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비 최강 ‘피지산 몬스터’…태극마크 잡으러 전력질주

피주영 2023. 4. 20.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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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의 섬나라 피지는 럭비 강국이다. 피지에서 온 ‘럭비 괴물’ 라바티는 한국의 올림픽 사상 첫 승을 이끌겠다고 다짐했다. 김경록 기자

“아직 한참 멀었어요. 어머니가 한국에서 최고가 되기 전엔 집에 올 생각하지 말래요. (웃음)”

이모시 라바티(20)는 현대글로비스 럭비단의 피지 출신 신인 선수다. 한국 성인 무대에 데뷔한 소감을 묻자 유창한 우리말로 이렇게 대답했다. 지난 8일 끝난 2023 코리아 수퍼 럭비리그 1차 대회 최종전에서 라바티는 최강 한국전력을 상대로 공·수에서 압도적인 활약을 펼친 끝에 팀의 41-39 승리를 이끌었다. 그는 이 경기에서 최우수 선수(MOM)에 선정됐다.

한국에서 4년째 활약 중인 라바티의 최종 목표는 태극마크다. 김경록 기자

수퍼 럭비리그는 이번 대회에 처음으로 외국인 선수 제도를 도입했다. 최근 서울 마포구 중앙일보를 찾은 라바티는 “턱수염도 나고 덩치도 커서 무섭다는 말을 많이 듣는데, 그건 경기 때 이야기다. 평소엔 팀의 ‘막내’ 또는 ‘부드러운 남자’로 불린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럭비는 타원형 공을 들고 달리는 스포츠다. 상대 진영 끝 H자 골대 라인 넘어 공을 찍거나(트라이) 공을 차서 통과시키면(dropgoal, 페널티킥) 점수를 얻는다. 세부 종목으로는 7인제와 15인제가 있다. 7인제 올림픽과 15인제 월드컵이 메이저 대회다. 한국 럭비는 2020 도쿄올림픽에서 처음으로 올림픽 본선 무대를 밟았다. 월드컵에는 한 번도 나가보지 못했다. 라바티의 고향 피지는 럭비 최강국이다. 오세아니아의 330개 섬으로 이뤄진 작은 나라 피지의 인구는 89만명. 하지만 피지는 2016 리우올림픽과 도쿄올림픽 럭비(7인제)에서 잇달아 금메달을 따냈다.

최근 성인 럭비 무대에 데뷔한 라바티는 "올림픽 첫 승을 이끄는 꿈을 꾼다"고 했다. 김경록 기자

라바티는 피지 ‘럭비 명문가’ 출신의 특급 유망주다. 그의 삼촌 헨리 스페이트(35)는 국가대표 출신으로 수퍼스타 윙으로 활약 중이다. 또 다른 삼촌 이페레이 미라와콰(43·은퇴) 역시 국가대표 출신이다. 현재는 피지 청소년 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다. 키 1m99㎝의 거구로 현역 시절 괴력으로 상대를 제압했다.

라바티는 두 삼촌의 강점을 물려받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중학생 때 키가 이미 1m80㎝를 넘었고, 체중도 100㎏에 가까웠다. 몸싸움과 태클이 주무기인 포워드 포지션이지만, 폭발적인 스피드까지 갖춰서 성인 선수와 겨뤄도 밀리지 않았다.

피지에서도 특급 유망주였던 라바티는 고향을 떠나 한국에 정착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김경록 기자

한국 땅을 밟은 건 16세 때인 2019년 12월이다. 전력 보강을 위해 외국인 선수를 물색하던 서울 사대부고 럭비부의 영입 제의를 받아들였다. 라바티는 “어머니와 함께 본 드라마 몇 편과 축구 스타 손흥민 외엔 한국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면서도 “하지만 나는 모험심이 강하다. 피지에서 편하게 운동하는 것보다 미지의 땅 한국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이 럭비 인생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고 말했다.

라바티는 2020년 3월 신입생으로 서울 사대부고에 입학했다. 이때부터 낯선 이국땅에서 럭비보다 힘든 적응 기간을 보냈다. 학교 수업을 마친 뒤엔 럭비부에 합류해 훈련했다. 숙소에 돌아와선 3~4시간씩 한국어 공부를 했다. 라바티는 “고교생이 된 친구들은 본격적으로 수능 공부를 시작하는데 나는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생전 처음 보는 한글을 익히는 게 급선무였다. 낮엔 럭비공을 들고 뛰다 밤엔 ‘가나다’ 공부를 했다”고 털어놨다.

몸싸움과 태클이 장기인 라바티. 아직 20세인 그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김경록 기자

수업과 수업 사이의 쉬는 시간 10분은 라바티에겐 귀중한 한국어 공부 시간이었다. 손짓을 섞어 서툰 한국어로 친구들과 대화를 나눴다. 평소 힙합 음악을 즐겨 들은 것도 도움이 됐다. 랩 가사를 외우면서 한국어 실력이 늘었다. 코로나19가 겹치면서 고교 3년 동안 한 번도 피지에 가지 못했다. 라바티는 “코로나 덕분에 오히려 한국 생활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화상 통화를 할 때마다 ‘끝까지 해내고 돌아오라’는 어머니의 말씀을 새겨들었다”면서 “2년 정도 지났을 무렵 웬만한 말은 다 알아듣고 할 수 있게 됐다. 지금은 한국 MZ 세대들의 신조어도 문제없다”고 자랑했다.

사대부고는 라바티가 뛴 3년간 고교 럭비를 평정했다. 그는 졸업과 동시에 현대글로비스 럭비단에 입단했다. 남용훈 사대부고 감독은 “당초 라바티를 포함해 3명의 피지 선수가 입학했는데 둘은 향수병과 부상으로 중도 하차했다”면서 “라바티는 누구보다 성실한 선수다. 특출난 재능까지 가졌으니 분명 세계적인 스타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라바티의 목표는 태극마크를 다는 것이다. 럭비에선 5년간 한 나라의 럭비협회 등록 선수로 뛰면 해당 국가의 대표 자격을 준다. 월드컵 등 국제 대회에서도 뛸 수 있다. 하지만 올림픽에 나가려면 귀화를 해야 한다. 라바티는 “내 꿈은 올림픽에 나가서 한국 럭비 사상 첫 승을 거두는 것”이라면서 “카타르월드컵에서 손흥민의 활약을 보며 감동을 받았다. ‘럭비계의 손흥민’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 이모시 라바티

「 생년월일: 2003년 6월 12일(피지 출생)
국적: 피지
체격: 키 1m90㎝, 몸무게 110㎏
소속: 서울 사대부고 럭비부(2020~22년)-현대 글로비스 럭비단(2023년 입단)
포지션: 포워드
별명: 피지산 몬스터
꿈: 한국 국가대표로 올림픽 출전
취미: 한국 드라마 보기, K팝 듣기

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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