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호 논설위원이 간다] 돈 몰리고 체력 강해진 미국에 “첨단기술 공유” 요구를

서경호 2023. 4. 19.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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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정상회담 앞두고 미국 경제 들여다보니


서경호 논설위원
요즘 미국이 잘 나간다. 제조업 호황에 대한 기대가 넘쳐난다. 반도체법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으로 대표되는 산업정책이 효과를 내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7일 ‘격변(Transformational change)-바이든의 산업정책 열매 맺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IRA와 반도체법 이후 미국 제조업에 2000억 달러(263조 5000억원)가 넘는 투자 약속이 쏟아졌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8월 의회를 통과한 반도체법과 IRA는 미국 내 반도체 생산과 청정기술(클린 테크) 기지를 육성하는 데 4000억 달러 이상을 세액 공제나 보조금 지급, 대출 지원에 투입한다.

「 반도체법과 IRA법 통과된 이후
기업들 2040억 달러 투자 약속

지난 30년간 경제 성과도 훌륭
보호무역에 보조금까지 쏟아내

“한국 제조업 미국 성장에 기여
양자컴퓨터·AI 등 협력 응해야”

잇단 투자로 일자리 8만개 기대

논설위원이 간다

FT에 따르면 지난해 8월 두 법이 통과된 후 기업들이 올해 4월 14일까지 미국에 총 2040억 달러의 대규모 투자를 발표했다. 동종 업계의 2019년 투자 계획의 거의 20배, 2021년의 두 배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일자리는 8만2000개 넘게 늘어난다. 반도체·전기차·배터리 분야에 대부분의 투자가 집중됐다. 이 가운데 대만 TSMC가 애리조나 피닉스 반도체 공장에 투자하는 280억 달러가 최대 규모다. 기존 투자와 합치면 TSMC 투자는 총 400억 달러로, 이제까지 미국의 외국인 직접투자로는 사상 최대다. 미국 기업 투자가 3분의 2, 외국 기업 투자가 3분의 1을 차지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최신호도 ‘미국의 놀라운 경제 성과에서 얻는 교훈’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최근 30년의 통계를 바탕으로 미국이 얼마나 위대한지 “미국, 너희들은 좀 알아야 해”라고 설교하는 투의 기사인데 흥미로운 대목이 많다. 한마디로 FT 기사처럼 요즘이 아니라, 미국은 원래 예전부터 잘 나갔다는 분석이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미국 경제 망했다고 미국인은 생각한다. 무역은 바가지라고 여겼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고(make America great again) 한 것이나 조 바이든 대통령이 2조 달러를 쓰며 경제 재건에 나선 것도 그래서다. 거의 80%의 미국인은 자식 세대가 자신들보다 더 가난할 것으로 비관한다.

하지만 이는 미국의 놀라운 성공 스토리를 저평가한 것이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 제1의 부국이고 가장 생산성이 높고 혁신적인 거대 경제권이다. 1990년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시장환율로 전 세계 GDP의 4분의 1을 차지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중국 경제의 영향력이 커졌는데도 미국 위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선진국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더 놀랍다. G7에서 미국 GDP 비중은 1990년 40%에서 현재 58%로 커졌다. 1인당 소득은 서유럽이나 일본보다 훨씬 빠르게 늘었다. 구매력 평가 기준으로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미시시피주도 5만 달러대로 프랑스보다 높다.

G7에서 미국 비중 더 높아져

15일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보수 집회. 참석자들은 “미국 만세, 윤석열 만세”등을 외쳤다. 서경호 기자

경제성장의 요인을 따져보면 더 인상적이다. 미국 근로자 수는 1990년보다 거의 3분의 1이 늘었다. 놀랍게도 그들 중 많은 이들이 학사와 석사 학위를 가졌다. 서유럽과 일본은 10분의 1이 늘었을 뿐이다. 미국 근로자는 유럽이나 일본 근로자보다 더 오래 일하고, 생산성도 훨씬 높다. 미국 기업은 해외 등록된 특허의 5분의 1 이상을 갖고 있다. 중국과 독일의 해외 특허를 합한 것보다 많다. 연구·개발(R&D)에 가장 많이 투자하는 상위 5개 기업이 전부 미국 기업이다. 이들 기업은 지난해 2000억 달러를 R&D에 쏟아부었다. 1990년 S&P 500에 100달러를 투자했다면 현재 2000달러 이상이 됐다. 다른 선진국 증시보다 네 배 더 올랐다.’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경제의 성공 비결로 경제 규모, 노동력의 양과 질, 경제의 역동성을 꼽았다. 첫째, 사이즈. 거대 소비시장이 있으니 R&D 자금도 대고 증시에도 투자할 수 있었다. 중국과 미래의 인도가 구매력 기준으로 미국을 따라올 정도는 될 것이다. 유럽조차 여전히 진정한 단일시장이 되기 위해 악전고투 중이다. 파산법과 계약법의 차이와 다양한 규제 장벽 탓에 은행가·회계사·건축사들이 국경을 넘어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한다.

둘째, 노동력의 양과 질. 미국은 이민 덕분에 다른 선진국에 비해 젊다. 출생률도 높다. 2021년 미국 근로자의 17%가 이민자였다. 반면 일본은 3% 미만이다.

셋째, 역동성. 창업하기 쉽고 노동시장이 유연하다. 올 들어 구글의 알파벳 등 기술기업에서 해고가 많았지만 이 중 많은 이들이 수요 많은 다른 기업으로 가거나 창업했다.

