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한 줄 알았더니…NFT로 돈 버는 기업들 [스페셜 리포트]

나건웅 매경이코노미 기자(wasabi@mk.co.kr) 2023. 4. 19.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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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은 가히 ‘NFT(대체불가능토큰)’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2021년을 기점으로 수백억원을 호가하는 고가 NFT 작품 거래가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왔고 수많은 NFT 프로젝트가 쏟아졌다. 그야말로 전 세계에 ‘NFT 투자 붐’이 불어닥쳤다. 영국 콜린스 사전은 2021년 ‘올해의 단어’로 NFT를 선정했을 정도다.

하지만 뜨거웠던 NFT 열풍은 최근, 언제 그랬냐는 듯 싸늘하게 식은 모습이다. NFT 생태계 근간이 되는 암호화폐(코인) 시장이 침체한 데다 거품 논란이 일면서다. 게다가 IT와 투자업계 관심이 온통 챗GPT에 쏠리면서 NFT는 화제성 면에서도 주도권을 빼앗겼다.

하지만 최근 시장 분위기가 식었다고 해서 NFT 산업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요즘 들어 ‘중흥기’를 맞이한 모습이다. 과도기를 거치며 ‘옥석 가리기’가 진행됐고, 유망한 NFT 프로젝트에는 여전히 상당한 돈이 몰리고 있다. NFT로 안정적인 수익화에 성공한 기업도 어느덧 하나둘 등장하는 중이다.

잠시 잊혔지만 여전히 뜨거운, NFT 시장 현주소를 체크해본다.

거래량 줄었지만 ‘성장기’

시가총액·프로젝트 오히려 증가

NFT 시장은 사실 2022년에도 성장하기는 했다. NFT 데이터 전문 플랫폼 ‘NFTGo’에 따르면 2021년 152억7000만달러였던 NFT 누적 거래액은 2022년 243억7000만달러로 오히려 증가했다. 지난 5월 미국 ‘금리 인상’과 ‘루나 사태’를 거치며 주춤하기는 했지만 거래액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NFT 시장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요인은 더 있다. 일단 NFT 프로젝트 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2022년에만 매달 315건에 달하는 신규 NFT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NFT를 보유하고 있는 ‘홀더’ 역시 꾸준히 증가세다. 2021년 12월 기준 140만명에서 2022년 12월 380만명으로 늘어났다. 올해 4월 기준으로 놓고 보면 430만명에 달한다.

치우쳐져 있던 NFT 마켓 플레이스 다변화도 시장에는 긍정적인 신호다. 지난 몇 년간 압도적인 1위 NFT 마켓으로 군림해온 ‘오픈씨(Opensea)’ 대항마가 여럿 등장했다. 룩스레어, X2Y2, 블러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지난해 10월 론칭한 블러는 같은 해 12월 일 거래량이 오픈씨 4배를 넘어설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한 가상자산 거래소 관계자는 “국내외를 불문하고 NFT 마켓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경쟁이 심화되면서 투자자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다양해졌고 이상 거래 탐지 같은 보안 기능은 강화됐다”며 “과거 몇몇 세력이 내부 거래로 NFT 시세를 조종한다는 부정적인 인식이 최근에는 많이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LG전자가 지난 CES에서 공개한 NFT 신발 ‘몬스터슈즈’. 현장에서는 AR 기기를 활용해 현실 공간에서 NFT 신발을 체험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했다. (LG전자 제공)
NFT? 그게 돈이 됩니다

2022 나이키 NFT 수익 2400억원

“NFT로는 돈을 못 번다.”

NFT 비관론자들이 NFT를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주요 논거다. 실제 과거 수많은 기업이 NFT 발행과 프로젝트에 뛰어들었지만 대부분 일회성 마케팅에 그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NFT 시장이 성숙하면서 이제는 기업의 중요한 수익 모델로 자리 잡은 사례도 늘어났다.

2022년 NFT 사업으로 가장 큰 수익을 올린 기업은 ‘나이키’다. 지난해만 무려 1억8500만달러, 한화로 2400억원이 넘는 돈을 NFT로만 벌어들였다. 더 흥미로운 점은 ‘로열티’로 벌어들인 수입이다. NFT 발행으로 버는 돈은 ‘1차 수익’과 ‘2차 수익’으로 나눌 수 있다. 1차 수익은 NFT를 처음 발행할 때의 판매 가격이다. 2차 수익은 해당 NFT가 사람들 사이에서 재판매될 때마다 받는 로열티를 말한다. 모든 거래 기록이 블록체인에 남는 덕분에 거래 발생마다 수수료를 받는 것이 가능하다. 나이키의 지난해 로열티 수입은 9281만달러. 전체 수입의 절반 가까운 돈을 신규 프로젝트 진행 없이 가만히 앉아서 벌어들였다는 얘기다.

