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시선] ‘아름다운 이별’ 정착하는 배구계

안희수 2023. 4. 19.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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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로공사 시절 박정아. 사진=KOVO

몇 년 전부터 프로야구에선 FA(자유계약선수) 계약하며 이적한 선수가 떠난 팀 팬을 향해 손 편지로 SNS(소셜미디어) 게재해 사과와 감사를 전하는 게 유행처럼 퍼졌다.

철저히 비즈니스 논리가 작용하는 FA 계약. 더 좋은 대우나 환경을 바라고 이적한 선수의 선택은 지탄받을 일이 아니다. 스포츠팬도 이를 잘 알고 있다. 아쉬움을 넘어 배신감을 느끼는 이들도 적지 않았지만, 손 편지로 전한 메시지가 성난 팬심(心)을 조금은 달래줬다. 

구단과 선수 사이는 잡음이 많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했다는 구단의 변, 섭섭한 마음을 느꼈다는 선수의 속내 등 협상 과정에서 생긴 불협화음이 흘러나왔고, 다음 시즌 서로에게 칼을 겨누는 모습이 조명된다. 사실 흔한 일이다.

여자 프로배구 한국도로공사(이하 도로공사)는 조금 다른 행보를 보여줬다.

도로공사는 지난 10일 개장한 FA 시장에서 지난 2017년 5월 영입해 6시즌 동안 동행한 '에이스' 박정아를 붙잡지 못했다. 박정아는 17일 페퍼저축은행과 총보수 23억2500만 원에 3년 계약했다. 도로공사는 17일 구단 공식 SNS에 박정아의 모습을 편집한 사진과 함께 "박정아 선수가 새로운 배구 인생을 시작합니다. 그동안 헌신에 감사드리며 멋진 미래를 항상 응원하겠습니다"라는 문구를 게재했다. 도로공사는 불과 계약 발표 이틀 전 박정아가 야구장(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 시구 행사에 참여했을 때도 에스코트하고 이 모습은 SNS에 게재한 바 있다. 


박정아는 '배구 여제' 김연경(흥국생명)과 같은 대우(1년 기준)를 받았다. 도로공사는 그만큼 제시하지 못했고, 페퍼저축은행과의 영입전에서 밀렸다. 하지만 변명 없이 선수의 앞날을 축복했다. 설령 제스처라 할지라도 주목할 만한 행보다. 박정아도 부담감을 덜고 자신의 이적으로 실망한 도로공사 팬에게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 것 같다.

같은 날(17일) 또 하나의 아름다운 이별이 있었다. GS칼텍스 베테랑 미들 블로커(센터) 김유리가 개인 SNS로 은퇴 소식을 알렸다. 무릎 부상을 이겨내지 못한 것.

2021년 2월, 프로 데뷔 12년 만에 처음으로 수훈 선수 인터뷰를 소화하며 보인 눈물로 시선을 모은 선수다. 데뷔 초기 한 선배의 괴롭힘 탓에 코트를 떠났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가 다시 코트로 돌아온 이력도 화제를 모았다.

김유리는 은퇴하며 "잘 참고 이겨낸 나에게 정말 고맙다"며 시원섭섭한 심경을 전했다. 이에 GS칼텍스 구단은 '율대장(이름과 대장을 합한 별명)'으로 불리며 팀 대표 역할을 했던 김유리를 예우했다. SNS에 응원 메시지를 보냈고, '은퇴 인터뷰'를 구단 공식 동영상 채널로 내보내며 팬들과 소통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2021년 12월에는 외국인 선수 레베카 라셈 마지막 경기까지 프로 정신을 발휘하며 박수 받았다. 그는 기량 미달로 소속팀이었던 IBK기업은행으로부터 방출 통보를 받았지만, 코로나 시국 탓에 입국과 행정 절차가 늦어진 후임 선수(산타나)가 합류할 때까지 경기를 소화했다. 3경기나 더 뛰었다. 팬들은 라셈의 모습에 큰 응원을 보냈고, IBK기업은행 국내 선수들은 조촐하지만, 뜻 깊은 송별회를 마련해 라 선생님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하루가 멀다고 사건·사고가 터지는 프로야구와 비교된다. 프로배구도 선수의 일탈, 구단의 비상식적 운영 등 부정적인 이슈가 있었다. 하지만 좋은 소식이 더 많이 전해진다. '아이콘' 김연경은 팬들의 성원을 외면하지 않고 은퇴 시점을 미뤘다. 스타성을 갖춘 새 얼굴도 꾸준히 등장한다. FA 시장을 향한 관심도 부쩍 커졌고, 선수 행선지만큼 훈훈한 계약 후일담도 주목 받고 있다. 경기력을 넘어 새로운 문화가 스포츠팬의 관심을 자극할만하다. 

안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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