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경의 에듀 서치] ‘대입 불이익’ 마약·성범죄자는 없고, 학폭 가해자는 있다?

이도경 2023. 4. 19.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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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에 사는 고교생 A군은 친구들과 필로폰을 유통하다 최근 경찰에 덜미를 잡혔습니다. 학원에서 서로 알게 된 A군 일당은 신분 노출을 피하고자 성인 중간 판매책을 모집하는 등 치밀하게 움직였습니다. ‘마약상’ 흉내를 낸 것입니다. 경찰이 이들로부터 압수한 마약만 4억원대에 이른다고 합니다.

B군은 기숙사 생활을 하는 고교에서 동급생에게 지속적으로 언어폭력을 가해왔습니다. 피해학생이 평생의 상처로 남을 정도로 B군의 언어폭력은 잔혹했습니다. 방과후에도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 학교, 피해학생의 심신은 극단적 선택을 시도할만큼 피폐해졌습니다. B군은 결국 전학 처분을 받고 학교를 떠났습니다.

A군이 형기를 마치고 대학 문을 두드린다면 그의 마약 유통 전력은 입시에 지장을 줄까요. 교육부에 물어봤습니다. 대답은 “지장 없다”입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잘 보면 명문대도 노려볼 수 있습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의 주인공인 화학 교사처럼 마약 제조 지식을 위해 화학과 진학을 노리더라도 막을 장치는 없답니다.

B군은 어떨까요. 교육부 대답은 “지장 있다”입니다. 학교폭력(학폭) 가해 전력은 현재도 수시모집에서 불이익을 받고 있습니다. 이에 더해 앞으로는 수능 점수로 뽑는 정시모집을 비롯해 논술, 실기까지 모든 전형에서 제약이 따를 것으로 보입니다.

A군에게는 기회를 주지만 B군에는 주지 않는 상황, ‘B군의 죄질이 A군보다 나쁜가’라는 질문에 교육부는 “그렇게 보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럼 A군은 되고 B군은 안 되는 상황이 납득 가능한가’라는 물음에는 답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최근 한덕수 국무총리까지 나서서 발표한 ‘학폭 근절 종합 대책’은 이렇게 한꺼풀만 들춰내도 현실성이나 형평성 문제 등이 발생할 수 있는 허점들이 보였습니다.

질문을 좀 더 확장해보겠습니다. 대입에 재도전하는 이른바 N수생은 매년 14만명 규모입니다. 대다수는 고교를 졸업한 성인들입니다. ‘성범죄 전력이 다수 있는 자가 캠퍼스 생활을 해보고 싶다면?’ ‘군대에서 후임병이 탈영할 정도로 가혹행위를 하다 처벌받았다면?’ 교육부 대답은 역시 “대입에 불이익 없다”입니다. 미성숙한 청소년 때의 학폭이 성인 때 저지른 범죄보다 대입에선 무겁게 처벌되는 것입니다.

다른 청소년 범죄는 어떨까요. 최근 세종시에선 한 고교생이 교원평가를 하면서 여교사의 신체 부위를 노골적으로 비하하는 성희롱을 했다가 물의를 빚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충남에서는 수업 중 교단에 드러누워 여교사를 휴대전화로 촬영하는 듯한 중학생 사진이 공개돼 공분을 일으킨 일도 있었습니다. 교사에게 주먹을 휘두르거나 성추행을 하는 등 수많은 교권 침해 사례 가운데 드러난 일부일 뿐입니다.

여론이 들끓자 교육부는 부랴부랴 교권침해 전력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해 대입에서 불이익을 주겠다는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법을 고쳐야 하는 문제라 실행 여부는 아직 불확실합니다. 만약 법을 개정해 학생부에 기재하더라도 수시모집에 한정되는 얘기입니다. 학폭처럼 정시에서도 불이익을 줄 계획은 아직 없어 보입니다. ‘스승을 구타한 행위와 친구를 폭행한 행위, 무엇이 더 나쁜가’ ‘왜 학생을 때리면 대입에서 감점을 받지만, 선생님을 때리면 그렇지 않은가.’ 교육부 답변이 궁금해집니다.

미성년자가 범죄를 저질렀을 때 받게 되는 소년법의 보호처분과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학폭법)의 가해학생 처분 사이에 형평성 문제도 짚어봐야 합니다. 보호처분은 ‘보호자 또는 보호자를 대신해 소년을 보호할 수 있는 사람에게 감호 위탁’하는 1호 처분에서 ‘장기 소년원 송치’인 10호 처분이 있습니다. 학폭에서는 가장 가벼운 1호 서면사과부터 가장 무거운 9호 퇴학 처분까지 내리고 있습니다.

소년법은 ‘소년의 보호처분은 그 소년의 장래 신상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범죄 전과로 기록되지 않고 학생부에도 남지 않으니 대입에는 영향이 없습니다. 하지만 학폭 가해 전력은 모든 대입 전형에서 영향을 받게 됩니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친구를 때리면 대입에서 불이익을 받게 될 수 있지만 길거리에 지나가는 미취학 아동을 폭행해 보호처분 10호를 받더라도 대입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전문가들도 비슷한 지적을 합니다. 승재현 한국 형사·법무정책연구원 박사는 “학폭이 정시에 영향을 준다면 선고유예 이상 판결도 정시에 반영하는 게 맞다. 사회적으로 비난 가능성이 더 큰 범죄가 대입에서 불이익이 없는데 학폭만 있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이동현 법무법인 더앤 변호사는 “소년법에선 보호처분을 공개하지 않고, 학폭법은 기록을 남겨 대학에 공개한다. 여론에 떠밀려 법과 제도를 만들다보니 체계가 덜 잡혀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박상수 학교폭력 피해자 가족협의회 자문변호사는 “청소년 범죄 중 학폭만 대입에 영향을 주도록 한 것은 (법령의) 체계 정합성에 맞지 않는 것”이라며 “학폭은 법무부·행정안전부·법원 등이 함께 대책을 만들어야 하는데 교육부가 단독으로 자기들이 할 수 있는 것만 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수사기관의 수사와 사법부의 재판에 의한 보호처분은 대입에서 영향이 없는데, 수사 전문성이 없는 학교와 교육 당국 조사·결정은 대입에 영향을 주는 게 앞뒤가 안 맞는다는 말도 나옵니다.

학폭 대책 발표 뒤 교육부에서는 안도하는 분위기가 흐릅니다. 그런데 이런 ‘날림’ 대책 말고 법무부, 행정안전부, 여성가족부 등과 논의해 제대로 된 청소년 범죄 대책을 내놓으면 어떨까요. 적어도 사회부총리 부처라는 타이틀이 부끄럽지 않으려면 말이죠.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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