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놀이 하던 그 바다가, 피 물든 학살터였다니..."

이재준 2023. 4. 19.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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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평화기행①] 제주에서 나고 자란 파리바게뜨 노조원의 이야기

[이재준 기자]

<제75주년 4.3추념식, 역대급 정부 관심 밖...'2분 추모사 끝'>(제주도민일보)
<할 말이 그리 없었나..."문화관광? IT콘텐츠?" 600자짜리 초라한 4.3추념사>(제주의소리)
<윤석열 대통령 빈약한 635자 4.3추념사…뜬금없는 내용도?>(미디어제주)

2014년, 정부는 4월 3일을 제주 '4.3희생자 추념일'로 지정했다. 정부는 "제주4.3사건 희생자를 위령하고 유족을 위로하며, 화해와 상생의 국민 대통합을 도모하기 위해 이뤄진 것"이라 밝혔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올해, 국민의힘 주요 지도부 인사들과 함께 불참했다.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며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이전한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제주에 없었다. 총리에게 대독시킨 추념사에서는 역대 대통령들이 모두 강조한 '화해' '통합' '화합'을 찾아볼 수 없었으며, '4.3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의 온전한 명예 회복'도 없었다. 되레 국민의힘 최고위원들(김재원, 태영호)은 '격 낮은 기념일' '김일성 지령설'과 같은 망언을 쏟아냈고, 보수단체들은 '빨갱이 폭도' 등을 주장하며, 역사적 사실을 폄훼하고 왜곡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매년 '제주4.3항쟁 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한다. 민주노총 소속 화섬식품노조 조합원들은 매년 이 행사에 참여하면서, 제주4.3항쟁 당시 학살과 참상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기행을 하고 있다. 필자는 기행에 참여한 조합원(가족)들의 소감문을 소개한다. - 기자 말
  
 화섬식품노조 수도권지부가 4월 1일, 2일 일정으로 제주4·3 평화기행을 진행했다. 해설사와 함께 4·3평화기념관을 관람하고, 4·3 유적지 중 오라리 마을, 영묘원, 하귀 해안도로 유령비 등을 돌아봤다.
ⓒ 화섬식품노조 제공
  
제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유제빵(가명)씨. 유씨는 현재 제주에서 파리바게뜨 제빵기사로 근무하고 있으며,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지회 조합원이다.

유씨는 "어릴 때부터 4.3에 대해 많이 들어봤지만 제대로 교육받은 기억이 없다. 무언가 마음 아픈 사건이라고만 알고 있지, 정확히 어떠한 시대적 배경에서 누가 누구에게 학살을 자행하고 그로 인해 어떠한 결과를 낳았는지 알지 못 한다"라고 고백했다.

그는 "함덕 옆 북촌이라는 동네에서 잠깐 살았었는데, 내가 잠자리채로 꽁치를 낚고 물놀이하던 그 바다가 피로 물든 학살터였다는 것을 커서야 알았다"면서 "제주도민으로서 이 아픔의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의무감은 있지만, 관심을 갖고 깊이 공부하진 않았기에 이번 4.3기행이 있다는 말을 듣고 꼭 참여하고 싶었다"고 했다.

유씨는 "(기행을 이어가며) 어떻게 이런 잔혹한 학살들이 일어났는지 들으면 들을수록 너무 마음이 아팠고, 지금까지의 무지가 부끄럽고 죄송했다"고 밝혔다. 이어 "수많은 희생자의 얼굴과 비석에 새겨진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이름을 다 알진 못하더라도, 무고한 민중들의 희생이 일어났던 이 역사적 사실은 정확히 알고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라면서 "그게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추모 방식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4·3민중항쟁 75주년 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가 2일 오전 10시 제주시청 정문에서 열렸다.
ⓒ 화섬식품노조 제공
 
유씨는 "(민주노총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여러 분들의 투쟁사를 듣고 있는데, 문득 내가 이 사회의 구성원이자 한 명의 노동자라는 게 실감이 났다"며 "나 이 사회에서 살아 숨 쉬고 있구나!"라는 소감을 밝혔다.

동시에 유씨는 "그러면서 파리바게뜨지회 간부들이 너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조 설립 초기에도 회사의 핍박과 주변 사람들의 냉대를 마주하며 외롭고 힘들었을 텐데 어찌 견뎠을까. 두렵고 막막하진 않았을까? 그렇게 버텨온 고생의 시간들이 감히 짐작도 안 돼서 먹먹하기도 하고 뭉클했다. 이분들. 늘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항상 다정하고 친근하게 대해줘서 몰랐는데 생각보다 더 대단한 분들이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서정숙 제주분회장은 "기행 도중에 직접 들은 이야기"라며 "조금이라도 무언가를 조금 아는 사람들이 살짝 앞장서서 하는 것이고, 인간이라면 마땅히 누려야 할 공동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서 우리 간부들뿐만 아니라, 이전 선배들이 해왔던 것이라 말씀드렸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임종린 파리바게뜨지회장은 "2017년 8월 노조(민주노총 파리바게뜨지회)를 만들고 불법파견과 '임금꺽기' 문제를 해결하기까지 사실 힘들었다"며 "정부가 직접고용을 지시했음에도 회사는 지키지 않고 소송 걸면서 시간을 끌고, 그 사이에 직접고용 포기각서를 받는가 하면, 상생회사라며 직접고용 지시를 무력화하려 하고... 민주노총 탈퇴시키려 불법행위를 저지르고, '직접고용 반대'를 외치는 분들이 나오고, 그분들 중심으로 회사와 친한 노조가 생기고... 하지만 그럼에도 결국 우리의 투쟁으로 시민사회가 도와주시고, 정치권까지 나서서 2018년 1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냈다"고 말했다.
  