나이키의 주력 NFT는 쉽게 말해 ‘디지털 운동화’다. 최고가가 13만달러에 달할 정도로 비싸지만 7분 만에 300켤레가 넘게 팔려 나갔다. 핵심은 NFT를 살 때 얻을 수 있는 ‘부가 혜택’이다. 나이키는 NFT를 실제 운동화 같은 현물 상품과 연계하는 방식으로 팬덤을 구축해나갔다. 예를 들어 운동화 NFT를 구매하면 비슷하게 생긴 실물 운동화를 보내주는 식이다. 나이키가 제공하는 증강현실(AR) 필터로 발을 촬영할 경우 본인이 구입한 NFT 운동화가 신겨 있는 것처럼 나올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선보이기도 했다. ‘가상’과 ‘현실’을 연계한 셈이다.

나이키뿐 아니다. ‘돌체앤가바나(약 2560만달러)’ ‘티파니(약 1300만달러)’ ‘구찌(약1150만달러)’ 같은 명품 브랜드도 나이키와 비슷한 방식으로 수익을 올렸다. 돌체앤가바나는 한정판 NFT를 구입한 홀더를 대상으로 2023년 선보이는 실제 의상 21개 중 하나와 교환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또 한정판 제품 구매 우선권, 타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 제품 구매권, 매해 열리는 패션쇼 초대권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한다.

NFT 사업을 지속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브랜드는 이 밖에도 많다. 한국에서는 LG전자가 최근 NFT 활용 사업으로 전 세계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LG전자는 올해 초 열린 ‘2023 CES’ 부스에 NFT 신발인 ‘몬스터슈즈’를 앞세웠다. LG 스타일러인 ‘슈케이스·슈케어’ 제품 홍보 일환이다. CES 현장을 찾은 이들이 현실 공간에서 NFT 신발을 체험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했다. AR 기기를 착용하면 슈케이스 안에 들어 있는 NFT 신발을 직접 신어볼 수 있게 했다. 일회성 마케팅으로 끝난 것은 아니다. 신청자에 한해 3526개 NFT 신발을 뿌렸다. LG전자가 개발한 암호화폐 지갑 ‘월립토’나 카카오 지갑 ‘클립’을 LG 씽큐 앱에 연결하면 랜덤박스에 들어 있는 NFT를 획득할 수 있다.

국내 대기업 NFT 러시는 현재 진행형이다. SK가 특히 활발하다. 올해 4월 SK스토아는 명품을 구매한 고객이 정품임을 믿고 살 수 있도록 NFT 보증서를 지급하는 ‘디지털 개런티 서비스’를 시작했다. 같은 달, SK플래닛 역시 NFT 사업 진출을 공식화했다. SK플래닛은 ‘OK캐쉬백 멤버십 NFT’와 함께 크립토 지갑 ‘업튼 스테이션’을 5월까지 선보이기로 했다. OK캐쉬백 NFT를 기반으로 한 커뮤니티에서 활동을 할수록 추가 적립이나 혜택을 제공하는 식이다.

이 밖에도 NFT 생태계 ‘메이플 유니버스’를 개발 중인 ‘넥슨’, 대원미디어와 NFT 업무협약을 맺는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 중인 ‘컴투스’, 땅과 건물을 NFT로 거래하는 게임을 개발 중인 ‘넷마블’ 등 게임업계 NFT 행보도 주목받는다.

투자 블랙홀 ‘NFT 프로젝트’

수백억원대 시리즈A ‘수두룩’

NFT 시장이 침체라지만 돈이 몰리는 곳은 계속 몰려든다. 지난해 수백·수천억원대 투자 유치에 성공한 NFT 프로젝트 기업도 여럿이다. 해당 기업이 관심을 받고 꾸준히 투자를 유치하는 비결을 살펴보면, 국내에서 NFT 사업을 준비하는 이들에게도 힌트가 될 수 있다.

NFT 프로젝트에도 분야가 있다. 게임 NFT, 미술 NFT, 메타버스 NFT 등으로 나뉘는 식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돈이 몰리는 곳은 단연 ‘PFP’다. PFP는 ‘프로필 픽처(ProFile Picture)’의 약자. SNS에서 프로필 사진으로 쓸 수 있도록 만든, 인물 중심의 캐릭터 일러스트를 NFT화한 것이다. ‘크립토펑크’ ‘지루한 원숭이 요트클럽(BAYC)’ 등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PFP 프로젝트다. 올해 4월 기준 PFP NFT 시가총액은 약 134억달러. NFT 전체 시총(225억달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0%에 달한다.

단순히 비싸게 사고팔리는 것을 넘어 금융 시장으로부터 천문학적인 돈이 몰려들고 있다. 단순히 SNS용 일러스트가 아니라 ‘산업’으로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BAYC를 운영하는 ‘유가랩스’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4억5000달러 투자 유치에 성공하며 40억달러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유가랩스는 IP와 생태계 확장에 방점을 찍었다. 단순히 원숭이 일러스트를 넘어, 해당 캐릭터가 실제 활동할 수 있는 메타버스 ‘아더사이드’를 구축했다. 아더사이드에서 쓸 수 있는 ‘에이프 코인’과 MMORPG 게임도 개발했다. BAYC 홀더는 에이프 코인이나 메타버스 NFT 발행 시 추가 혜택을 얻을 수 있다. 생태계를 확장해나가는 동시에 기존 NFT 매력을 극대화하는 구조다.