물론 단점도 있다. ‘사회안전망이 빈약하다. GDP 대비 사회보장 지출이 적지만 점차 유럽식으로 바뀌고 있고 경제성장에 따라 복지 지출도 더 빠르게 늘고는 있다. 중산층 세후소득이 부자와 빈자보다 더디게 늘고, 중장년층 실업이 많아진 것도 어두운 측면이다. 젊은이의 마약 남용과 총기사고로 미국인 전체의 기대수명이 선진국보다 낮은 것도 창피한 일이다.’

정치는 미국에서도 골칫거리인 모양이다.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인이 경제가 고쳐야 할 문제라고 여길수록 향후 30년간 정치인이 분탕질을 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잡지가 진짜 하고 싶은 얘기는 기사 말미에 있었다.

‘결국 개방성이 이제까지 미국을 번영하게 했는데 트럼프와 바이든 모두 보호무역으로 뒷걸음질 쳤고 이민에 부정적이다. 경쟁에서 뒤처진 분야에 보조금을 뿌리면 단기적으로 투자가 늘겠지만 혁신할 유인을 줄이고 결국 쓸모없고 시장만 왜곡하는 로비만 양산할 것이다.’ 한마디로 잘 나가는 너희들이 왜 보호무역에 보조금까지 뿌리느냐는 힐난이다.

영원한 친구도, 원수도 없어

요즘 잘 나가고, 지난 30년 잘 나갔던 미국과의 정상회담이 다가오고 있다. 미국의 도·감청 뉴스가 터진 뒤인 지난 12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여당인 윤상현 의원이 박진 외교부 장관에게 영화 ‘타짜’의 명대사 “원래 이 바닥에는 영원한 친구도, 원수도 없어”를 인용해 한마디 했다. “국제 관계에 영원한 적국도, 우방국도 없습니다.”

미국을 잘 아는 국가정보원 전직 간부는 “경제안보라는 개념에는 미국의 우월한 지위가 투영돼 있다”며 “미국은 언제나 안보를 중시하는 국무부를 앞세워 양자 협상을 하기 때문에 경제 논리가 안보 논리에 지배당하기 쉽다”고 걱정했다. 그는 “통상을 담당하는 경제부처와 기업의 주장을 충분히 들어서 철저하게 국익에 맞게 실리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공급망 전문가인 김계환 산업연구원 산업통상연구본부장은 “미국이 한국이 가진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역량을 가져가는 만큼 우리도 양자 컴퓨팅, 인공지능(AI) 등 미국이 앞서가는 첨단 분야의 지식과 기술을 공유해 달라고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 멕시코·터키 등 25개국…미·중 편들지 않는 ‘T25’

「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기후변화에 있어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동맹으로 여긴다. 지난 2월 워싱턴 방문 때는 전임자인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이 금지했던 미국과의 공동 환경기구를 다시 설립했다. 미국은 브라질을 중요한 비(非) 나토 동맹국으로 대접한다. 반면 서방이 요구하는 우크라이나 무기 제공을 다른 남미 국가와 함께 거부했고 지난 14일 중국을 방문해 유대를 과시했다. 지난해 중국과의 무역액은 1530억 달러로 지난 20년간 37배 성장했다. 미·중 무역전쟁 와중에 대중국 농산물 수출을 늘린 덕도 봤다.

#지난 3월 인도-태평양 안보포럼인 쿼드의 일원인 일본 총리가 인도를 방문했다. 기념비적 외교라는 평가가 나왔다. 2021~22년 회계연도 인도의 대미 무역은 대중 무역을 뛰어넘었다. 껄끄러운 중국 대신 친서방 행보를 이어간 영향이다. 반면 무기와 원유는 러시아산을 쓴다. 올해 G20 의장국인 인도는 남반부 저개발국(the global south)을 대변하겠다고 선언했다.

초강대국 사이에서 한쪽 편을 들지 않고 양쪽과 거래하듯(transactional) 실용적으로 중립을 지키는 큰 나라 25개를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최신호 커버스토리 ‘초강대국 사이에서 살아남기’에서 ‘T25’라는 이름을 붙였다. 러시아 제재에 동참한 친서방도, 러시아를 지지하는 국가도 아닌 그룹, 또한 미국과 중국의 대결에서 중립을 지키는 나라들이다. 멕시코·이스라엘·터키·베트남·태국·이집트·남아공·필리핀·칠레·나이지리아·브라질·싱가포르·인도·파키스탄·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아르헨티나·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 등이 T25다. ‘한쪽 편들기를 원하지 않는 꾀 많은(crafty) 나라’를 분석한다는 부제가 붙은 이 기사는 미·중 전략 경쟁의 틈바구니에 끼어 있는 우리도 참고할 만하다.

T25는 글로벌 미들파워로 자리 잡고 있다. 인구 대국 인도부터 소국 카타르까지 T25는 국부나 정치시스템이 판이하지만 매우 실용적이고 힘 있는 집단으로 부상 중이다. 전 세계 인구의 45%를 차지한다.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92년 11%에서 2023년 유럽연합(EU)보다 많은 18%로 커졌다.

T25는 좋게 보면 실사구시를 추구하고 삐딱하게 보면 기회주의적으로 움직인다. T25 중립 전략에는 위기와 기회가 공존한다. 이코노미스트는 “T25의 전략이 성공할 경우 앞으로 수십년간 국제질서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들 비동맹 국가를 제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미국과 중국의 경쟁도 치열하다. 미국의 외교전략은 이원적이다. 유럽과 아시아의 민주주의 핵심 동맹이 우선이고 삐걱대는 국제기구는 그다음이다. 하지만 최근 중국을 방문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유럽은 미국의 대만 전략의 추종자가 돼서도 안 되고 미국 리듬에 몸을 맡겨서도 안 된다고 미국과 각을 세웠다. 동맹 안에서도 다른 의견이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이 서방과 하나가 되는 과정에서 남반부 저개발국을 소외시키면 비극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서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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