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반도체법에 "국내 영향 적다"지만…통상 장벽 더 높아진다
유럽의 글로벌 반도체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리겠다는 EU(유럽연합)판 반도체법이 나온 가운데 정부는 "국내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각국이 경쟁적인 통상 장벽 쌓기에 나서면서 국내 기업이 겪을 어려움은 가중될 전망이다.
EU 집행위원회는 18일(현지시간) EU 반도체법 3자 협의가 타결됐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2월 EU 집행위가 처음 제안한 법안에 대해 유럽의회·이사회 등이 정치적 합의를 이룬 것이다. 이 법은 향후 유럽의회·이사회 각각의 승인을 거친 뒤 효력이 발휘될 예정이다.
EU 반도체법의 핵심은 2030년까지 EU의 글로벌 반도체 점유율을 20%까지 끌어올리는 것이다. 민간·공공 부문에서 430억 유로(약 62조2000억원)를 투입하게 된다. EU는 세계 반도체 수요의 20%를 차지하는 3대 소비 시장이지만, 공급망 점유율은 10%에 불과하다. 반도체 생산을 외부에 위탁하는 '팹리스' 기업이 많아 생산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EU는 반도체를 '경제안보' 핵심 품목으로 보고, 법 제정을 통해 역내 생산 역량 강화와 공급망 안정화를 꾀하고 있다.
19일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번 법안을 두고 "역외 기업에 대한 명시적 차별 조항이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국내 반도체 기업의 생산시설이 EU 내에 없기 때문에 직접적 영향은 적다는 분석이다. 또한 EU 내 반도체 생산설비 확충은 국내 소부장 기업의 수출 기회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고 봤다.
산업부는 향후 국내 업체들과 소통하면서 남은 입법 절차를 모니터링하고, 반도체 업계에 미칠 영향을 분석해 대응 방안도 적극 모색하기로 했다. EU 당국과도 꾸준히 협의할 계획이다.
다만 '자국 중심주의' 기조 속에 각국의 통상 압박이 높아지는 건 정부·기업 모두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EU의 반도체법에 앞서 미국은 자국 내 공급망 강화를 위한 반도체법에 뛰어들었다. 반도체 기업들은 초과이익 공유 등 독소조항 논란에도 대(對) 미국 투자를 위한 법적 보조금을 신청해야 할 상황이다. 상대적으로 우려가 낮은 EU 반도체법도 길게 보면 국내 기업들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EU의 반도체 제조 역량이 강화되면 글로벌 반도체 시장 경쟁이 심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통상 장벽은 반도체에 국한되지 않는다. 유럽의회는 18일(현지시간) 철강·알루미늄 등 수입품에 이른바 '탄소 국경세'를 매기는 CBAM(탄소국경조정제도) 법안을 통과시켰다. EU 이사회의 최종 승인만 남았다. 오는 10월부터 이들 품목의 탄소 배출량을 보고해야 하고, 2026년부터 탄소국경세도 단계적으로 부과될 예정이다. IRA(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따른 미국 업체들과 현대차·기아의 전기차 보조금 차등은 이미 현실화됐다.
이 때문에 보다 적극적인 통상 이슈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앞으로 EU 반도체법을 비롯한 통상·무역 입법이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여 글로벌 경쟁 심화는 불가피하다"면서 "수출 중심인 우리나라는 어쩔 수 없이 산업별 경쟁력을 올려 각국이 요구하는 조건을 맞출 수밖에 없다. 그와 동시에 미국·EU·일본 등에 적극적인 아웃 리치(대외적 접촉)로 협력 강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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