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동철 칼럼] 흔들리는 ‘재정의 문지기’ 예타

라동철 2023. 4. 19. 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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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타당성조사, 불요불급한
대형 국책사업 걸러내 예산 낭비
막고 재정 건전성 높이는 역할

그런데도 정치권은 표 노리고
선심성 사업 밀어붙이려
면제 남발 등 흔들기에 한통속

여야, 예타 완화 밀어붙이다
비판 여론 거세게 일자 보류
국민 감시로 순기능 지켜내야

지난 17일 오후 광주대구고속도로 중간 지점인 전북 남원 지리산휴게소에서 광주시와 대구시가 공동 주최한 행사가 열렸다. 광주·대구 공항 이전 특별법 제정을 축하하고 달빛고속철도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 특별법 성사를 위해 협력하는 업무협약을 맺는 자리였다. 두 도시 시장들과 시의회 의장, 지역 국회의원 등 유력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축제 분위기 속에 행사가 치러졌다. ‘달구벌’ 대구와 ‘빛고을’ 광주가 두 도시의 앞글자를 딴 ‘달빛동맹’을 내걸고 지역 현안 해결을 위해 공동 노력하는 것은 반길 일이지만 이날 행사는 마냥 유쾌하지는 않았다.

지난 17일 국회를 동시에 통과한 대구·경북 신공항 특별법과 광주 군(軍)공항 이전 특별법은 두 지역의 숙원인 공항 이전의 길을 열어줬지만 막대한 예산 낭비가 예견되는 무리수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대구 도심에 있는 민군(民軍) 통합공항을 경북 군위·의성 지역으로 이전하는 데는 12조8000억원, 광주 군공항을 전남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는 데는 6조7000억원이 들어갈 것으로 추산된다. 두 특별법은 현 공항 부지 개발 수익으로 사업비를 충당하는 ‘기부 대 양여’ 방식을 추진하되 부족분은 국고로 메우기로 하는 단서를 달았다. 기존 부지 개발 수익성이 저조하거나 사업비가 예상보다 불어날 경우 재정 부담이 가중되는 구조인데 과거 대형 국책사업들의 사례를 보면 괜한 우려가 아니다. 사업의 타당성을 검토할 필요가 있는데도 두 사업은 특별법이란 우회로를 통해 예타를 면제받았다. 재정에 미칠 부담도 우려되지만 사사건건 소모적 대립을 해 온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예산 낭비 우려엔 눈을 감고 ‘텃밭’ 숙원 사업을 주고받는 짬짜미 입법을 강행한 것이라 더더욱 씁쓸하다.

예타 제도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국가 재정 낭비를 막기 위해 도입했다. 총사업비가 500억원 이상이고 국가의 재정지원 규모가 300억원 이상인 사회기반시설 사업, 지능정보화 사업, 국가연구개발 사업 등을 새로 추진하기 전에 타당성을 검증하는 제도다. 비용 대비 편익인 경제성, 정책적 타당성, 지역균형발전 필요성 등을 평가해 일정 기준에 미달하면 국비를 투입할 수 없다. 불요불급한 사업을 미리 걸러낼 수 있는 수단이라 예산 낭비를 막는 데 톡톡히 기여했다.

예타는 다수의 정치인들에겐 눈엣가시였다. 대형 사업을 자기 지역에 하나라도 더 유치해 다음 선거에 활용하고 싶은데 예타가 발목을 잡는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정치권의 예타 무력화 시도는 집요했다. ‘지역 균형발전, 국가 정책적으로 추진이 필요한 사업 등’ 예타 적용 예외 조항을 악용해 타당성이 부족한 사업들을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이는 일이 다반사였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예타 면제는 이명박정부 때 90건(61조1000억원), 박근혜정부 때 94건(25조원)이었다. 문재인정부는 김천~거제 남부내륙철도, 평택~오송 철도 복복선화, 새만금공항 사업 등 일괄 면제한 국가 균형발전 프로젝트 23개 사업(23조1000억원)과 가덕도 신공항 사업(13조7000억원) 등 149건(120조1000억원)으로 급증했다.

예타 면제에는 여야가 한통속이었고 윤석열정부라고 다르지 않다. 지난해 9월 제도를 개편해 예타 면제를 최소화하겠다고 발표해 놓고는 대구·경북 신공항과 광주 공항 이전 사업의 길을 터줬다. 이것만도 19조원이 넘는 규모다. 지난주에는 예타 면제 기준을 총사업비 1000억원(국비 지원 500억원) 이상으로 높이는 내용의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위에서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내년 총선을 겨냥한 선심성 사업이 남발될 수 있다는 비판이 급등하자 기재위 전체회의 상정을 보류했지만 ‘소위 의결은 유효하다’며 추후 추진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다.

대규모 사업이라고 반드시 예타를 거쳐야 한다는 건 아니다. 경제성이 다소 낮더라도 지역균형발전, 새로운 복지제도 도입 등 정책적 필요가 있고 국민적 공감대가 있다면 면제될 수 있지만 남용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전국에 널려 있는 적자 투성이 공항들에서 절감하듯 타당성이 부족한 데도 정치적 고려에 치우쳐 무리하게 밀어붙인 사업은 두고두고 국가 재정에 짐이 된다. ‘건전 재정의 문지기이자 방파제’라는 예타 본연의 기능이 훼손돼선 안 된다. 정치권에 대한 감시를 게을리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다.

라동철 논설위원 rdch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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