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 빌미로 이익 챙기는 나라들, 한국은 글로벌 호구? [최현정의 웰컴 투 아메리카]

최현정 2023. 4. 19.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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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정의 웰컴 투 아메리카] 외교 주도권 쥐기 위한 각국의 신경전

[최현정 기자]

 펜타곤 환승센터
ⓒ 최현정
 
기대하진 않았지만 물어는 보았다. 

"국방부 청사(펜타곤)도 투어할 수 있나요?"

묵고 있던 숙소 셔틀을 잘못 탔나 했는데 종점인 펜타곤 환승 센터에 내려줬다. 많이 들어본 건물이라 주위를 둘러보니 관광객으로 보이는 이들이 있었다. 혹시나 싶어 무장 경비에게 펜타곤 투어를 물어본 것. 그러나 대답은 "노."  

펜타콘 투어 신청은 일주일에 두 번 있는데 시민권자에 한하며 최소 두 주 전에 사이트를 통해 신청해야 한다. 정확한 신원을 입력해야 하고 휴대전화, 스마트워치, 카메라를 비롯해 어떠한 전자기기도 소지해선 안 되며, 1시간 정도 일찍 가 보안 검색을 받아야 한다.

내가 방문했던 그 어떤 곳보다 까다롭다 싶었지만 명색이 미국 국방부 청사인데... 생각하며 돌아선 게 보름 전이다. 그런 삼엄한 장소가 전 세계 뉴스의 중심이 되어 버렸다. 국가 기밀 감청 기록이 유출된 건으로 말이다. 18일 현재 확인해 보니 모든 펜타곤 투어를 중단한다는 안내문이 올라와 있다. 

난감해진 바이든 정부 
 
 미국 정부 기밀 문건 유출 용의자 잭 테세이라 체포 상황을 중계하는 CNN 갈무리
ⓒ CNN
 
용의자 체포 장면은 헬기에서 찍은 방송 카메라로 생중계됐다. 전 세계를 발칵 뒤집은 <뉴욕타임스> 보도 일주일 만에 용의자 잭 테세이라는 매사추세츠주 외곽 자기 집에서 체포됐다. 장갑차와 기관총으로 완전무장 한 FBI 요원들이 빨간 반바지에 겁에 잔뜩 질린 용의자를 수갑에 채워 호송차에 태웠다. 

잭 테세이라, 매사추세츠 주방위군 공군 소속의 21살 일등병. 2020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테세이라는 훈련을 마치고 2021년 10월 매사추세츠주 케이프코드 합동기지에 있는 정보부대에 배속됐다. 사이버 분야가 특기인 그는 지난해 7월 이병에서 일병으로 진급했다. 그는 일급 기밀 보안 허가를 받았다. 다른 기밀 프로그램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도 있었다. 현재 그는 정부 기밀 문서를 유출하고 게임사이트에 공유한 혐의를 받고 있다. 

기밀 문서가 처음 유출된 사이트 이용자에 따르면 잭 테세이라는 서버에서 잭이라는 실명으로 활동하면서 정부 기밀 문서를 취급하는 자신의 직책을 숨기지 않았다. 2022년 12월경부터 게임 플랫폼 서버 중 하나에 기밀 정보를 게시하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문장 형식으로 올리다 올해 1월부터는 기밀 표시가 있는 공식 정부 문서의 사진을 게시했다고 한다.

문서 내용을 필사하다 적발될 것을 염려해 사진을 찍기 위해 집으로 가져가기 시작했는데 테세이라가 올린 서류 사진 배경엔 자신의 집 식탁과 주방 타일이 보인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아일랜드 발리나에 있는 세인트 무레다츠 대성당 밖에서 연설하고 있다. 2023.4.14
ⓒ 연합뉴스
 
"나는 유출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발생한 것은 문제지만 내용상 큰 문제가 있는 건 없어 보입니다."

국빈 방문 중인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기자의 질문에 짧게 답했다. 바이든 정부에 지금 이 상황은 물가나 트럼프보다 더 큰 악재로 보인다. 한국을 비롯한 우방국을 지속적으로 도청하고 그 민감한 내용을 어이없이 유출한 당사국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바이든은 이 문제를 별것 아닌 것처럼 애써 깎아내리려고 한다. 

바이든의 이번 유럽 방문은 1998년 영국과 아일랜드 사이에 체결된 평화협정 25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아일랜드 이민자인 자신의 정체성을 알리고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에 다시 한번 미국이 세계 분쟁의 중재자임을 되새기려는 계획이 있었다.

그러나 국내에서 터진 감청과 기밀 누출 뉴스가 그 모든 효과를 덮어버렸다. 25년 사이 달라진 미국의 위상을 도드라져 보이게 했을 뿐이다. 

도청 활용해 이익 챙기는 나라들
 
 카멀라 해리스 미 부통령(오른쪽)이 백악관에서 마테우슈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왼쪽)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3.4.11
ⓒ 연합뉴스
 
도청 문서 유출 후 외교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각 나라 간 신경전이 치열하다. 

