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팡이야 고마워…'재활용 1%뿐' 골칫덩이 맡기자 벌어진 일

강찬수 2023. 4. 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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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재활용선별장에서 직원이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 직원은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오는 쓰레기 속에서 비닐, 캔, 종이, 플라스틱 등 재활용품을 가른다. 중앙포토

폴리프로필렌(PP)은 전 세계에서 한 해 6800만 톤(2015년 기준)이 생산돼 플라스틱 생산량의 28%를 차지한다.
하지만 재활용되는 것은 전체의 1%에 머물고 있다.

골칫거리가 된 폐(廢) 폴리프로필렌을 곰팡이로 빠르게 분해하는 방법이 개발되고 있어 시선을 끌고 있다.
바로 열·자외선·산화제 등으로 미리 처리한 다음 곰팡이에게 분해를 맡기는 방법이다.

호주 시드니 대학 연구팀은 최근 'npj 물질분해 (npj Materials Degradation)'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열·자외선 등으로 전(前)처리한 PP를 곰팡이가 분해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곰팡이를 접종해 30일 배양하면 PP의 21%가, 90일 동안 배양하면 25~27%가 분해됐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과립(granule)과 필름(film), 알루미늄에 코팅된 것(metallised film) 등 3가지 형태의 PP를 실험에 사용했다.

식품보관 용기는 석유화학 제품인 폴리프로필렌으로 만든다. 사진 셔터스톡

열·자외선·산화제로 전처리


누룩곰팡이의 일종인 아스페르길루스 테레우스[Department of Biology, Faculty of Science, Shahid Chamran University of Ahvaz , Ahvaz, Iran]
연구팀은 이들 PP를 각각 세 가지 서로 다른 방법으로 전처리했다.

첫 번째는 뜨거운 공기가 나오는 에어 프라이 오븐을 사용해 200℃에서 15분 동안 열을 가했다.
두 번째는 자외선(UV, 254nm 파장) 램프에서 5㎝ 떨어진 곳에서 24시간 동안 노출했다.
마지막으로 산화제인 펜톤(Fenton) 시약에 7일 동안 노출했다.

연구팀은 500mL 플라스크에 배양액 200mL에 넣고 전처리한 PP 40㎎을 투여한 뒤 곰팡이 균주를 접종했다.
배양액에는 미네랄과 비타민만 들어있고, 곰팡이가 먹이로 이용할 수 있는 탄소 성분은 넣지 않았다.

실험에 사용한 곰팡이는 누룩곰팡이의 일종인 아스페르길루스 테레우스 (Aspergillusterreus)와 엔지오돈티움 알붐(Engyodontium album)으로, 서로 다른 플라스크에 접종해 분해 능력을 비교했다.

흰색 곰팡이인 엔지오돈티움 알붐.[ University of Sydney]

이들 곰팡이는 세포 외로 분해 효소를 분비해서 폴리머를 분해한 뒤, 분해된 산물을 세포 내로 갖고 들어와 이용한다.

특히, 영양분과 수분이 낮은 가혹한 환경에서도 생존할 수 있어 이번 연구에 활용했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90일 배양에서 25~27% 분해


폴리프로필렌을 곰팡이로 분해하는 과정을 요약한 그림. [University of Sydney]
실험 결과, 알루미늄으로 코팅된 PP를 자외선으로 처리한 뒤 아스페르길루스를 접종해 90일 동안 배양한 경우 PP가 25.29% 줄었다.
알루미늄 코팅 PP를 열처리한 후 엔지오돈티움을 접종해 90일 배양한 경우는 27.08%가 분해됐다.

배양이 진행되면서 PP 분해와 동시에 곰팡이의 생물량(biomass)이 증가했다.

자외선으로 전처리한 알루미늄 코팅 PP에 아스페르길루스를 접종한 경우는 mL당 1.07㎎의 생물량이 생성됐다.
전처리된 PP를 곰팡이가 영양분으로 활용해 성장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곰팡이를 이용한 폴리프로필렌 분해 실험 결과. 왼쪽은 아스페르길루스 테레우스, 중간은 엔지오돈티움 알붐. 맨 오른쪽은 곰팡이를 접종하지 않은 대조군이다. 폴리프로필렌 형태와 전처리 유무, 전처리 방법 등에 따라 차이가 있다. 대체로 배양기간이 길어지면서 분해가 더 많이 진행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연구팀은 '푸리에 변환 적외선(FTIR)' 분석 방법으로 실제 PP 분해와 관련된 화학반응이 일어났는지도 조사했다.

전처리 과정에서 화학적인 변화가 나타났고, 이로 인해 물을 밀어내는 플라스틱의 소수성(疏水性)이 감소해 곰팡이 효소가 PP를 생분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 확인됐다.


전처리로 생긴 균열 생분해 촉진


폴리프로필렌 표면. 맨 윗줄은 전처리를 하지 않은 상태, 두 번째 줄은 전처리를 한 표면. 세 번째 줄부터는 곰팡이가 자란 표면. [University of Sydney]
연구팀은 또 주사 전자 현미경(SEM)을 통해 PP 표면에 어떤 변화가 나타나는지도 분석했다.
전처리하지 않은 PP의 경우 표면이 매끄러웠지만, 전처리한 PP의 표면은 다양한 균열이 나타나고 홈이 생기고 요철도 나타났다.

전처리를 통해 PP가 부서지기 쉬운 형태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런 표면에 곰팡이가 부착해 자라면서 생물학적 분해가 진행됐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번 실험을 통해 곰팡이가 PP를 빠르게 분해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고, 조건을 최적화하면 분해 속도를 더 높일 여지가 충분하다"면서 "분해 효율이 향상된 이후에 파일럿 플랜트 등 상업적인 규모로 공정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실용화를 위해서는 소각 처리와 비교했을 때의 처리 속도와 경제성 문제, 분해 과정에서 생산되는 곰팡이 바이오매스 활용 문제 등에 대해서도 보완이 필요하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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