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살아남은 명작, 특별한 모텔 열쇠의 비밀

김성호 2023. 4. 19.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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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씨네만세 480] <로스트 룸>

[김성호 기자]

바야흐로 콘텐츠의 시대다. 스크린이 있는 극장에 가야 제대로 된 작품을 만날 수 있던 시대는 완전히 종말을 고했다. 제작자는 OTT 서비스 업체를 거쳐 작품을 바로 시청자의 안방까지 배송한다. 콘텐츠의 시대가 곧 극장의 위기가 될지 눈 밝은 이들조차 쉬이 예상하지 못했던 터다.

콘텐츠의 시대, 영화에 온 힘을 경주했던 이들은 위기를 겪고 있다. 90분 내외의 한 작품에 온 공력을 들이기보다 훨씬 짧거나 긴 다양한 형식의 콘텐츠를 시도하는 것이 수익 면에서 낫다는 평가도 뒤따른다.

작품성이 떨어졌다면 대중의 관심 또한 멀어졌을 테다. OTT 업체들의 번영 뒤에는 영화에 거의 근접하는 수준까지 쫓아온 드라마의 수준 향상도 한 몫을 했다. 미드, 영드, 일드 등 세계 곳곳에서 건너온 드라마 여럿이 톱스타가 나오는 한국 드라마 못잖은 인기를 누렸다.

특히 자본이 뒷받침하는 미국 드라마는 지난 십 수 년 간 한국 안방을 그야말로 맹폭했다. <프리즌 브레이크> <로스트> <섹스 앤 더 시티> <프렌즈> <빅뱅이론> 등 1세대 미국 드라마가 한국 창작자들에게 상당한 긴장감을 불어넣은 것이다. 작품성은 물론 규모나 창의성 면에서도 영화와 비견할 만한 작품들로, 한국 시청자들에게 선풍적 인기를 얻었다.
 
▲ 로스트 룸 포스터
ⓒ Syfy
 
17년 살아남은 명작 드라마

<로스트 룸>은 2006년 미국 Syfy 채널에서 방영된 3부작 드라마다. 짤막한 분량의 TV시리즈가 제법 제작되는 미국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한 작품으로, 사후 콘텐츠 발매에선 각 부를 둘로 나누어서 6회 차로 출시됐다. 한국에서도 <지옥> 등 넷플릭스 출시 드라마가 비슷한 분량으로 나오는 경우가 생겼지만 미국에선 일찌감치 긴장을 유지할 수 있는 최적의 선까지만 제작하여 사후 판매를 기대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 결과가 어떠한가. <로스트 룸>은 제작 후 17년이 넘게 지난 오늘까지도 여전한 관심을 받는 명작으로 남았다. 방영시기가 지나면 사장되고 말았던 기존 드라마 시장이 OTT 등장과 함께 재조명받은 것도 결정적 이유가 됐다. 분량이 길지 않고 6부를 몰아보면 영화 두 편을 조금 넘는 정도란 점도 부담이 없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시간의 격차를 느끼지 않게 하는 창의적 소재와 단단한 연출이 한 몫을 했다.

한국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판타지 장르 드라마다. 특별한 능력을 가진 '오브젝트'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잃어버린 딸을 찾아야 하는 한 남자가 나온다.
 
▲ 로스트 룸 스틸컷
ⓒ Syfy
 
문이 있는 곳이라면 세상 어디든

주인공은 경찰 조 밀러(피터 크라우즈 분)다. 살인사건을 쫓던 그는 우연한 계기로 평범해 보이는 모텔 열쇠를 습득한다. 그런데 이 열쇠엔 특별한 능력이 감춰져 있다. 열쇠구멍이 있는 세상의 모든 문을 열 수 있고, 문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바로 데려다줄 수 있는 것이다.

아무 문에나 대고 열쇠를 돌리면 특별한 모텔 방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다시 나올 때면 세상 어느 곳의 문이 열리는 것이다. 때로는 휴양지의 오두막집이기도 하고, 친구 집 방문이기도 하며, 경찰서 내부나 주점 화장실, 심지어는 경기가 한창 진행 중인 경기장 안으로도 조는 아무렇게나 옮겨갈 수 있다.

