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퀴벌레로 변하면?" 이 질문에 열광하는 이유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전미경 기자]
화분을 키우면서 날벌레가 많이 생겼다. 예전 같으면 화분을 몽땅 갖다 버렸겠지만 화분들이 예뻐진 지금은 날벌레와 같이 사는 쪽을 택했다. 지저분하거나 징그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어쩌다 눈에 보이면 살포시 눌러 눈을 감게 만들었다. 살충제를 뿌리지 않았다. 벌레와 그냥 함께 사는 거였다. 원래 그랬던 거처럼. 그들은 반려 벌레가 되었다.
"내가 만약 바퀴벌레로 변하면 어떻게 할 거야?" 조카가 자기 부모에게 질문했다고 한다. 요즘 이 질문을 물어보는 것이 유행이라 하는데. 유행에 민감한 편은 아니지만 괜히 한번 따라 해보고 싶었다. 유행이 괜히 유행인가.
그리고 궁금했다. 늙은 엄마에게서 어떤 답이 나올지. 엄마는 진지했다. 웃자고 한 질문에 걱정을 했다. 사람이 왜 바퀴벌레가 되니, 그것도 네가 왜? 무슨 이유가 있을 거 아니냐, 빨리 사람으로 돌아올 수 있게 박사를 찾아갈 거 같다고, 말했다. 바퀴벌레여도 사랑할 거야라는 뻔한 답보다 어쩌면 가장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답변인지 모른다. 내가 벌레처럼 쓸모없는 사람이 된다면... 엄마는 그렇게 한다는 뜻일 게다.
▲ 카프카 <변신>(문학동네) 속 일러스트. |
ⓒ 문학동네 |
소설 속 주인공의 결말을 알고 있다면 마냥 재밌고 심심풀이 유행으로만 치부하기 어렵다. 이 질문은 굉장히 심오하고 철학적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질문과 답하는 사람의 마음까지 읽을 수 있으니 놀이에도 내심 진심이 포함돼 있다.
부모들 대답은 대부분 비슷하다. '바퀴벌레로 변했어도 넌 내 자식이다, 끝까지 사랑하겠다'라고. 뜻밖에 답변이지만 '바퀴벌레니 때려죽이겠다'라고 망설임 없이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바퀴벌레가 주는 어감. 외형적 느낌. 그 이상의 요소들. 굳이 <변신>이 말하고자 하는 소통 단절이 아니어도 벌레가 주는 존재감은 한 마디로 '쓸모없음'이다. "내가 만약 바퀴벌레로 변하면 어떻게 할 거야?"라는 질문은, 만약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도 소외시키지 않고 존중하겠냐는 말처럼 들린다.
'엄마는 네가 바퀴벌레로 변해도 사랑해, 아빠는 바퀴벌레 아빠가 될 거야, 나는 카프카의 <변신>에 나오는 가족처럼은 안 할 거야'라고 하지만 과연 장담할 수 있을까. 그래도 그렇게 답하는 것만으로도 감동과 엄지척을 받을 수 있다. 말은 행동을 결정하는 동력이니까.
'네가 바퀴벌레여도 사랑해, 어떤 모습이건 너는 내 자식이니까' 이런 부모의 반응에 감동받아 바퀴벌레 놀이가 기사화 된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이 굉장히 순수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답이 나오리라 예상하지 못했던 것일까. 아니면 자신들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뜻일까.
▲ 조카와 했던 카톡. |
ⓒ 전미경 |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주인공 그레고르는 하루아침에 벌레가 되어 방 안에 갇힌다. 가족들로부터 소외감, 소통 단절, 삶의 부조리를 겪는다. 간간이 던져주는 음식으로 연명하다 아버지가 던진 사과에 상처 입고 죽는다. 가족들은 슬퍼하기는커녕 귀찮은 존재가 사라졌음에 좋아한다."
카프카의 <변신>을 알 리 없는 조카에게 다시 질문했다. 만약 네 부모님이 벌레로 변한다면? 녀석은 다시 한 번 고민을 한다. "음... 바퀴벌레에서 다시 사람이 되게 하는 기계를 만들 것 같아"라고 대답했다. 부모와 이모를 향한 마음은 이렇게 다른 존재다. 아무리 조카를 사랑해도 나는 방안에 '갇히는' 신세고, 부모는 사람으로 되돌리려 노력하는 존재.
나는 서운함과 씁쓸함을 담아 말했다. "나는 병 속에 가두고, 너무 차이 나는 거 아니니?"라고 했더니 그제야 "이모도 사람으로 바꿔 줄게"라고 한다. 그러나 이미 네 마음은 다 들켜 버렸다.
조카에게 카프카 <변신> 얘길 해주자 '어떻게 해주길 바라?'라고 다시 내게 묻는다. 글쎄, 내가 벌레가 된다면 음... "벌레로 변하기 전에 잘해주렴." 그렇게 말했다. 진심이었다. 나는 벌레가 되고 싶지 않았다. 녀석은 기특하게도 알았다고 했다. 단순한 놀이지만 녀석이 오늘 알게 된 그 마음을 끝까지 가져가 주길 바랐다. 평소 노잼이라던 녀석도 진지했다.
바퀴벌레가 돼도 나를 사랑해줄 수 있나요
바퀴벌레가 된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 질문은 단순히 바퀴벌레의 외형을 말하는 것만은 아닐 테다. 학업, 취업에 대한 불안감, 사회에서의 도태, 소외감, 부적응을 겪을 때 혹은 벌레처럼 존중받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을 때 부모님은 과연 내 편이 되어줄 수 있는지 나를 사랑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의식 같다.
세상 모든 부모님 또한 사랑의 모양이 다 다르니 바퀴벌레 놀이가 유행인 것도 이런 심리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바퀴벌레 놀이는 단순한 놀이 그 이상의 울림과 위로를 준다. 달고나 뽑기 같은 마음의 모양으로.
'벌레로 변해도 사랑해'라는 답 속에 '어떻게 사랑할거야'라는 질문이 추가된다면 선뜻 답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사랑은 조건이 아니다. 그럼에도 어떻게 사랑할지에 대한 의구심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바퀴벌레 놀이는 사랑 외에 다른 그 무엇이 필요한 질문과 답이다. 벌레만도 못한 자식은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질문자가 원하는 감동과 답변자가 주는 위로가 필요한 세상의 조류인지 모른다. 바퀴벌레 놀이가 유행처럼 번지는 이 흐름, 이 현상은.
당신의 마음이 궁금하다. 내 마음을 읽어줄 수 있는지. 바퀴벌레가 되어도 사랑할 수 있나요?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도 존중해 주실 건가요? 바퀴벌레로 변한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아니, 당신이 바퀴벌레가 된다면 어떻게 할까요? 당신의 마음을 읽고 싶다면, 한 번쯤 질문해 보고 싶지 않나요?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