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노을 속 시간을 가로지르는 예술열차
발원지 밤샘 앞 알록달록 나무의자
신천습지 동식물 ‘만경강 허파’
‘나는 기러기 쉬는 곳’ 비비낙안
만경강(萬頃江)은 호남평야를 가로지르는 전북의 젖줄이다. 전북 완주군 동상면 사봉리 밤티 아래에 있는 밤샘(진틀)에서 발원해 완주군·전주시·익산시·군산시 등 전북 북부 지역을 동에서 서로 흘러 서해로 유입되는 길이 약 98㎞의 하천이다. 깊은 산속 옹달샘에서 시작된 물줄기는 시냇물이 되고 강물이 돼 바다로 흘러간다. 동상저수지와 대아저수지를 거쳐 고산천으로 흐르다 소양천과 합류한 뒤 삼례읍에서 전주천과 만나 삼례대교부터 큰 강을 이룬다. 그 물길 따라 볼거리가 즐비하다.
밤샘은 소양면과 동상면이 경계를 이루는 원등산 아래에 있다. 밤나무가 많아 이름이 붙여졌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밤티마을에서 밤샘으로 가는 길은 마을길과 임도로 이어져 있다. 완만한 데다 편도 거리가 1㎞ 정도로 가까워 가벼운 마음으로 걷기 좋다. 밤샘 입구까지 승용차를 이용해 들어갈 수도 있다. 밤샘 표지목 옆에 돌로 쌓은 곳이 샘이다. 최근 알록달록한 나무의자를 설치해 여유롭게 쉬어갈 수도 있다.
이 물이 흘러 처음 크게 모이는 곳이 서로 붙어 있는 동상저수지와 대아저수지다.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대아저수지는 인공적으로 조성됐음에도 자연스럽고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특히 가로수가 울창한 20㎞ 호반도로는 드라이브 코스로 안성맞춤이다.
용진읍 상운리 회포대교에서 삼례읍 하리 하리교까지 만경강 일대에 2.4㎞ 길이의 신천습지가 펼쳐져 있다. 두 하천이 만나면서 하천의 경사가 완만해지고, 하천의 폭이 넓어져 유속이 급속히 떨어지면서 하천이 운반해 온 자갈과 모래들이 퇴적돼 군데군데 하중도(河中島)를 만들었다. 농업용수를 얻기 위해 만든 수중보가 안정적인 유량을 유지해 주고 있어, 이곳에 동식물들이 자생하면서 습지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신천습지에는 줄, 갈대, 부들, 연꽃을 비롯한 67종의 식물과 검은물잠자리와 하루살이, 개개비, 물닭 등이 서식하고 있다. 특히 멸종위기종인 가시연꽃, 감소추세종인 통발과 식물구계학적 특정종으로 등급이 높은 긴흑삼릉, 자라풀, 수염마름, 왜개연꽃, 질경이택사 등이 자라고 있다. 환경부는 만경강과 동진강 일대의 하도 습지 26곳 중 유일하게 신천습지를 습지보전 등급 상(上)으로 분류했다.
인공제방 아래로 산책로가 조성돼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다. 만경강 본류와 소양천이 합류하는 회포대교에 오르면 신천습지를 위에서 내려다볼 수도 있다. 보는 위치에 따라 풍경이 색다르게 다가온다. 신천습지는 도보로 한 바퀴 도는데 약 2시간 소요된다.
신천습지에서 멀지 않은 하류에 비비정(飛飛亭)이 있다. 조선 선조 때 무인 최영길이 별장으로 지은 정자다. 후에 그의 손자 최양이 송시열에게 정자의 기문을 부탁했는데, 송시열이 중국의 명장 장비와 악비에서 두 글자를 따 ‘비비정’이라 명명했다. 최씨 가문이 대대로 용맹과 충효를 중시하는 무인 집안이라는 이유였다고 한다.
‘날아가던 기러기가 쉬어가는 곳’이라는 뜻으로, 옛날 선비들이 비비정에 올라 한내 백사장에 내려앉은 기러기 떼를 바라보며 풍류를 즐긴 것을 ‘비비낙안(飛飛落雁)’이라고 했다. 그만큼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한내란 큰내라는 뜻으로 호남으로 빠지는 관로의 요충이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을 한 길목이었고, 동학혁명군이 서울로 진격한 월천이기도 하다. 비비정은 소실된 뒤 1998년 복원됐다.
비비정에 오르면 한내를 가로지르는 옛 만경강 철교가 한눈에 보인다. 일본이 호남평야의 농산물을 반출하기 위해 세운 다리다. 당시 한강철교에 이어 2번째로 길게 나무로 만들어져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다. 2011년 인근에 호남선 철교를 새로 놓아 폐철교가 됐다.
폐철교 위에 비비정예술열차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새마을 열차 객차 네 량을 개조해 각각 레스토랑, 카페, 수공예품 가게, 갤러리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 맨 마지막 칸의 카페에서 바라보는 만경강의 노을이 예술이다.
완주=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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