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심상한 사고와 심상한 대처

2023. 4. 19.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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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일어날 것처럼 예사롭지 않으면 '심상치 않다'고 한다.

심상한 땅을 욕심낸 그들에게는 백성의 목숨이야말로 심상한 것이었다.

"해와 달과 별이 제자리를 잃으면 일개 선비를 재상으로 발탁하고, 오랑캐가 나라를 침범하면 졸병을 뽑아 장군으로 삼는다." 서애 유성룡은 이 구절을 풀이해 "사태가 다급하면 심상하게 대처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라고 했다.

특단의 조치가 없으면 스쿨존 사고도, 음주운전 사망사고도, 심상한 뉴스로 다시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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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유승(성균관대 교수·한문학과)


무슨 일이 일어날 것처럼 예사롭지 않으면 ‘심상치 않다’고 한다. 반대로 ‘심상하다’고 하면 대수롭지 않다는 말이다. 심상은 원래 길이를 뜻하는 한자에서 유래한 말이다. 심(尋)은 여덟 자, 상(常)은 그 두 배가 되는 열여섯 자다.

‘춘추좌씨전’에 따르면 춘추시대에는 여러 제후들이 여덟 자 내지 열여섯 자 정도에 불과한 작은 땅을 차지하려고 전쟁을 일으켰다고 한다. 춘추시대의 한 자는 20㎝ 정도니까 여덟 자는 1m60㎝, 열여섯 자는 3m20㎝ 정도다. 고작 한 평도 못 되는 땅을 차지하려고 전쟁을 벌였다는 말이다. 심상이 대수롭지 않다는 뜻을 가지게 된 유래다.

그 대수롭지 않은 땅을 차지하려는 전쟁에서 얼마나 많은 백성이 목숨을 잃었겠는가. 하지만 제후들은 백성의 목숨 따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거리낌 없이 전쟁을 벌였다. 심상한 땅을 욕심낸 그들에게는 백성의 목숨이야말로 심상한 것이었다. 춘추시대에 전쟁이 심상하게 벌어진 이유다.

아무리 끔찍하고 충격적인 사건이라도 자주 벌어지면 심상하게 여기게 되고, 심상하게 여기면 대처도 미온적인 수준에 그치기 마련이다. 이래서는 곤란하다. ‘후한서’의 ‘진귀전’에서 말했다. “해와 달과 별이 제자리를 잃으면 일개 선비를 재상으로 발탁하고, 오랑캐가 나라를 침범하면 졸병을 뽑아 장군으로 삼는다.” 서애 유성룡은 이 구절을 풀이해 “사태가 다급하면 심상하게 대처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라고 했다.

해와 달과 별이 제자리를 잃으면 재해가 일어나고, 오랑캐가 침범하면 나라의 존망이 위태롭다. 평상시라면 선비를 재상으로 발탁하고 졸병을 장군으로 삼는 파격적 인사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천재지변이나 전쟁처럼 심상치 않은 사태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심상한 대처로는 심상치 않은 사태를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유성룡이 미관말직에 머물러 있던 이순신과 권율을 파격 승진시킨 이유가 이것이다.

뉴스를 오래 보노라면 비슷한 사건이 일정한 주기로 반복되는 느낌이 든다. 수백 명의 희생자를 내는 대형 참사도 반복되고, 단 한 사람뿐이지만 어이없이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사고도 반복된다. 사고가 일어나면 원인을 분석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제시하는 것이 언론의 할 일이다. 하지만 언론이 아무리 떠들어도 바뀌는 것은 별로 없다. 국민적 공분도 언론의 질타도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진다. 그리고 잊을 만한 때가 되면 비슷한 사건이 다시 터진다.

대형 참사는 예측하기 힘들다. 참사가 일어나는 장소도 제각각이다. 다음은 바다 위가 될지 번화가 한복판이 될지 알 수 없다. 원인도 늘 복합적이다. 수많은 실수와 오판, 관행과 태만이 겹치면서 일어난다. 하지만 비슷한 장소에서 비슷한 유형의 사고가 반복된다면 원인은 심상한 대처에 있다.

얼마 전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어린 생명이 음주운전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스쿨존을 일반 도로와 다름없이 심상하게 여기고 과속과 불법 주정차, 음주운전을 일삼는 어른들의 잘못이다. 벌써 몇 명째인지 모르겠다. 분노한 여론이 들끓자 불시 음주단속을 한다는 둥, 신상공개를 추진한다는 둥 북새통이다. 하지만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모르겠다.

음주 단속은 음주운전자가 우연히 걸려들기를 바라는 것뿐, 어쩌다 단속에 성공해도 요행에 불과하다. 걸린 사람도 재수 없어 걸렸다는 생각뿐이다. 이런 식의 단속이 지속 가능한지도 의문이다. 신상공개는 성난 여론을 달래기 위한 사후약방문일 뿐 사고 예방과는 거리가 있다. 결국 모두 심상한 대처에 불과하다. 특단의 조치가 없으면 스쿨존 사고도, 음주운전 사망사고도, 심상한 뉴스로 다시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장유승(성균관대 교수·한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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