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잃고 지옥 속에서... 저축은행중앙회, 서민 친구 맞나"
[신정임 기자]
▲ 지난 4일 오전, 저축은행중앙회 통합콜센터 해고자들과 희망연대본부 서울신용보증재단고객센터지부 등이 콜센터 원하청 착취구조 고발 시민사회 기자회견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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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들의 친구, 절친 같은 저축은행중앙회라고 했습니까? 누군가의 재산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변화시키겠다고 했습니까? 말한 대로 행하십시오. 일터를 잃은 콜센터 노동자들은 100일이 되도록 지옥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저축은행중앙회를 위해 성실하게 일했던 사람들의 세상조차도 지옥으로 만들면서 누구의 세상을 나은 곳으로 만든단 말입니까?"
지난 4일, 서울시 마포구 서울신용보증재단 앞에서 열린 '콜센터 원하청 착취구조 고발 시민사회 기자회견'에 나온 저축은행중앙회 통합콜센터 해고자, 이하나씨는 절규하듯 현장발언을 했다. 통합콜센터가 문을 연 2019년 9월부터 창립멤버로 함께해 3년 넘게 누구보다 열의 있게 일하며 센터 기틀을 잡아온 자신의 원통함을 토해내듯이. 더 깊은 사연을 듣기 위해 서울신용보증재단 앞에 설치한 천막농성장에 들어가 이하나, 서금호씨와 마주 앉았다.
아이디 만들기부터 안내하지만 외주화의 폐해 떠안아
우선 하는 일부터 물었다. 콜센터라는 직업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이제 웬만한 업종에선 전화상담이 다 이루어지지만 정작 어떤 상담을 하는지는 잘 모르기에. 업종이 다양하듯 전화상담도 업종마다 다 다를 터였다. 하나씨가 짧게 설명했다.
"저축은행은 영업점이 많지 않아서 다 어플로 해야 해요. 인증서, OTP 등록, 예금 가입하고 해지하고 이체하는 방법을 다 물어보세요. 특히 저축은행은 어플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 고객분들이 문의를 많이 하셔요. 이분들은 앱을 다운받고 가입할 때 아이디 만드는 것부터 하나하나 다 알려드려야 해서 1시간씩 통화를 하는 경우도 있어요."
상담사들은 대기콜이 계속 깜박거리는 걸 보며 마음 졸이면서도 비밀번호 설정에 필요한 영어 알파벳까지 하나하나 알려주면서 고객들을 저축은행으로 이끌어 왔다. 상담사들은 상담이 길어질 때는 원격으로 지원할 수 있게 해달라고 사측에 수없이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관리자용 컴퓨터 한 대만 원격 지원이 가능해 직원들의 고충은 여전했다고 한다.
OTP카드 배터리가 없거나 기한이 만료된 경우 검색만 하면 바로 해결할 수 있지만 상담사들이 바로 처리할 수 없다. 콜센터 업무는 저축은행중앙회에서 외주화해 하청업체 소속인 상담사들은 접근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기술팀에 검색을 요청해서 답을 받는 데 반나절씩 걸린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었다. 그 사이 고객들은 계속 전화를 걸며 확인이 왜 안 되느냐고 항의를 한다. '효율화'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외주화로 인한 업무 비효율화의 한 단면이다.
밤새 보이스피싱 피해를 막는 것도 상담사들의 일
저축은행 영업점의 영업시간은 대부분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이지만 콜센터는 24시간 돌아간다. 보이스피싱 관련 업무 때문이다.
"저축은행 업무가 오후 6시에 종료되면 그 이후에 발생되는 보이스피싱 관련 업무는 저희가 해요. 보이스피싱 신고를 받고 69개 저축은행들의 계좌를 지급 정지하죠. 저축은행 계좌에서 돈이 다른 은행으로 출금됐으면 전산으로 추적해서 다른 은행들에도 신고를 하고요. 신고가 많은 날은 하룻밤 새 7~8건에, 피해액이 2억씩 되기도 해요."
금호씨가 덧붙였다.
"요즘은 비대면계좌가 많잖아요. 다른 사람이 비대면으로 예금을 해지해서 그 돈을 빼가요. 우리는 예금이 해지된 게 다 보이는데 고객은 자기 예금이 해지된 줄도 몰라요. 그건 걸 막을 때가 제일 보람차거든요. (5000만 원짜리) 예금이 2개만 해도 1억인데..."
