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투표가 52년전"…日 13회 연속 무투표 당선자 나온 마을 화제

전진영 2023. 4. 19.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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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분란 기피하는 분위기·인구 감소 맞물려
전문가들 "민주주의 근간 흔들린다" 우려

일본 통일지방선거가 전반전을 치르고 후반전을 남겨둔 가운데, 기초지방자치단체격인 정·촌에서 경쟁자없이 무투표 당선자들이 속출하면서 지자체 선거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50년 넘게 선거없이 무투표 당선자가 나오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지방자치제도 자체의 의미가 퇴색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19일 NHK 정치매거진은 52년 동안 선거를 치르지 않은 홋카이도 쇼산베쓰 마을 이야기를 보도했다. 이곳은 1971년 이후 13번 동안 진행된 지방선거에서 투표를 치르지 않고 촌장을 배출했다. 이번에도 촌장이 무투표 당선되면서 홋카이도 최다 기록을 갱신했다.

무투표 당선된 미야모토 노리유키 촌장.(사진출처=NHK 정치 매거진)

NHK는 '투표 패싱'이 이뤄진 배경에는 과거 촌장 선거전 과열로 마을이 분열됐던 경험과 인구 감소가 깔려있다고 분석했다. 직전 선거인 1971년 지방선거 당시 출마한 지역 교육감 출신 후보와 농협 간부 출신 후보가 마을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경쟁했다. 상대 후보간 경쟁이 매우 심해지면서 각 후보 진영에서 상대 후보 정탐꾼을 막는다며 표밭 지역에 경비인까지 배치할 정도였고, 누가 어느 쪽에 표를 던지려 하는지 동태 파악도 매일 이뤄졌다. 당시 투표율은 96.63%에 달했을 정도로 마을 주민들의 관심도 뜨거웠다.

그러나 선거 개표 당일부터 마을에는 형사들이 찾아와 수사를 벌이기 시작했다. 지역신문부터 시작해 낙선한 후보자와 형제, 캠프 간부 등 선거 관계자들이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잇따라 체포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마을에서는 "선거는 지긋지긋하다", "격렬한 선거로 마을이 양분됐다"며 지역 화합을 흐리지 말자는 분위기가 번졌다. 이때부터 경쟁자를 두지 않고 면사무소 출신 '행정가'로 후보를 한 명으로 압축해 내보내자는 무투표 당선의 전통이 이어지게 됐다. 1971년 이후 역대 촌장은 모두 면사무소 출신으로 단 하루만 선거운동을 한다. 이번에 당선된 65세 미야모토 노리유키 촌장도 2007년부터 시작해 5선을 이어가고 있다.

선거 유세 중인 미야모토 노리유키 촌장.(사진출처=NHK 정치 매거진)

여기에 정치 신인이 등장할 수 없을 정도로 고령화와 인구 감소가 심각하다는 점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아사히신문은 "쇼산베쓰는 농업과 어업이 번성한 마을로 1955년 인구 5640명을 기록했지만, 이후 계속 인구가 줄어들면서 마지막 선거 당시 3500명, 현재는 1080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마지막 투표를 했었던 70대 노인은 "이제 선거전의 후유증은 없지만, 촌장 노릇을 할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인구가 줄었다"고 아사히에 전했다.

이처럼 정치 분란을 만들지 않는다는 전통을 이어가고 있지만, 마을 지도자들이 투표라는 민주주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자리에 오른다는 것은 민주주의 절차 상 또다른 문제가 되고 있다고 일본 언론들은 우려했다.

전 촌의원이었던 나리타씨는 NHK와의 인터뷰에서 "이곳은 어촌 마을이라 다들 활기를 띄었지만 마지막 선거 이후 다들 매너리즘에 빠졌다"며 "의욕에 불타는 신인이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입후보해 마을 발전을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문제는 이 무투표 당선이 홋카이도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에 있다. 전날 지방선거 정·촌장(지자체장) 입후보자 등록이 마감되면서, 경쟁자 없이 단독 출마한 지자체장이 무투표로 당선되는 사례가 속출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이번 지자체장 선거가 치러지는 125곳 중 절반 이상이 넘는 70곳에서 이같은 '무혈입성'이 이뤄졌다. 총무성의 공식 데이터는 존재하지 않지만, 홋카이도 내에서는 쇼산베쓰가 13회 연속 지방선거 무투표 당선을 기록해 1위다. 그러나 전국 단위에서는 오이타현에서 16회 연속 무투표 당선을 이룬 히메시마 마을이 1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내 정치 전문가들은 무투표 당선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사태라고 우려했다. 시라토리 히로시 호세이대학 교수는 TV 인터뷰에서 "무투표 당선의 경우 유권자가 후보자를 통해 정책적 선택을 할 수 없게 된다. 투표로 의사를 전달하지 못해 민의가 반영될 수 없는 것"이라며 "무투표 당선이 많아져 선거구가 통·폐합되면 인구가 많은 곳에서만 선출되는 지역 불균형이 생길 위험도 높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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