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주택 경매 막았지만 효과 미지수…금융사 부실 우려도
정부가 전세 사기 피해자 거주 주택에 대한 경매‧매각을 중지하기로 했다. 전세 사기 피해자의 극단적 선택 등이 이어지자 내놓은 긴급 처방이다. 다만 보증금 회수와 같은 임차인들의 피해 회복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효과는 제한적일 거란 견해가 나온다. 관련 대출이 몰린 제2금융권의 건전성 하락과 같은 부작용도 우려된다.
정부는 19일 방기선 기획재정부 1차관 주재로 ‘전세사기 피해지원 범부처 태스크포스(TF) 1차 회의를 열고, 전세사기 피해 주택에 대한 경매 유예 조치를 오는 20일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정부는 우선 인천 미추홀구 전세 사기 피해자로 확인된 2479가구 가운데 은행이나 저축은행, 신협·농협·새마을금고 등 상호금융회사 대출분에 대해 20일부터 즉시 경매를 유예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 금융감독원은 전 금융권과 함께 사기 피해자가 희망할 경우 경매를 유예하고, 경매가 진행된 경우에는 매각을 연기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금감원이 국토교통부로 받은 피해 주택 주소를 주택담보대출 취급 금융회사에 넘기면, 금융회사는 진행 상황을 파악해 경매 절차 유예 여부를 결정한다. 이미 경매가 진행된 경우 매각 연기를 추진한다. 금융회사가 법원에 매각 기일 연기 신청서를 제출하는 식이다. 다만 금감원은 유예 기간을 ‘6개월 이상’으로 밝혔는데,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유예기간을 확정적으로 못박지는 않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통상 주택담보대출을 해준 금융회사는 원리금 3개월 이상 연체 시 선순위 채권자로서 임의 경매를 진행해 대출금을 회수한다. 경매가 마무리되면 해당 주택 세입자들은 강제 퇴거된다. 주채권자인 은행이 대출금을 회수한 이후에야 후순위인 세입자는 보증금을 돌려받는 게 보통이다. 이에 보증금을 온전히 되돌려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정부는 관련 주택의 경매 일정을 늦춰 피해 회복 시까지 피해자가 길거리에 내몰리는 일이 없도록 시간을 벌어주겠다는 것이다.
금융회사가 이미 해당 채권을 민간 채권관리회사 등에 팔았다면 해당 금융회사가 매입 기관에 경매를 유예하도록 요청한다는 방침이다.
향후 정부는 경매 유예 대상 주택 범위를 구체적으로 정할 방침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단순히 전세금을 떼이거나, 집주인과 분쟁이 있는 경우까지 지원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명확히 전세 사기로 규정된 경우에 한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급한 불은 끌 수 있지만, 한계도 분명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동산 경기 부진 여파를 빌라와 같은 다세대 주택은 아파트보다 더욱 크게 겪고 있어 향후 빌라 가격은 더 내려갈 수 있다. 이러면 향후 경매 때 낙찰가가 더 낮아질 수 있다. 피해자의 회수액은 당장 경매를 할 때보다 더 줄어들 수 있다는 얘기다.
법적으로 강제할 길도 없다. 기본적으로 사인 간 채무관계에서 채권자의 정당한 회수 조치인 경매 진행을 금융당국이 막을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이 이번 조치에 ‘자율적’이라는 단어를 붙인 이유다. 그나마 은행 및 제2금융권의 경우 감독기관인 금감원의 ‘협조’ 요구를 거절하기 어렵지만, 새마을금고의 경우 금감원의 감독 대상도 아니다. 이와 관련 금감원은 새마을금고 소관 부처인 행정안전부에 협조를 요청했다.
형태는 금융회사의 ‘자율적 유예’인 만큼 경매를 늦춘 금융회사에 대한 배임 소지도 있다. 금융회사가 부실 대출 회수 노력을 덜 하는 셈이어서다. 이에 금감원은 각 금융업권에 비조치의견서를 발급했다. 경매 유예가 고의 또는 중과실로 사후 관리를 부실하게 하거나 금융관련 법규를 위반한 것으로 보기 어려워 제재 대상에 포함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금융회사의 배임 소지를 차단하려는 것이다.
채권자인 금융회사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 “경매 유예는 임차인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채권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경매 유예 조치 실행을 사실상 떠안은 금융회사의 손실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경매 절차가 지연되는 만큼 부실 대출을 떠안고 있어야 해서다. 특히 제2금융권의 부실 심화가 우려된다. 전세 사기의 주 대상인 빌라의 경우 관련 대출은 주로 제2금융권에서 이뤄져서다.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미추홀 전세 사기 관련 금융회사가 131개”라며 “은행이 2개, 나머지는 전부 제2금융권”이라고 전했다. 제2금융권은 비교적 건전성이 양호한 은행과 달리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 등으로 건전성에 경고등이 커진 상황이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경매 유예가 제2금융권의 연체율 증가와 부실화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보다 면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러 한계점과 논란이 있는 만큼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석병훈 교수는 “피해자에 대한 임시 거처 마련, 전세금 대출 상환 유예와 같은 방안이 나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결국 전세 사기 문제는 과도한 집값 하락이 주요인”이라며 “정부가 적어도 빌라 등 서민 주택에 한해서는 대출 및 세금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국회와 시민단체 일각에선 공공 부문이 세입자의 보증금 채권을 일괄 인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다만 이럴 경우 보이스피싱 피해 등이 벌어졌을 때 관련 피해자의 빚을 국가가 모두 책임져야 한다는 논리가 돼 실제 실현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금융당국 관계자는 “오는 20일부터 제2금융권까지 모두 포함해 관계자들과 함께 대책을 논의할 것”이라며 “경매 유예 이후의 지원 대책까지 함께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남현‧김남준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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