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살인' 건축왕, 전세사기죄 입증하려면…[법조계에 물어보니 135]

박상우 2023. 4. 19.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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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인중개사법 위반, '솜방망이 처벌' 국민적 공분·여론 비등한 상황…"전세사기 중형으로 단죄해야"
법조계 "고의성 밝혀내지 못하면 사기죄 입증 어려워…기망의 행위와 기망의 고의 증명 쉽지 않아"
"입증, 기본적으로 검찰의 몫…단발적 사건 아닌 만큼 큰 그림 그리고 무엇보다 미필적 고의 입증해야"
"이번 사건에 대한 중형 판례 쌓이면…유사사건 충분히 쉽게 처벌될 수 있는 환경 조성될 것, 일벌백계"
17일 오후 인천 미추홀구 한 아파트 현관문 앞에 전세사기 수사 대상 아파트임을 알리는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뉴시스

청년 3명을 극단적선택으로 몰아넣은 '인천 건축왕' 전세사기 사건의 피해자가 700여명, 피해금은 500억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공인중개사법 위반 정도의 솜방망이 처벌이 아닌 전세사기의 중형으로 다뤄야 한다는 국민적 공분과 여론이 비등하지만, 사건의 주범은 사기 혐의에 대해서는 전면 부인하고 있고 사기죄 입증의 필수 요소인 고의성을 밝혀내기가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법조계 전문가들은 "사기죄 입증은 기본적으로 검찰이 해야 한다"며 "검찰은 단발적 사건이 아닌 만큼 큰 그림을 그려 수사해야 하고 무엇보다 사기죄를 적용하기 위해 피고인들의 미필적 고의를 입증하는데 주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한 "이번 사건에 대해 중형을 내리는 판례가 쌓이면 유사 사건을 범한 사람들이 충분히 쉽게 처벌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것이다"고 강조했다. 일벌백계 차원에서라도 중형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일명 건축왕 A씨는 현재, 공인중개사 등 공범 9명과 함께 사기와 공인중개사법 위반 등 혐의로 먼저 기소돼 재판받고 있다. A씨 등은 지난해 1∼7월 인천시 미추홀구 일대 아파트와 빌라 등 공동주택 161채 세입자들로부터 전세 보증금 125억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를 받는다. 그는 공인중개사(보조원)를 고용하고, 이들 명의로 공인중개사무소를 개설·운영하며 자기 소유 주택에 대한 중개를 전담하도록 했다.

구체적으로, A씨는 다음과 같은 법 조항들에 위배될 수 있다. 우선 현행 공인중개사법 33조 1항의 4호를 보면, 해당 중개대상물의 거래상 중요 사항에 관해 거짓된 언행이나 그 밖의 방법으로 중개의뢰인의 판단을 그르치게 하는 행위는 벌칙 규정에 따라 1년 이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또한 6호에 따르면, 중개의뢰인과 직접 거래를 하거나 거래당사자 쌍방을 대리하는 행위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아울러 49조 1항 10호를 보면, 다른 사람이 그 등록증을 이용해 공인중개사로 행세하면서 공인중개사의 업무를 행하려는 것을 알면서도 그에게 자격증 자체를 빌려주는 행위(양도 및 대여)의 경우 1년 이하 징역, 1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이렇게 A씨에게 공인중개사법 위반죄를 적용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까지 처해질 수는 있지만, 3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수백명의 피해자, 수백억원대의 피해액을 양산한 범죄자에게 지나치게 가벼운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국민적 공분과 여론이 비등한 상황이다. 본래 이 법령 자체가 사소한 규모의 범죄와 위법 행위들을 차단하기 만들어진 만큼, 법정형 자체가 대단히 낮게 설정됐다는 입법의 허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건축왕 전세사기 피해 개요.ⓒ데일리안DB

특히 A씨가 '사기죄'로 처벌된다면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 등 중형으로 다뤄질 수 있지만, 전세사기 사례의 대다수는 피고인이 사기의 고의성을 부인해 형량이 낮춰지고 있는 추세다. A씨 역시 지난 5일 열린 첫 공판에서 변호인을 통해 "법리상으로 사기가 될 수 없어 검찰의 법 적용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며 사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공인중개사 등 공범들도 "A씨 회사에서 직원으로 일했을 뿐"이라며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에서는 A씨 일당의 고의성을 밝혀내지 못하면 사기죄 입증은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임대인이 계약 당시 보증금을 편취하려는 의도를 갖고 세입자와 계약을 맺었다는 고의성을 증명하기란 쉽지 않다. 혐의 입증을 위한 치열한 법리 다툼이 예상되는 이유이다.

법무법인 율샘 김도윤 변호사는 "도의적으로 봤을 때 잘못된 것 맞지만 사기죄 입증은 쉽지 않다"며 "사기죄가 인정되려면 기망의 행위와 기망의 고의가 있어야 하는데, 전세계약 체결 당시 A씨가 고의성을 갖고 세입자를 속였는지 구별하는 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조의민 변호사(이에스티 법률사무소)는 "입증은 검찰의 몫"이라며 "물론 어떠한 정황에서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았는지 입증하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고 전했다.

검사 출신 안영림 변호사(법무법인 선승)는 "A씨가 받고 있는 혐의 중 사기가 핵심인 만큼 검찰이 공소유지를 해야 한다"며 "검찰은 단발적 사건이 아닌 만큼 큰 그림을 그려 수사해야 한다"며 "무엇보다 사기죄를 적용하려면 피고인들의 미필적 고의를 입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판사 출신 문성준 변호사(법률사무소 한유)는 "일반적으로는 공인중개사법 위반죄로 기소되면 벌금형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다만 이 사건은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기에 징역형이 나올 수도 있다"며 "범죄로 인한 피해가 얼마나 심했느냐가 양형 요소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 변호사는 "건축왕이라고 불리는 이 사건 피의자의 공인중개사 자격은 취소될 것이다"며 "아울러 이번 사건 피의자들이 높은 형을 선고받을 경우 공인중개사법 위반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질 것이다"고 덧붙였다.

김태룡 변호사(법률사무소 태룡)는 "이런 사건 자체가 큰 규모로 벌어지기 시작한 게 얼마되지 않았기 때문에 판결을 통해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을 잡아내기 시작하면 충분히 유사 사건들을 막아낼 수 있다"며 "특히, 이런 사건에 대해 중형을 내리는 판례가 쌓이면 유사 사건을 범한 사람들이 쉽게 처벌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검찰 관계자는 "기소된 A씨 사건 재판에서 피해자 증언 등을 양형 자료로 재판부에 제출하겠다"며 "피해 복구가 되지 않을 경우 '경제적 살인' 사건으로 규정해 엄중한 처벌을 받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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