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파산해요" 날벼락…동탄에서도 대규모 전세사기(종합)
동탄지역 일대 피해 잇따라
경험 적은 2030 피해 집중
피해자들 "허술한 제도 탓"
경기도 화성시 동탄신도시의 한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유모씨(31·여)는 지난 6일 임대인에게 황당한 전화를 받았다. 오피스텔 주인 지모씨(33·여)가 "세금 체납으로 내일 파산하게 됐다. 보증금을 돌려드릴 수 없을 것 같다. 죄송하다"고 연락해온 것이다. 유씨의 보증금은 1억7300만원에 이른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잠 못 이루던 그는 한 메신저 공개 대화방에서 자신과 유사한 상황을 겪은 이들을 발견했다. 유씨는 "매우 화가 나고 비슷한 피해자가 많다는 게 괘씸하다"며 "형사고소까지 포함해 모든 방안을 알아보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동탄 오피스텔 전세 사기 피해 확대= 동탄신도시 일대에서 오피스텔 수백 가구를 소유한 임대인이 파산해 피해자 수십 명이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처지에 놓였다는 신고가 접수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또 다른 임대인에게 전세 사기를 당했다는 피해자들도 속속 나타나며 동탄신도시 일대 전세 사기 피해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19일 경찰에 따르면 경기 화성동탄경찰서는 전날 250여가구에 이르는 오피스텔을 보유한 임대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아 집단 전세 사기 사태가 발생할 것 같다는 신고를 받고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 관계자는 "한 피해자의 신고를 받고 경찰 수사를 개시했다"며 "추가 피해자와 정확한 피해금액을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신고자는 오피스텔 전세계약을 해 계약이 만료됐으나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피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온라인상에는 피해를 호소하는 글이 여러 건 게재되고 있다. 호소문은 동탄신도시 일대에 250여가구 오피스텔을 소유한 임대인 박모씨가 세금 체납 문제로 전세금을 돌려주기 어렵다며 오피스텔 소유권을 이전받을 것을 요구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오피스텔들은 현재 역전세 상태로 소유권을 이전받으려면 세입자별로 2000만~5000만원 정도 손해가 발생한다고 전해졌다.
경찰에 접수된 신고 외에도 동탄신도시 일대 전세 사기 피해를 봤다는 이들이 속속 나타나며 피해는 더 커질 전망이다. 자신을 또 다른 피해자라 소개한 A씨는 "40여가구 매물을 가진 임대인과 계약했는데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현재 해당 임대인에게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끼리 모여 형사 고소를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이와 별도로 경기남부경찰청은 전세 사기 관련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경기남부경찰청은 이날 최근 ‘무자본 갭투자’ 방식으로 전국에 빌라와 오피스텔 등을 3400여가구를 소유했던 속칭 ‘빌라의신’ 사건 관계자 5명을 구속, 공인중개사 130여명 불구속 송치했다고 밝혔다. 더불어 사건 관련 피의자 100여명도 추가로 인지해 수사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2030 피해 집중…깜깜이 시세 공개= 전국 곳곳에서 전세 사기 피해가 속출하는 가운데 부동산 계약 경험이 없는 2030세대들이 전세 사기의 표적이 된 것으로 나타났다. 전세 사기범들은 자기자본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데다 정보가 없다는 점을 악용했다. 경찰청이 지난해 7월부터 올해 3월까지 실시한 전세 사기 전국 특별단속을 보면, 전세 사기 피해자 1460명 중 20~30대 청년이 696명(47.7%)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40대(222명), 50대(167명), 60대(99명)가 뒤를 이었다. 경찰은 같은 기간 2141명을 검거해 189명을 구속했으며, 총 피해금액은 2728억원으로 집계됐다.
전세 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는 인천시 미추홀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직적으로 부풀린 시세도, 임대인의 수십억 원대 체납 사실도 미리 알 수 없는 허술한 제도가 이 같은 결과를 초래했다"며 "무분별한 전세대출과 묻지마식 보증, 보증 보험 부실 등에 명백한 책임이 있는 정부가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전세 사기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국가기관이 객관적인 시세평가를 하고 정보의 비대칭성을 줄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정병주 법률사무소 나온 대표 변호사는 "전세 사기 범죄는 깜깜이 시세 때문에 발생하게 된다"며 "국가가 신축 건물이 만들어지면 이에 대한 시세를 파악해 공개하는 방식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경제력이 낮은 청년층은 대체로 아파트보다 가격이 싼 빌라에 몰리는 경향이 있어 범죄 피해가 더 큰 상황"이라며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결하기 위해 시세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방안을 하루빨리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피해구제에 대한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남근 법무법인 위민 변호사는 정부가 내놓은 경매 일시 중단에 대해 "한국자산관리공사의 경매는 상당 기간 미룰 수 있다고 하더라도 법원의 경매는 미루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6개월 내로 피해 구제에 대한 특별법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개별 법적 분쟁은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임대보증금 반환 가구권을 자산관리공사 등에서 집단으로 인수해 임차인들이 계속 살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세희 기자 jangsay@asiae.co.kr
최태원 기자 skking@asiae.co.kr
황서율 기자 chest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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