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쏭달쏭 건설 소송] "판사도 못 피했다"…징글징글한 결로·곰팡이

박준식 2023. 4. 19.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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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건설사 하자분쟁 신청 사건 중 '결로' 압도적 1위
"만 10년이 다 되어가는 결로방지 설계기준 개선 시급"

[한국경제TV 박준식 기자]

대구지방법원에서 판사로 근무했던 배지호 변호사. 당시 자주 들었던 질문 중 하나는 "아파트 하자 중 가장 흔한 유형이 무엇인가"이다. 법률과 관련된 주제에 대해 이런 질문을 하면 쉽게 답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아파트 하자 등 건설 소송과 관련해서 가장 흔하게 접하게 되는 하자는 바로 '결로(結露)'이다.

결로는 '포화 수증기압보다 현재 수증기압이 높아져 물체 표면에 물이 응결되는 현상' 또는 '실내외 온도 차이로 내벽의 온도가 상대적으로 낮아짐으로써 생성되는 물방울'을 말한다. 결로 그 자체는 별로 유해하지 않다고 잘못 생각할 수도 있지만, 결로로 인해 발생한 곰팡이는 여러 가지 심각한 피해를 준다. 실내 공기질이 심각하게 악화하며, 심할 경우 외부 마감재가 탈락하기도 한다.

배 변호사는 "서울중앙지방법원 건설 전담 재판부에서 판사로 근무하면서 결로 하자와 관련된 수많은 건설 사건을 처리했지만, 당시에는 직접 그 고통을 체감하지 못했다"며 "하지만 이후 대구지방법원에서 판사로 근무하면서 관사에 발생한 결로와 곰팡이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하면서 당사자들의 고통을 뒤늦게 체감했다"고 회상했다.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제14조의3에 따라 공동주택 결로 방지를 위한 설계기준(국토교통부 고시)이 2013. 12. 27. 제정되어, 현재 500세대 이상의 공동주택에는 단열구간에 결로 방지 성능을 갖춘 설계가 의무화되어 있다.

배 변호사는 "과거에 비해 결로 하자의 발생 빈도가 상대적으로 감소하였으나, 아파트가 고급화되는 추세로 인해 결로 하자는 다시 증가하고 있다"며 "벽체의 단열성능과 창문의 기밀성이 강화되면, 실내 습기가 외부보다 높아지기 때문인 동시에 주거공간이 고급화되면서 생겨난 새로운 공간(드레스룸 등)에서 결로가 자주 발생하는 것 역시 또 다른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정부와 건설사는 결로 방지를 위해 여러 노력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고 있다. 국토부 하자심사분쟁조정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2021년 10대 건설사의 하자분쟁 신청 사건 중 결로는 하자유형 중 1위(3,316건)를 차지하며, 2위(367건)인 '기능불량'을 크게 압도한다.

결로 방지를 위한 설계기준이 제정된 이후 단열구간이 아닌 발코니와 같은 비단열구간에 발생한 결로가 하자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다. 단열구간에 발생한 하자와 다르게 비단열구간에 발생한 결로는 입주자가 환기 등을 제대로 하지 못한 소위 '유지관리의 문제'에 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발코니와 같은 비단열구간에 발생한 결로가 하자인지에 관한 일반적인 답은 없다.

국토교통부가 마련한 하자판정기준은 대체로 '입주자 등의 유지관리사항'을 고려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간단히 말해서 비단열구간에 결로가 발생할 경우, 결로방지를 위한 설계상의 조치가 제대로 되어 있다면(현실적으로 설계상의 조치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경우는 찾기 어렵다), 입주자가 환기 등을 제대로 하지 못해 결로가 발생한 것이어서 하자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원은 대부분의 사건에서 비단열구간에 발생한 결로를 하자로 인정한다. 서울중앙지방법원 건설소송 실무연구회에서 발간하는 자료 역시 입주자가 발코니 확장 공사를 직접 수행한 경우가 아니면 결로는 기본적으로 하자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규정하고 있다.

배 변호사는 "건설소송을 수행하는 변호사의 입장에서 결로는 하자보수금액의 문제에 불과할 수도 있으나, 거주자들의 입장에서는 생활 환경과 건강과 직결된 매우 중요한 문제"라며 "하자보수비용에 비해 정밀한 설계와 제대로 된 시공에 요구되는 비용이 훨씬 낮은 수준이어서 이 문제는 궁극적으로 소송이 아닌 정책을 통해 해결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제정 후 만으로 10년이 다 되어가는 '결로방지 설계기준'을 개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위 설계기준이 도입된 이후 '500세대 이상 공동주택의 단열구간에 발생하는 결로'가 크게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 새로운 설계 기준을 마련할 때가 됐다는 것. 실제로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등에서는 올해 내로 새로운 결로 방지 설계기준을 마련해 정부에 건의할 계획이다. 배지호 변호사는 전 서울중앙지방법원 판사를 거쳐 법률사무소 한평 대표변호사로 재직중이다.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이후, 10년간 판사로 재직하면서, 서울중앙지방법원 건설 전담재판부, 서울중앙지방법원 언론 전담재판부, 서울중앙지방법원 환경 전담재판부,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등에서 근무하였다.

특히 판사로 재직할 당시 건설전담재판부의 판사 등이 주축이 되어 구성한 '서울중앙지방법원 건설소송실무연구회' 소속 회원으로 건설소송과 관련된 가장 권위있는 자료인 '건설감정실무' 등의 개정작업에 참여한 바 있다.
박준식기자 parkjs@wow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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