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마셨다고요? 배가 불렀군요" 요즘 MZ세대가 푹 빠진 '거지방'을 아시나요?_돈쓸신잡 #94

박지우 2023. 4. 19.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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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카카오톡 오픈 채팅 '거지방'에 올라온 내용이다. '거지방'은 절약을 목표로 삼은 청년들이 모여 지출 내역을 공개하고 절약 팁을 공유하는 공간이다. 이미 거지방이란 이름으로 개설된 채팅방만 수백 개에 달한다. 그 안에서 누군가가 택시를 타거나 커피를 사 먹었다고 고백하면 곧장 따가운 질책이 날아온다. "당신은 거지라는 것을 잊었나요? 정신 차리세요."

월급은 제자리인데 물가가 무섭게 오르다 보니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는 청년들은 '거지방'에서 비슷한 처지인 사람을 보며 동질감을 느낀다. 또한 절약을 일종의 놀이처럼 유쾌하게 즐기기도 한다.

「 수백 개나 생긴 거지방 」
Unsplash
'거지방' 트렌드를 다룬 기사도 제법 나왔다. 그 기사에 달린 댓글 상당수는 이렇다. "이렇게라도 절약을 하는 모습이 기특하다", "월급 영끌해서 사치하는 것보다 훨씬 낫네요", "젊었을 때 아껴야 잘 삽니다", "이런 건 어른들도 배워야 합니다"

물론, 고물가 시대와 상관없이 절약은 그 자체로 가치 있는 행동이다. 절약은 단순히 돈만 아끼고 끝나는 게 아니다. 불필요한 지출을 제거한다는 건 시간 낭비를 막고 에너지도 아끼는 좋은 습관 그 자체다.

하지만 '거지방'이 수백 개씩 생기고, 생수 한 병 사 마시는 것까지 누군가에게 기꺼이 질책받으며 고강도로 절약하려는 청년들이 급증한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자발적으로 돈을 아끼는 것과 돈을 아낄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 지갑을 닫는 것은 다르다. '거지방' 확산은 확실히 후자의 영향이 크다.

「 불안한 청춘 」
Unsplash
올해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부터 짚어보자. 사실상 대한민국은 수출로 먹고사는 국가다. 하지만 주력 산업인 반도체가 흔들리자 작년부터 올해까지 무역 적자가 이어지고 있다. 전 세계 주요 기관은 올해 우리나라 성장률이 1%대로 주저앉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기업들은 당연히 신규 채용 규모를 줄일 수밖에 없다.

조금 더 현실과 가까운 통계를 보자. 3월 한 달 동안 우리나라 취업자는 1년 전 같은 기간과 비교해 47만 명이나 늘었다. 하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60세 이상 노인 단기 일자리 증가가 대부분이다. 이 기간에 오히려 청년 취업자는 9만 명 가까이 급감했다.

여러모로 보더라도 현재 경제 상황은 청년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거지방' 활동을 열심히 하면서 돈을 아낀다고 하더라도 경제 사정이 크게 개선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 절약만으론 부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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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적인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지만, 인풋 자체에 변화가 없다면 그 안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아웃풋을 확 개선하긴 어렵다. 즉, 소득 자체를 올리지 않고 절약에만 집중하는 건 바람이 반쯤 빠진 바퀴가 달린 자전거에 올라타 열심히 페달을 밟는 것과 비슷하다. 페달을 밟으면 앞으로 향하긴 향하지만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는다.

또한 극단적인 절약은 오히려 장기적으로 봤을 때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불필요한 지출과 필요한 지출을 구분해야 하는데, 무작정 아끼다 보면 필요한 곳에도 돈을 안 쓰게 된다. 그 결과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면 오히려 손해가 큰 절약도 분명히 있다.

500원, 1000원이라도 아끼려는 노력이 의미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충분히 의미가 있다. 또한 돈을 아끼는 과정을 처량하게 생각하지 않고 '거지방' 같은 곳에서 마치 놀이처럼 절약하는 것 역시 긍정적인 면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이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기 위해선 500원, 1000원이라도 더 벌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충분한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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