최근 가장 ‘핫’한 PFP 프로젝트 중 하나인 ‘두들스’ 역시 지난해 9월 5400만달러가 넘는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두들스 NFT가 차별화되는 점은 ‘움직이는 PFP’다. 홀더는 본인이 원하는대로 PFP에 애니메이션을 적용할 수 있다. 음악도 더해졌다. 미국 컬럼비아레코드와 제휴해 NFT 뮤직 앨범을 발매했다. 애니메이션에 이어 음악까지 NFT에 입힐 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에 신용카드 결제로 NFT 구입이 가능하게 하는 등 사용자 기반도 확장해가는 중이다.

최근 5000만달러 규모 시리즈A 투자를 유치한 ‘문버드’는 NFT 홀더에게 특별한 입장권을 주며 인기몰이를 했다. 문버드는 인기 팟캐스트 커뮤니티 ‘프루프(PROOF)’에서 사용되는 PFP다. 홀더는 프루프에서 운영하는 ‘비공개 디스코드 채널’에 가입할 수 있다. 여기서 다른 NFT 홀더뿐 아니라 프루프 창립자와도 직접 소통이 가능하다.

이장우 한양대 글로벌기업센터 겸임 교수는 “남들은 얻을 수 없는 ‘배타적 진입 권한’을 부여해야 NFT 생태계를 확장할 수 있다”며 “단순한 일러스트나 영상으로는 더 이상 투자자를 설득할 수 없고 사업화도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도 PFP 프로젝트가 꾸준히 관심을 받는 중이다. FSN 블록체인 전문 자회사인 ‘핑거랩스’ 역시 최근 118억원 규모의 시리즈A를 마무리하며 업계 이목을 집중시켰다. NFT 투자가 침체했고 최근 국내 자본 시장이 얼어붙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액수다. 핑거랩스는 ‘선미야클럽’을 비롯해 ‘벨리곰 NFT’ ‘해피어타운’ ‘스마일 미야 클럽’ 등의 다양한 PFP NFT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바 있다. 이상석 FSN 대표는 “초록뱀미디어, G마켓 스마일페이, 열혈강호 등 국내 오프라인 기업들과 다양한 연계를 통해 PFP NFT 생태계를 넓혀가고 있다”며 “NFT 시장을 선점할 경우, 데이터 소유권을 기반으로 한 ‘웹 3.0 시대’ 주축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고 기대감을 밝힌다.

‘지루한 원숭이 요트클럽(BAYC)’으로 유명한 유가랩스는 BAYC와 세계관을 공유하는 메타버스 ‘아더사이드’를 론칭했다. (아더사이드 홈페이지)
NFT 산업 전망은

코인 시장과 동조화…STO 호재

최근 화제의 중심에서 멀어지기는 했지만 NFT는 여전히 중요한 IT 키워드 중 하나다. 예전처럼 ‘NFT 투자 광풍’이 다시 불어올 수 있을지와 별개로, NFT 기술은 여러 산업에서 중용될 가능성이 높다.

가장 큰 호재 중 하나는 ‘토큰 증권(STO)’ 도입이다. 토큰 증권은 부동산이나 미술품 등을 분할해 조각 투자할 수 있는 디지털 가상자산으로 NFT 기술이 기반이 된다. 금융위는 올해 1월 열린 ‘금융규제혁신회의’에서 토큰 증권 발행을 허용하고 안전한 유통 체계를 마련하기로 했다. 토큰 증권이 사실상 제도권에 편입되면서 NFT 산업 역시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장기적으로 앞으로 다가올 ‘메타버스’와 ‘웹 3.0’ 시대 필수 요소가 NFT라는 점도 미래를 밝히는 요인이다. 김상윤 중앙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현재 이슈에선 다소 벗어나 있지만 메타버스가 대세가 될 것이라는 점은 업계나 학계 모두 인정하는 사실”이라며 “메타버스 내 자산 소유권을 증명하고 사람 사이 거래가 진행되기 위해서는 NFT가 필수다. 다가올 미래를 위해 NFT 생태계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단기적으로는 상승 조짐을 보이고 있는 ‘코인 시장’이 NFT 부활 트리거가 될 수 있다. 비트코인 가격이 1년 만에 3만달러를 탈환하는 등 최근 코인 시장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 NFT 역시 코인으로 거래되고 가치가 책정되는 만큼, 코인 상승장과 함께 분위기가 반등될 가능성이 없잖다. 실제 코인 시장이 상승장에 진입한 올해 1월 이후 NFT 거래량이 급증하고 있다. NFTGo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NFT 거래액은 41억5000만달러로, 직전 3개월인 2022년 9~12월 거래량(20억3000만달러)의 두 배가 넘는 액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05호 (2023.04.19~2023.04.2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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