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연의 시인이 사랑한 단어] 윤동주, 부끄러움
부끄러움은 누구의 것일까. 소심하고 내향적인 사람의 성정으로 치부되기도 하지만, 결핍에 대한 외부적 반응이자 억압에 대한 내면의 반응이기도 하다. 부끄러움은 못 갖춘 것에 더 마음이 쓰일 때 발현되는 감정이기도 하다. 이따금 기습하듯 찾아오는 부끄러움도 있지만, 인생의 한 면에서 내내 동행하는 부끄러움도 있다. 부끄러움과 평생을 동행한다는 것만으로도 그 삶은 녹록할 리 없다.
박완서의 소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나는 각종 학원의 아크릴 간판의 밀림 사이에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라는 깃발을 펄러덩펄러덩 훨훨 휘날리고 싶다.” 부끄러움은 학습할 수 없다. 어디서 배워서 얻게 되는 무언가가 아니다. 그래서 ‘부끄러움을 타는 사람’ 혹은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 같은 표현보다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 혹은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부끄러움은 분명 사람의 약점이 될 수 있지만, 인간의 큰 미덕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사실은, 부끄러움을 자주 드러내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은 없다는 점이다. 부끄러움을 모를 때에 오히려 나쁜 사람일 확률이 높다.
윤동주는 ‘부끄러움’을 누구보다 예민하게 상기해온 시인이다. 어떨 때는 수줍음으로, 어떨 때는 수치심으로 ‘부끄럽다’는 시어를 적어넣었다. 윤동주만큼이나 부끄러움을 자주 기록한 시인은 아마도 없을 듯하다.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윤동주가 가장 열렬히 드러낸 욕망이었다. 부끄러움이 없기를 바라는 게 가장 큰 욕망이었을 한 시인을 떠올리자니 새삼 부끄러워진다. 한편으로 이 부끄러움이 다행이라며 안도하게도 된다. 윤동주를 다시 꺼내 읽은 아침, 누군가의 부끄러움을 마주했을 때, 특히 평생을 부끄러움에 시달리다시피 한 누군가를 마주했을 때 그를 한층 더 반기며 눈 밝은 인사를 건네야겠다 생각한다.
김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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