그야말로 엄청난 능력을 지닌 이 열쇠의 문제라면 쫓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아주 조직적인, 또 법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이다. 경찰인 조 역시 예외는 아닌지라 곧 범죄의 타깃이 되고 여러 어려움을 겪기에 이른다.
 
▲ 로스트 룸 스틸컷
ⓒ Syfy
 
특별한 능력 지닌 물건을 보는 재미

처음엔 수사 목적으로만 열쇠를 써야겠다고 마음 먹었던 조다. 하지만 열쇠의 능력을 이용하던 중 딸을 잃어버리며 막바지까지 내몰린다. 열쇠를 갖지 못한 사람이 열쇠 안 모텔방에 들어가 문을 닫으면 다시 문을 열어도 그를 찾지 못하게 된다는 게 이 열쇠의 규칙이었던 것이다. 딸이 모텔 방 안에서 사라진 뒤 조는 딸을 되찾으려 다른 오브젝트를 찾아 헤매게 된다.

드라마는 오브젝트를 모으려는 이들, 오브젝트를 모아 파괴하려는 이들, 심지어는 오브젝트를 신성시하는 종교단체까지를 등장시킨다. 이 가운데서 조 역시 오브젝트에 깃든 힘을 통해 딸을 되찾기를 꿈꾼다. 모두 6편으로 나뉜 시리즈는 시청자를 조의 재난 가운데 떨어뜨리고 거듭된 시험을 제시한다.

하나하나 새로운 능력을 가진 물건들이 등장하는 것이 보는 맛이 상당하다. 어느 오브젝트는 만지기만 해도 뉴멕시코 황량한 들판으로 날려 벌리고, 또 어느 오브젝트는 잠시잠깐 시간을 멈추고 홀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한다. 어느 것은 사람을 통구이로 만들 만큼 위험한데, 또 어느 것은 동전 하나씩을 생기게 해줄 뿐이다. 온갖 오브젝트를 가진 이들이 등장해 제 나름의 능력을 보이는 모습은 마치 마블의 초능력 세계관을 보는 듯한 재미까지 안긴다.
 
▲ 로스트 룸 스틸컷
ⓒ Syfy
 
물건이 인간에게 자유를 줄까

흥미로운 건 능력이 사람 본연에게 있지 않다는 점이다. 가장 강한 오브젝트를 가진 이도 결국은 다른 이와 똑같은 인간이다. 잠시 잠깐 물건을 가져 제가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사람인 듯 여기는 이조차 그 물건을 잃으면 평범한 사람이 된다. 심지어는 그 물건을 갖기 전보다 더 아무것도 아닌 상실감에 허덕이는 인간이 되기 십상이다.

<로스트 룸>은 물욕에 매인 인간의 모습을 일깨운다. 물건에 집착하여 제 존재가 마치 소유한 것으로 평가받는 것인 양 여기는 세태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물건을 갖기 전보다 삶이 나아지지 않았음에도, 때로는 그 대가가 물건의 가치보다 훨씬 더 큼에도 끝내 물건을 내려놓을 생각을 하지 못하는 수많은 이들을 등장시켜 욕망과 두려움에 거듭 갉아먹히는 못난 인간의 운명을 돌아보게 한다.

<로스트 룸>은 짧은 분량에도 미국 드라마를 논할 때 빠지지 않고 꼽히는 명작 가운데 한 편이 되었다. 이는 판타지 장르 드라마가 흔치 않은 탓이기도 하겠으나 드라마의 참신성이며 그 안에 담긴 함의 등 즐길만한 거리가 많은 덕분이기도 하다.

잘 만든 드라마 한 편이 십년을 넘어 이삼십년, 심지어는 한 세기를 내다볼 수 있는 세상이다. 빅토르 위고의 작품을 오늘날의 독자가 여전히 읽고 있듯, 어쩌면 오늘의 드라마를 미래 세대 시청자가 보고 즐길 날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로스트 룸>과 같이 재미와 의미를 다 잡는 한국 드라마가 등장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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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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