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원’ 거짓 알고도 보도한 대가, 폭스뉴스 소송 합의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 소유의 폭스 뉴스가 2020년 대선 사기 주장과 관련한 가짜 뉴스를 퍼뜨린 명예훼손 소송 사건에서 7억8750억 달러(약 1조 390억 원) 합의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폭스뉴스는 거짓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뉴스 가치를 주장하며 여과 없이 이를 보도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언론 보도에서 사실 보도의 가치를 조명한 사건으로 평가된다.
도미니언 선거 시스템 측 저스틴 넬슨 변호사는 18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열고 “폭스뉴스에 제기한 소송에 합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거짓말에는 결과가 있다. 2년 전 거짓말의 물결이 미국 전역을 휩쓸고, 국가를 음모론으로 몰아넣었다”고 지적했다. 또 “폭스 뉴스는 우리에게 엄청난 피해를 준 거짓말을 인정했지만, 아무것도 이를 보상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폭스 측은 “도미니언사에 대한 특정 주장이 거짓이라는 법원 판단을 인정한다. 분열적인 재판 대신 우호적으로 해결하기로 한 결정을 통해 국가가 이 문제에서 나아가기를 바란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앞서 도미니언 측은 2021년 3월 폭스뉴스가 대선 직후 자사의 투·개표기가 조작됐다는 음모론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고도 이런 주장을 담은 뉴스를 보도했다며 16억 달러의 명예훼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폭스뉴스 보도는 도미니언 사의 투·개표기에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유리한 소프트웨어가 깔려있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졌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실제로는 트럼프 전 대통령 득표가 많지만, 상당수가 바이든 대통령 것으로 계산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델라웨어주 법원이 지난 1월 공개한 폭스뉴스 내부 이메일과 증언을 보면 폭스뉴스 측은 이런 주장에 의구심이 가득했다. 보수 성향의 유명 진행자 터커 칼슨은 방송에서 도미니언사가 투표 결과를 뒤집었다고 주장한 트럼프 측 시드니 파웰 변호사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프로듀서에게 말했다. 그는 트럼프를 “악마의 세력”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머독 회장도 파웰 등의 주장에 대해 “모두에게 피해를 주는 끔찍한 내용”이라는 메모를 수잰 스콧 폭스뉴스 CEO에게 보냈고, 스콧 역시 이에 동의했다. 폭스뉴스 기자들도 선거 사기 주장에 대해 “위험할 정도로 미쳤다” “사기라는 증거가 없다”는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의구심을 표했다.
폭스뉴스는 그러나 이후에도 계속해서 도미니언사 개표기 조작에 따른 대선사기 주장을 방송에 내보냈다. 폭스 측은 도미니언사가 소송을 제기하자 “트럼프 전 대통령과 그의 변호인의 주장은 뉴스 가치가 있어 보도했을 뿐”이라며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수정헌법 1조에 의해 보호받는다”고 주장했다.
에린 데이비스 델라웨어주 판사는 그러나 지난해 7월 폭스 측이 도미니언사의 소송을 각하해 달라는 청구를 기각하며 “선거를 조작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진실을 외면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폭스 측은 “선거 관련 언론 보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라며 “미국의 설립 기반인 '자유'의 대척점에 서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이번 합의는 델라웨어주 법원이 정식 재판을 위해 배심원단을 선출한 직후 이뤄졌다. 양측은 이날 배심원단에 소송을 제기하며 공개 변론을 시작할 계획이었다. 폭스 측 합의는 머독 회장 등 핵심 관계자 상당수가 증인으로 채택된 점 등이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뉴욕타임스(NYT)는 “한 세대 동안 미디어 조직에 대한 가장 중대한 재판으로 기록됐을 사건의 놀라운 반전”이라며 “이번 재판은 명예훼손법이 피해자를 적절하게 보호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수정헌법 1조의 주요 시험대가 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폭스 뉴스를 상대로 한 소송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뉴욕 항소법원은 지난 2월 또 다른 개표 시스템 회사인 스마트매틱이 폭스 뉴스를 상대로 제기한 27억 달러 규모 명예훼손 손배소 소송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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