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경매 중단’에 피해자들은 "그나마 다행" 법조계선 "경매 몰이해"
정부가 전세사기 피해 매물의 경매 절차 일시 중지를 공식화하자 법조계를 중심으로 “법적 근거가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8일 국무회의에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으로부터 전세 사기 피해 대책의 하나로 경매 일정 중지 방안을 보고받고 이를 재가했다. 최근 전세 사기 피해자 세 명이 잇따라 극단적 선택에 이르자 대통령이 직접 특단의 대책을 지시한 것이다.
현행법상 정부가 임의경매(근저당권 등 담보권을 실행하는 경매) 절차를 중지할 수 있는 방안은 경매에 참여하는 채권자인 금융기관들이 경매 신청을 철회 또는 유예하는 방법 뿐이다. 민사집행법상 경매는 채권자의 동의를 받아 관련 서류를 제출한 경우에만 중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국토부는 전세사기 피해 매물에 대해 선순위 근저당권을 확보한 뒤 경매를 신청한 금융기관에게 ‘일정 기간 매각 기일을 연기해달라’는 의사를 타진했다. 국토부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현실적으로 채권자에게 채권 회수를 하지 말라고 할 순 없지만 기일 변경을 통해 경매 절차를 연기하는 것”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19일 정부는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 금융위원회 등이 참여하는 전세사기 피해지원 범부처 태스크포스(TF) 첫 회의를 열고 경·공매 유예 실행방안을 논의했다. 금융 당국과 시중은행은 또 부랴부랴 이날 전세사기 피해 예방을 위한 실무 회의도 열었다.
피해자들 “뒷북 정책” “늦게라도 다행”
피해자들에게선 “늦게라도 지원책이 나와서 다행”이라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불안감은 여전히 걷히지 않고 있다. 전세 사기 피해자 박모(41)씨는 “그래도 경매 중단을 한다니 시간은 번 것 아니냐”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박씨는 지난해 9월 자택이 법원 임의경매에 넘겨진다는 통보를 받았다. 2021년 전세금 7800만원에 재계약을 맺은 그는 주택 낙찰자가 나오더라도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라 최우선변제금 2700만원만 돌려받을 수 있다. 올해 9월 계약 기간 만료를 앞둔 그는 그간 전세금을 잃고 거리에 나앉게 될 수 있다는 불안감 속에 지내왔다고 했다. 미추홀구 숭의동에 사는 피해자 김병렬(44)씨는 “전세 사기를 당했다고 호소하면서 반년 동안 싸워왔는데 3명이나 죽고 나서야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는다는 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금융기관 권리행사 제약”…“삼권분립 위반” 지적도
법조계에선 정부가 채권자의 권리행사에 인위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지나친 간섭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아무리 피해자가 많다고 하지만 임차인 보호는 국가정책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경매를 신청하는 것인데, 국가가 돈을 내줄 수 없는데도 이를 못하게 하는 건 부채 청산 시스템 자체에 부담을 줄 수 있다”이라고 지적했다. 오영나 대한법무사협회 부협회장도 “민사집행 절차는 본질적으로 채권자와 채무자가 평등하다 전제를 한다”며 “전세 사기 피해자들을 기존 사법 절차에서 특별한 지위로 인정하려면 그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법 개정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또다른 판사 출신 변호사는 “법원에 경매를 못 하게 하는 건 삼권분립 위반”이라며 “경매 절차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가 없었던 게 아니냐”고 말했다.
피해대책위 활동을 돕고 있는 김주호 참여연대 간사는 “전세 사기 피해 구제 특별법을 만들어서 공공에서 피해주택 채권을 매입해야 한다”며 “피해자들에게 경매 주택을 우선 매수할 수 있는 권리를 주고 그에 필요한 대금을 저리로 대출해주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지난 3일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이른바 ‘깡통전세 특별법’을 대표 발의한 상태다. 파산법 전문가인 김관기 변호사는 “문제의 핵심은 (전세사기 피해) 임차인들이 대부분 보증금을 대출받아 마련한 채무자라는 점”이라며 “장기 저리 대환 대출을 지원하는 등 개별 임차인의 형편에 따른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병준·오효정·심석용 기자 lee.byungju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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