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만보 하루천자]"60대 노쇠 정도가 10년 뒤 건강 결정"…해답은 '내재역량' 강화
세월이 흐르며 겪는 노화는 모든 생명체에게 찾아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노쇠는 다르다. 의학적으로 노쇠는 노화와 질병의 축적으로 기능이 감퇴해 장애나 입원 가능성이 높아진 상태를 말한다. 같은 나이더라도 노쇠가 심하면 통상 노화가 더 진행된 것으로 본다. ‘노화 속도’는 어떻게 나이를 먹어가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선제적인 건강관리만이 노쇠를 늦추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60대 중반 노쇠 정도, 10년 뒤 건강상태 예측”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정희원 교수, 연세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신재용·장지은 교수, 하버드대 의대 김대현 교수팀이 최근 노쇠와 관련한 주목할 만한 연구 결과를 내놨다. 연구팀은 만 66세 성인 96만8885명을 비교 분석해 이 나이 때 심하게 노쇠한 집단이 건강한 집단에 비해 10년 내 사망 위험이 약 4.4배 높은 것을 확인했다. 또 심하게 노쇠한 집단에서 10년 내 당뇨, 관상동맥질환, 심부전, 낙상 등 노화에 따른 질환이 발생하거나 타인의 돌봄이 필요할 위험은 약 3.2배 높았다.
연구팀은 노쇠 정도에 따른 10년 내 사망률과 노화에 따른 질환 발생률을 최대 10년(평균 6.7년) 분석했다. 노쇠 정도는 병력, 신체·검체검사, 신체건강, 정신건강, 장애 등 5개 영역 39개 항목을 평가·측정해 그 정도에 따라 ▲건강한 집단 ▲노쇠 전 집단 ▲경증 노쇠 집단 ▲중증 노쇠 집단으로 분류했다. 우선 각 집단의 10년 내 사망률을 분석했더니 건강한 집단에서는 연간 100명 0.79명, 노쇠 전 집단에서는 1.07명, 경증 노쇠 집단 1.63명, 중증 노쇠 집단 3.36명으로 노쇠 정도에 따라 증가했다. 노화에 따른 질환도 건강한 집단에서 연평균 0.14건, 노쇠 전 집단 0.23건, 경증 노쇠 집단 0.29건, 중증 노쇠 집단 0.45건씩 발생했다.
특히 질환별로 중증 노쇠 집단에서 10년 내 심부전·당뇨·뇌졸중이 발병할 위험은 각각 2.9배, 2.3배, 2.2배씩 컸다. 신체적·정신적 기능 저하로 타인의 돌봄이 필요한 비율은 중증 노쇠 집단에서 건강한 집단에 비해 10.9배 높았다. 이밖에 낙상, 골절, 관상동맥질환 등 암을 제외한 대부분 질환의 발병률이 건강한 집단보다 중증 노쇠 집단에서 유의미하게 높았다. 이번 연구는 미국의사협회가 발행하는 국제학술지인 ‘자마 네트워크 오픈(JAMA Network Open, IF=13.360)’에 게재됐다. 정희원 교수는 “같은 나이더라도 생물학적 노화 정도, 즉 노쇠 정도가 사람마다 다르며, 이러한 차이로 먼 미래의 사망과 건강 상태까지도 예측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고 이번 연구의 의의를 설명했다.
노쇠 막을 ‘내재역량’ 강화해야베스트셀러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를 출간하는 등 노년의학 전문가로 활발히 활동 중인 정 교수는 노쇠와 관련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앞서 2월에는 ‘씹는 기능’이 저하된 노인일수록 노쇠 위험이 커진다는 연구 결과를 내놔 학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해당 연구를 통해 정 교수는 65세 이상 노인 3000명의 노쇠 정도와 음식을 씹는 저작 기능을 분석해 음식을 씹기 어려운 노인이 그렇지 않은 노인에 비해 노쇠 비율이 약 2.68배 높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음식을 씹는 능력은 영양 섭취와 식단에 큰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노년기의 전신 건강상태를 파악하는 지표로 저작 능력을 활용할 수 있다는 데 이번 연구의 의의가 있다.
노쇠를 늦출 방법은 없을까. 정 교수는 먼저 “가능한 젊을 때부터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규칙적인 생활 습관과 운동, 금연, 절주, 스트레스 관리 등 기본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러한 신체적·정신적·사회적 기능 요소를 모두 종합적으로 점수화한 개념이 바로 ‘내재역량’이다. 정 교수는 내재역량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생물학적 노화가 앞당겨지는 가속노화 사이클이 유발된다고 지적한다. 정 교수가 책을 낸 배경에도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빨리 내재역량을 강화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그는 “노화와 질병은 한순간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습관에 의해 만들어지며, 요행에 기댈수록 여러 급성·만성 질환이 발생해 노화가 급격히 진행되는 계기를 만든다”면서 “수십 년 동안 꾸준히 내재역량을 관리하면 오랜 기간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돼 있다”고 역설했다.
이미 노쇠가 진행된 경우라면 당장이라도 관리에 들어가야 한다. 나이가 들다 보면 약을 여러 개 먹는 경우가 많은데, 이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노쇠의 흔한 원인이 되는 근감소증이나 인지기능 감소, 우울, 불안, 수면장애 등을 경험한다면 전문의를 찾아 노인의학적인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정 교수는 노쇠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돌봄의 사회적 부담을 줄일 대책 마련도 강조한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빠른 고령화와 돌봄이 필요한 인구 급증이 예상된다”며 “이를 예방하고 지원할 수 있는 사회적 논의와 정책 개발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관주 기자 leekj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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