▲ 이하나씨와 콜센터 동료들은 저축은행중앙회에서 외주화한 하청업체 소속이었지만 사비로 업무 매뉴얼을 만들어 신규직원들을 가르칠 만큼 자긍심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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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급정지업무는 숙련자들의 노하우가 필요하다. 은행마다 코드도 다른 69개 저축은행사를 전산으로 다 살피고, 빠져나간 자금의 흐름을 추적해 다른 은행들까지 연락하는 일이 결코 단순하지 않다. 하나씨가 스프링으로 제본한 두툼한 종이뭉치를 내보였다. 표지엔 '지급정지전산교육매뉴얼'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것도 다 저희들이 만들어 인쇄한 거예요. 돈도 저희들이 내서요."
이들은 신규직원 교육을 위해 사비를 털어 고참들이 지급정지업무와 관련한 설명서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누구보다 자신들이 전문가라는 마음으로. 신분은 하청업체 소속이었지만 '우리 회사'라는 자긍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휴게실 없어 사무실에 돗자리 깔고 쉰 적도"
하지만 저축은행중앙회도, 전 업체였던 KS한국고용정보도, 이들 통합콜센터 상담사들을 저축은행중앙회의 발전을 위해 함께 나아갈 동료로 보지 않았다. 야간 근무자의 근무시간은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13시간이다.
보이스피싱 사건이 여러 건 터지면 수습하느라 쉴 틈이 없지만 평소엔 새벽 1시부터 5시 사이에 3명의 근무자가 2시간씩 돌아가면서 휴식을 취했다. 그런데 2022년 4월까지는 휴게실이 없었다. 산업안전보건법이 '사업의 종류와 규모에 관계 없이 모든 사업장에 휴게시설을 설치'하고, 이를 어길 시 과태료를 부과하는 걸로 개정(2022년 8월)되면서 사측에서 휴게실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휴게실이 생기기 전 2년 6개월여 동안은 어떻게 휴게시간을 보냈을까? 이하나 해고자가 "사무실 바닥에 돗자리 깔고 담요 덮고 그러고 잤어요"라고 담담하게 답했다.
"저희가 읍소에 읍소를 해서 눕는 걸 쟁취하고 그렇게 일했어요."
상담사들은 난방 텐트를 가져와 위에 담요 같은 걸 덮어두고 쉴 때도 있었다고 한다. 다행히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돼 1년 전부터는 휴게실에서 쉴 수 있게 되었다.
3년 성과를 10분 보고 결정해버려 허탈해
저축은행중앙회는 작년 말 콜센터를 위탁한 KS한국고용정보와의 계약종료를 앞두고 다시 업체 입찰을 공고했다. <매일노동뉴스>에 따르면, 중앙회는 "기존 용역업체에서 근무한 콜센터 상담사들의 '효과적인 고용승계 계획과 안정화 방안'을 용역업체에 계약 체결 조건으로 제시"했다.
이후 중앙회는 효성ITX와 계약을 맺었는데, 이 회사 측 관계자는 위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실제로 체결한 계약 내용은 고용승계 조건으로 위탁운영 사업을 시작한 게 아니라 경력직 채용을 조건으로 한 것"이라며 "설명회를 진행하고 면접 절차를 거쳐서 합격이 된 인원만 채용하고, 부족한 인원에 대해서는 신규채용을 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효성ITX는 2022년 12월 26~27일 직원들과 10여 분씩 면담을 진행했다. 계속 일을 할 것인지, 업무 상 어려운 점은 없는지, 신입직원 교육이 가능한지 들을 물었다. 하나씨는 "형식적으로도 면접이라고 하기는 어려운 면담이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면담이 열여섯 명의 상담사들의 운명을 갈랐다. 27일 저녁 8시경 메일로 면담 결과가 전해졌다. 몇몇 상담사들에게 '회사가 추구하는 인재상과 거리가 있다'는 이유로 계약 불가 통보가 날아왔다. 그들은 대부분 창립 때부터 통합콜센터를 키워온 장기근속자들이었다.
하나씨는 "우리는 저축은행중앙회에서 일을 했잖아요. 왜 우리가 효성ITX와 비전이 같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자료도 만들고 새로 온 직원들과 으쌰으쌰 하면서 3년 동안 일궈온 우리 일터인데 이걸 10분 본 사람들이 다 결정해버리니까 진짜 허탈했어요"라고 했다.
금호씨가 덧붙였다.
"우린 분명 저축은행중앙회 업무를 했는데 중앙회에서 우리하고 상관없다고 얘기를 하니까 원통한 거죠. 저희도 저희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는데 10분 보고 비전과 맞는지 안 맞는지 어떻게 알겠어요? 심야 근무자들은 '지급정지전산교육매뉴얼' 제작을 주도한 팀장인 친구를 많이 의지하고 있었거든요. 다른 직원들이 그 친구랑 같이 일하고 싶다는 말을 계속 했는데도 그런 의견들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어요."