제일 먼저 목소리를 높인 건 폴란드. 카멀라 해리스 미 부통령을 비롯한 미 관리들 및 국제통화기금(IMF)과 회담하기 위해 워싱턴을 방문한 마테우슈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적극적으로 미국 언론을 만나 외교전을 펼치고 있다. <뉴욕타임스>, NBC 등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도청 파문에 대해 미국의 조치를 이해하고 지켜보자고 말하며 자국의 골칫거리를 언급한다

"전 (폴란드 국민들의) 피로가 걱정됩니다... 우리 (폴란드) 농민들 사이에는 많은 불안과 우려가 있습니다. 이것들이 큰 정치적 혼란을 야기하고 있기도 하고요."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의 곡물과 기타 식품의 수입을 금하기로 한 조치를 지난 15일 강행했다. 흑해 항구 봉쇄 후 판로가 막힌 싼 우크라이나 농산물이 대량으로 유럽으로 유입되면서 유럽연합 지역 농민들의 분노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유럽 나라들이 관세 인상 등으로 갑론을박하는 사이 폴란드는 자국 농민들의 과제인 우크라이나 곡물 수입 금지 조처를 빠르게 시행했다.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미국 입장에선 불만스럽지만 항의하기 곤란한 이 시기에 말이다.  

유출된 CIA 문건에서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는 미국을 3대 적국으로 거론한 것으로 나와있다. '반미 표현' 수준이 높아졌다고도 기록됐다. 같은 나토 회원국이지만 러시아, 중국과 유대를 강화하면서 헝가리는 미국과 긴장 상태였다. 문건 유출이 오히려 헝가리를 홀가분하게 해 준 걸까. 헝가리도 우크라이나 곡물 수입 금지 조치를 단행했다.   

이스라엘 정부도 반색하는 모양새다. 국민들의 대대적인 '사법 쿠데타' 반대 시위에 모사드가 있었다는 누출 문구 때문이다. 바이든과 사이가 안 좋은 네타냐후를 미국은 무시하던 중이었는데 이번 유출로 공수가 전환된 모양새다. 이스라엘 고위 관리들은 미 고위 관리들이 직접 연락해 상황을 설명하며 과잉 반응 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고 전한다. 이스라엘 총리실은 공식 성명을 냈다.  

"미 언론에 보도된 보고서는 아무 근거 없는 엉터리며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는 (네타냐후) 정부에 반대하는 시위나 정치 참여를 직원들에게 독려하지 않았고 지금도 하지 않습니다." 

이번 일로 네타냐후는 우방국을 도청한 바이든 정부에 대한 주도권을 쥐게 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국내에서 인기 없던 그에게 이번 일은 반전의 호재가 되고 있다.

한국 전기차는 못 받는 7500 달러 

외국 정상 중 가장 열심히 도청 문서 유출에 관해 발언하고 있는 폴란드는 4월 12일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특별히 한국을 언급한다. 

"우리는 무기 인도와 탄약 전달에 대해 한국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개입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러시아의 반응과 중국의 반응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는 폴란드가 한국과의 합의 없이는 절대 무기를 이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한국에서 많은 무기 시스템을 구매했다는 걸 상기시켰다. 더불어 우크라이나에 보낼 포탄을 한국에서 구매하려면 미국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덧붙인다. 폴란드 총리가 미국 언론을 통해 미국 정부가 한국에 압박을 가하라고 공개적으로 요청한 것이다. 

때마침 19일 보도된 <로이터> 인터뷰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에 대해 인도적·경제적 지원을 넘어 군사적 지원도 고려할 수 있다고 변화된 입장을 밝혔다.

지난 17일 미국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발표가 있었다. 많은 미국인들이 차 계약을 연기하며 이날을 기다렸다. 대당 최대 7500달러(약 988만 원) 보조면 충분히 기다릴 만한 금액이다. 또한 전기차 시장의 판도가 바뀔 금액이다. 그러나 미국 차만 보조금을 받게 되면서 기대가 실망으로 바뀐 이들도 있다. 현대 아이오닉5에 눈독 들이고 있던 내 친구 같은 이들이다. 그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소리쳤다.  

"도청에 탄약에... 아오, 이번엔 미국이 성의를 보였어야지!"

주택담보대출의 높은 이자를 내고 있는 친구는 아마도 미국산 전기차를 구매할 것 같다. 이렇듯 우리는 지금 미국에 배신 당하고 폴란드에 뺨 맞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중국에 외면받고 있는데 설마 러시아의 공격까지 받는 일은 제발 없기를 기도한다.

우리가 '악의없는 도청' 운운하며 미국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을 때 연루된 다른 나라들은 자국 이익을 관철할 호기를 잡았다며 분주히 움직이는 모양새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이번 도청 파문 속에서 우리 한국 정부는 어떤 거래를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설마 정상회담 만찬 정도는 아니길 빌어본다. 대한민국은 글로벌 호구가 아니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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