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아의 행복한 가드닝] 목단이 필 무렵
지난주 속초엔 거친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에 버스정류장이 엎어지고, 전선이 끊기고, 어설프게 매달아둔 우리 집 창고 문도 달아났다. 그 시각 강릉에선 불이 나 마을 전체를 태우기도 했다. 다행히 천둥 번개를 동반한 강한 소나기가 내려 겨우 진압이 되어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음 날 바람이 잔잔해져 나가 보니 집 정원에선 수선화 피해가 가장 심했다. 막 꽃망울을 터트리려던 봉오리가 꺾이면서 말라버린 게 보였다. 이렇게 되면 올해는 더는 꽃을 피우기 어렵다. 식물엔 꽃 피우는 일만큼 중요한 게 없다. 자손을 만드는 일이라 모든 에너지를 모아 1년에 한 번 꽃을 피우는데, 이 일을 어쩌나. 꽃을 못 본 나의 아쉬움보다 올해를 이렇게 헛보낼 식물에 맘이 더 쓰였다.
그런데 오늘 새벽 일어나 나의 방 커튼을 걷으니 뒷마당 돌담 밑에서 자라는 목단(모란)에 커다란 진분홍 꽃이 피어난 게 보였다. 9년 전 집수리를 할 때 원래 있던 밤나무 한 그루, 감나무 네 그루, 그리고 목단 두 그루를 남겨두었다. 오래도록 자리를 잡고 살아온 식물들에 대한 배려이기도 했고, 어쩌면 진정한 이 집 주인이 이 식물들 아닐까 그런 맘도 들었다. 그 모진 바람에도 꺾이지 않고 꽃을 피운 목단이 더없이 반가워 얼른 뛰어나가 사진부터 찍어두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게 당연한 게 아니고, 잊지 않고 찾아와주는 게 참 고마운 일임을 새록새록 느낀다.
목단과 작약은 꽃으로는 구별이 어렵다. 겨울에도 딱딱한 목대를 지니고 있다면 목단 혹은 모란이고, 부드러운 줄기가 사라졌다 다시 싹을 틔우면 작약이다. 목단·작약은 꽃만큼이나 잎도 예쁘다. 하지만 여름 지나면서 하얗게 퍼지는 곰팡이 병충해를 입기도 한다. 이걸 좀 피하려면 꽃이 지자마자 가지를 3분의 1 정도 잘라주는 것이 좋다. 그러면 밑에서 다시 새잎이 나와 조금 더 건강한 잎을 볼 수 있다.
오경아 정원 디자이너·오가든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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