜주고 원상회복을 시켜주기 위한 다양한 지원에 대한 제한이 국제법적으로나, 국내법적으로 있기는 어렵다”며 “그러나 전쟁 당사국과 우리나라의 다양한 관계들을 고려해, 그리고 전황 등을 고려해 적절한 조처를 하는 것뿐”이라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명확하게 우크라이나를 위한 ‘무기 지원’을 언급하진 않았다. 그러나 러시아의 ‘대규모 민간인 공격’ 등을 전제조건으로 달고 ‘인도 지원이나 재정 지원’ 이상의 지원이 사실상 군사 지원밖에 없다는 점에서 윤 대통령이 살상 무기 지원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의 인터뷰 답변은 ‘전제가 있는 답변’”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북한 위협 대응위해 초고성능 무기 개발 중” 괴물미사일 현무-5, EMP탄 등 지칭한 듯
그러나 ‘대규모 민간인 공격’ 같은 전제조건은 이미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했다는 지적에 대해선 “(우크라이나) 상황에 대한 평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만 답했다. 이 관계자는 “(윤 대통령의 답변은) 있는 그대로 이해하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의 인터뷰 답변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한 한국 정부의 딜레마 상황을 보여준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는 그동안 대외적으론 ‘군사 지원 불가’ 입장을 밝혔고, 전투식량이나 의약품 등만 지원해 왔다. 러시아의 보복 조치 가능성과 북한 문제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고려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한국을 향한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군사 지원 동참 압박은 갈수록 커졌다. 게다가 이달 말 미국 국빈 방문도 앞두고 있어서 윤 대통령이 군사 지원 가능성을 열어둔 발언을 한 것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러시아는 불쾌함을 표현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윤 대통령 발언 관련 질문에 “한국은 러시아에 대해 비우호적 입장을 취했다”면서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을 시작하면, 이는 간접적으로 이 분쟁에 대한 특정 단계의 개입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측근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소셜미디어에 “적(우크라이나)을 돕겠다는 새로운 사람이 등장했다”고 썼다. 그는 “한국 국민들이 그들의 가장 가까운 이웃인 북한에서 최신 러시아산 무기를 보게 되면 뭐라고 말할지 궁금하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북한 위협 대응과 관련해선 “확장억제도 있지만 초고성능, 고위력 무기를 개발해 준비해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이 언급한 초고성능·고위력 무기는 군 당국의 비닉(秘匿) 무기들로 해석된다. 군 당국은 적 상공에서 강력한 전자기파를 방출해 장비를 무력화하는 EMP(전자기펄스)탄과 고성능 대형 수중발사장치, 괴물 미사일로 불리는 현무-5 등을 개발 중이다. 현무-5는 지하 100m 이상 깊이에 있는 ‘김정은 벙커’도 타격이 가능하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오후 브리핑에서 “3축 체계(킬 체인·한국형 미사일방어·대량응징보복)와 관련해 보다 정밀하고 위력이 더 크게 반격·타격하는 능력을 개발해 왔기 때문에 그런 맥락에서 윤 대통령이 답변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북핵 문제를 두고는 “남북 간 핵이 동원되는 전쟁이 벌어진다면 이것은 남북한의 문제만이 아니라 동북아 전체가 아마 거의 재로 변하는 일이 생기지 않겠냐”며 “이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동맹국들과 일본이 함께 참여하는 아시아판 나토 핵 계획 그룹을 구상하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강력한 핵 공격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는 나토 이상의 강력한 대응이 준비돼야 하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어 “북핵 위협에 한·일 다 공히 노출되고 있기 때문에 한·미·일 3자 협력이 필요하다”며 “다만 확장억제는 한·미 간에 논의가 많이 진행돼 왔기 때문에 이것을 세팅하고, 일본이 참여하는 것은 큰 문제가 없지 않나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남북 정상회담 추진에 대해선 “선거가 임박해 남북정상회담을 활용하고 결국 남북관계가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일을 반복했다”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은 “유권자에게 보여주기 위한 남북 정상회담은 열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평화 증진을 위한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고 말했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현일훈·박소영·이근평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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