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절규 "피 마르는 느낌, 죽지 말고 견디자"
[선대식, 권우성 기자]
▲ 18일 오후 인천 주암역 광장에서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전국대책위 주최로 전세사기 피해자 추모제가 열렸다. |
ⓒ 권우성 |
광장에 작은 분향소가 마련됐다. 조그마한 탁자에 고인이 된 전세사기 피해자 3명의 영정사진이 놓였다. 다른 피해자들과 시민들은 이곳에 국화 한 송이를 올려놓은 뒤 고개를 숙였다.
18일 밤 인천 주안역 남부광장에서 사망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 추모제가 열렸다. 이날 추모제는 원래 지난 2월 세상을 떠난 박아무개씨의 49재를 기리는 추념행사로 마련됐다. 하지만 최근 며칠 새 2명의 피해자 연달아 유명을 달리하면서, 피해자 3명의 추모제가 됐다.
이 자리에는 전국 각지의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모였다. 제주에서 온 피해자도 있었다. 추모제에 참여한 피해자들은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 18일 오후 인천 주암역 광장에서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전국대책위 주최로 전세사기 피해자 추모제가 열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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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일 오후 인천 주암역 광장에서 전세사기 피해자 추모제에 앞서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전국대책위 기자회견이 열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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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왕' 김대성 전세사기 피해자 이철빈씨는 "두 번째, 세 번째 피해자가 세상을 떠났다는 얘기를 듣고 너무 충격을 받았다.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죄송스러웠다. 저도 당장 뒤따라가야 할 것 같은데…"라면서 참담한 심정을 밝혔다.
그는 피해자가 처한 상황을 전했다. "신용불량자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극도의 불안감이 피해자들의 목을 조여오고 있다"면서 "정신과 치료를 받거나 유산을 하거나 파산을 신청하기 위해 퇴사하거나 신혼부부가 이혼하거나 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자신의 처지를 전하면서 울먹였다.
"저 또한 전세사기 피해를 인지하고 난 다음에 몇 달 동안 피가 마르는 느낌이었다. 아버지께는 아직 말씀 못 드렸다. 30년 넘게 3교대 야간 근무를 하면서 일하시던 아버지가 지원해준 전세보증금을 잃어버렸는데, 저는 제대로 말씀을 못 드렸다. 이 뉴스를 보실지 모르겠다. 도대체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할지 잘 모르겠다."
안상미 미추홀구 전세사기 대책위원장은 고인들과의 인연을 이야기하면서 흐느꼈다.
"첫 번째 희생자는 참 배려심이 깊은 친구였다. 저 힘들까봐 국회 가는 길에 모시러 오기도 했다. 인터뷰할 사람이 필요하다니까 적극적으로 해준 마음이 착한 친구였다. 어느 날 갑자기 그런 얘기(죽음)를 듣고 나니까, 이게 진짜 마음이...."
그는 "두 번째 희생자도 간식 가져다주면서 많이 못 도와줘서 미안하다고 했다. 세 번째 피해자도 그렇게 적극적이었다고 한다"라고 말했다.
안상미 위원장은 "(피해 사실을) 가족한테도 얘길 못한다. 지금 우리한테 가족은 우리 동네 사람, 같은 피해자다. 같은 상황에 같이 공감해줄 수 있는 그들이 가족"이라면서 "저희는 가족을 잃은 거다. 며칠 만에 3명을 잃었다"라고 말했다.
이날 추모제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은 "죽지 말자"는 거였다. 임철빈씨는 "우리 모두 피해가 해결될 때까지 더 이상 세상을 떠나지 말고 함께 힘을 합치고 견딥시다. 반드시 돈을 돌려받고 우리의 일상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 18일 오후 인천 주암역 광장에서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전국대책위 주최로 열린 전세사기 피해자 추모제에서 참가자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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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일 오후 인천 주암역 광장에서 전세사기 피해자 추모제에 앞서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전국대책위 기자회견이 열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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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제에 참여한 피해자들은 정부에 실효성 있는 대책을 요구하면서 다른 피해자들과 시민을 향해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이날 윤석열 대통령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으로부터 경매 일정 중단 또는 유예 방안을 보고 받은 뒤, 이를 시행하도록 했다. 경매 중단은 피해자들이 오래 전부터 요구했던 내용이다.
▲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18일 오후 인천 주암역 광장에서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전국대책위 주최로 열린 전세사기 피해자 추모제에 참석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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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추모제에는 많은 정치인이 참여해 "죄송하다"면서 고개를 숙였다. 전세사기 피해구제 특별법을 대표 발의한 심상정 정의당 국회의원을 비롯해, 허종식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심재돈 국민의힘 미추홀구·동구갑 당협위원장이 이날 자리에 참석했다.
피해자들은 추모제 직전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출범을 알렸다. 대책위는 문제 해결을 위한 범정부 태스크포스(TF) 구성과 대통령 면담 등을 비롯해 10가지 요구사항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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