주간조 중에선 금호씨와 함께 3년 넘게 일한 장기근속자가 해고됐다. 혹시 장기근속자는 수당을 더 받았는지 묻자 둘 다 손사래를 치며 "모두 최저임금에 성과급 15만 원을 더 받는 걸로 월급이 똑같았다"고 억울해 했다.
▲ 지난 4일 기자회견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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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날도 모르고 2022년 11월, 통합콜센터 상담사들은 화장실에 갈 시간도 없이 전화를 받았다. 10월에 금리가 폭등하자 저축은행들이 11월 전후로 예금금리가 6퍼센트가 넘는 상품들을 내놓았다. 예금에 가입하려는 사람들이 몰린 반면 저축은행중앙회의 대비는 부족했다.
자체 개발한 애플리케이션인 SB톡톡플러스가 접속 지연과 오류들이 계속 되자 통합콜센터로 문의전화가 폭주했다. 콜센터 상담사들은 물 마실 틈도 없이 숨이 가쁘도록 전화를 받았다. 저축은행중앙회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새벽에도 고객들에 응대한 것은 콜센터 상담사들이었다.
"전날 6.3%짜리 예금상품이 나왔는데 바로 다음날 다른 저축은행에서 6.5% 예금상품이 나왔어요. 6.3%에 가입했던 사람들이 해지하고 6.5%로 갈아타려는데 안 됐던 거죠. 0시 넘어 가입하려던 고객들이 콜센터로 가입이 안 된다고 계속 전화를 했어요. 우리가 할 말은 '죄송합니다.' 그거 밖에 없었죠. 밤새도록 '죄송합니다, 고객님. 아침 9시에 해결될 겁니다'라는 말만 되풀이했어요."
하나씨가 밤새 욕받이가 됐던 악몽을 되살렸다. 그렇게 12월 중순까지 숨 막히는 살얼음판을 걸었던 이들이 보름 뒤에 받은 건 더 이상 출근하지 말라는 통보였다. 금호씨가 "회사가 사람을 하나의 소모품으로 보는 것 같다"고 분한 마음을 전했다.
하청업체 사람들이 업무 처리하듯 사람을 솎아낸 탓에, 현재 기존 직원 16명 중 2명만 남았다. 계약 해지된 장기근속자들의 고용을 요구하던 상담사들도 스케줄 편성에서 배제되고, 남은 이들은 대부분 근무 1년 미만으로 경력이 짧아 신규 직원들을 가르쳐야 하는 부담에 스스로들 그만뒀기 때문이다. 그 빈자리는 모두 신입들로 채워졌다. 금호씨가 상담이 결코 쉬운 업무가 아님을 강조했다.
"전화를 받았을 때 고객이 뭘 요구하는지 파악하는 게 어려워요. 지급정지 업무도 신속하고 정확하게 전산을 보고 신고를 해야 피해를 막을 수 있어요, 회사에선 채용공고에 '업무 쉬움, 3일 교육'을 자랑이라고 내는데 결코 쉽지가 않거든요. 신입 오면 기존 직원들이 다 가르쳐야 해요. 그게 힘들어서 직원들이 안 한다고 했을 거예요. 정말 다른 거 필요 없고 원청 직원이 딱 1시간만 콜센터에 와서 전화를 받아보라고 하고 싶어요."
피해는 고스란히 고객에게 돌아간다고 답답한 듯 토로하던 하나씨와 금호씨는 지난 12월 31일 이후 일터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하나씨는 '콜센터 원하청 착취구조 고발 시민사회 기자회견'에서 원청인 저축은행중앙회가 뒤로 숨지 말고 해결에 앞장설 것을 촉구하며 흔들리지 않는 의지를 밝혔다.
"모두가 우리에게 말했습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하지만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매일 던져져도 깨어지지 않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내일도 떨어지는 낙숫물이 되어 결국은 바위를 뚫어낼 것입니다. '지금 소희'인 우리는 '다음 소희'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영화 <다음 소희>에서 졸업을 앞두고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간 고등학생 소희는 콜센터 기업의 실적 압박과 열악한 처우, 인간을 밑바닥까지 끌어내리는 감정노동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지금 소희'인 그들은 지지 않고 일터를 되찾겠다는 뜻이다.
"우리는 반드시 저축은행중앙회 통합콜센터 상담사로 다시 돌아갈 그날까지 끝까지 투쟁할 것입니다."
'지금 소희'들의 투쟁은 계속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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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싸우는 노동자를 기록하는 사람들 '싸람' 홈페이지(ssaram.co.kr)에도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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