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게임이 깨져도 무덤덤했다…삼성 백정현의 ‘반전 고백’
모두가 언급조차 하지 못했다. 선수도, 관중도 그 단어가 주는 무게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프로야구 역사에서 단 한 차례도 나오지 않았던 퍼펙트게임. 이번에도 대기록은 문턱에서 좌절됐지만, 정작 주인공이었던 삼성 라이온즈 왼손 투수 백정현(36)은 무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그것까지 다 예상하고 있었다”고 했다.
백정현은 18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키움 히어로즈전에서 선발투수로 나와 8회말 1사까지 안타나 볼넷을 하나도 내주지 않는 퍼펙트게임 행진을 이어가며 기대감을 키웠다. 이때까지의 투구수도 84개로 대기록 달성은 충분히 가능했던 상황. 그러나 에디슨 러셀의 타구가 내야안타가 되면서 퍼펙트게임과 노히트노런 충족 요건이 모두 깨지고 말았다. 여기에서 동력을 잃은 백정현은 다시 마운드로 올라온 9회 집중타를 맞고, 이날 경기를 8이닝 3피안타 6탈삼진 2실점으로 마쳤다. 삼성은 6-4로 이겼고, 백정현은 올 시즌 첫 번째 승리를 챙겼다.
퍼펙트게임은 말 그대로 한 명의 투수가 완벽하게 상대를 지배하는 경기를 말한다. 안타나 볼넷은 물론 야수진의 실책도 나오지 않는, 상대 타자가 1루를 밟지 못한 채 끝나는 경기가 퍼펙트게임이다. 그만큼 달성 확률은 복권 당첨 수준으로 낮다. 100년 넘는 역사의 미국 메이저리그에선 지금까지 단 23차례만 나왔다. 1936년 출범한 일본프로야구(NPB)에서도 16명만이 금자탑을 쌓았다. 1982년 탄생한 KBO리그에선 40년 넘도록 퍼펙트게임의 기쁨을 맛본 이가 없다.
그런 점에서 이날 백정현의 도전은 큰 주목을 받았다. 투구수 52개로 5이닝을 요리한 백정현은 6회와 7회에도 출루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8회 1사에서 상대한 러셀의 타구가 발목을 잡았다. 마운드 앞에서 바운드된 공을 잡기 위해 백정현이 글러브를 뻗었지만, 타구가 글러브를 맞고 옆으로 튀고 말았다. 유격수 이재현이 득달같이 달려와 뿌린 1루 송구도 러셀의 세이프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숨죽이며 지켜보던 삼성 벤치와 원정팀 관중석에선 아쉬움의 탄성이 나왔다.
아웃카운트 5개를 남기고 대기록이 무산된 백정현. 그런데 정작 당사자의 표정은 무덤덤했다. 평범한 내야안타 하나를 맞은 듯한 얼굴로 이내 다음 타자를 상대했다. 경기 후 만난 백정현은 “사실 3회부터 퍼펙트게임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말로 취재진을 놀라게 했다. 이어 “퍼펙트게임은 어렸을 때부터의 꿈이었다. 그래서 등판하는 날이면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며 담담하게 말했다.
사실 퍼펙트게임과 같은 대기록은 “의식하는 순간 깨진다”는 야구계 속설이 있다. 그러나 당사자는 예상 밖의 자세로 꿈같은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백정현은 “동료들도 나를 조심스러워하더라. 그런 상황이 재밌었다”며 슬며시 웃고는 “내야안타가 되는 장면도 생각은 하고 있었다. 이후에는 그냥 빨리 다음 타자를 잡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고 말했다. 이날 백정현과 호흡을 맞춘 포수 강민호는 “솔직히 경기 중간에는 차라리 ‘맞아라, 맞아라’라고 속으로 외쳤다. 그래야 서로가 편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막상 그런 내야안타가 나오니까 아쉽기는 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달했다.
백정현은 최근 트렌드와는 전혀 다른 공을 던진다는 점도 흥미롭다. 한화 이글스 문동주가 KBO리그 역대 최고인 시속 160㎞의 직구를 던지고, 키움 안우진 역시 연일 150㎞대 후반의 강속구를 뿌리는 요즘. 백정현의 이날 직구 최고시속은 겨우 138㎞였다. 주무기로 삼은 슬라이더와 체인지업 역시 120㎞대에서 머물렀다. 백정현은 “그런 투수들을 보면 단순히 공이 빨라서 결과가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코스별로 예리하게 제구가 돼서 좋은 결과가 나온다고 본다”고 말했다.
고봉준 기자 ko.bong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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