▲ 파리바게뜨 제빵기사의 단식 "사람 대우 받으며 행복하게 빵 만들 수 있다면" ⓒ 화섬식품노조 제공

그러나 사회적 합의 이후에도 파리바게뜨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임종린 지회장은 지난해 '사회적 합의 이행' 등을 요구하며 53일간 단식투쟁을 했다. 간부 5명도 합쳐서 100일 넘게 단식을 진행했다. 임 지회장은 "6년 동안 안 해본 게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 조합원들 생각하면 못 할 것 없고, 아직도 현장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제빵·카페 기사님들 생각하면 버티고 싸울 수 있다"고 말했다.

유씨는 "제주 4.3기행과 노동자 대회에 참석한 소감을 (파리바게뜨지회 조합원들과) 공유하고 싶어" 글을 썼다고 밝혔다. 아래는 소감문 전문이다.
 
제주에서 나고 자라서 어릴 때부터 4.3에 대해 많이 들어봤지만 제대로 교육 받은 기억이 없다.

무언가 마음 아픈 사건이라고만 알고 있지 정확히 어떠한 시대적 배경에서 누가 누구에게 학살을 자행하고 그로 인해 어떠한 결과를 낳았는지 알지 못 한다.

내가 어릴 때는 함덕 옆 북촌이라는 동네에서 잠깐 살았었는데, 내가 잠자리채로 꽁치를 낚고 물놀이 하던 그 바다가 피로 물든 학살터였다는 것을 커서야 알았다.
제주도민으로서 이 아픔의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의무감은 있지만 관심을 갖고 깊이 공부하진 않았기에 이번에 화섬노조에서 4.3기행이 있다는 말을 듣고 꼭 참여하고 싶었다.

무슨 일인지 짐작도 안 되는 그저 '4.3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엔 너무 많은 죽음이 있었고, 어떻게 이런 잔혹한 학살들이 일어났는지 들으면 들을수록 너무 마음이 아팠고 지금까지의 무지가 부끄럽고 죄송했다.

4.3평화기념관 내부 벽면에 인쇄된 수많은 희생자들의 얼굴과 외부 광장의 비석에 새겨진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이름들을 다 알진 못하더라도, 무고한 민중들의 희생이 일어났던 이 역사적 사실은 정확히 알고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그게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추모 방식이라 생각한다.

나는 이 회사에 아무런 뜻 없이 그저 빵 구우러 들어왔는데, 어쩌다 마주한 민주노총에 가입도 했다. 내가 이번 일을 겪으면서는 위로와 격려, 도움을 주는 이 사람들에게 어느 하나의 행동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오늘의 집회에도 함께 하게 됐다.
가만히 앉아 여러 분들의 투쟁사를 듣고 있는데 문득 내가 이 사회의 구성원이자 한 명의 노동자라는 게 실감이 났다. 나 이 사회에서 살아 숨 쉬고 있구나..!

그러면서 파리바게뜨지회의 간부들이 너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조 설립 초기에도 회사의 핍박과 주변 사람들의 냉대를 마주하며 외롭고 힘들었을 텐데 어찌 견뎠을까. 두렵고 막막하진 않았을까? 그렇게 버텨온 고생의 시간들이 감히 짐작도 안 돼서 먹먹하기도 하고 뭉클했다. 이 분들, 늘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항상 다정하고 친근하게 대해줘서 몰랐는데 생각보다 더 대단한 분들이었구나..

그렇게 연설들이 끝나고 제주시청에서 관덕정까지 행진을 하는데, 운전자들에게 우리는 민폐일 수밖에 없고.. 운전자들에게도, 도로를 통제하는 경찰들에게도 미안함이 가시질 않는데, 교차로에서 경찰이 차량 통제하는 게 지속되자 가장 선두에 있던 차량 운전자 분이 "시민이 먼저 아닙니까!" 라고 소리치셨다. 우리도 시민인데.. 이들에게 우리는 당장의 불편함일 뿐이구나, 변화를 위해 용기낸 사람들의 발걸음일 순 없을까? 생각하며 이틀 간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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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노동과세계> 중복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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