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희망 조짐 5가지...좀비 기업 퇴출·‘찐 기술’ IPO 인정
지난해부터 이어진 바이오 위기론이 올해도 이어지는 모습이다. 셀리버리, 뉴지랩파마 등 일부 기업들이 상장폐지 위기에 처하면서 앞날이 어둡기만 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반등론이 서서히 고개를 든다. 더 이상 떨어질 바닥이 없다는 분석이다. 주요 바이오 기업과 전통 제약사들이 곳간을 열고, 기술력을 갖춘 기업들이 기업공개(IPO)를 무사히 마치면서 반등론에 힘이 실린다.
(반등 조짐 1) 위기가 곧 기회
‘산업 정화’ 과정…“기술력 갖춰야 생존”
지난해 말부터 국내 바이오업계 유동성 위기가 지속되고 있다. 호황기에 너 나 할 것 없이 발행한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가 부메랑이 됐다. CB와 BW는 주식 연계 채권 상품이다. 발행 후 특정 시기가 되면 주식 전환 옵션이 부여된다. 구체적으로 CB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 채권이고, BW는 채권 발행 기업의 신규 주식을 매입할 수 있는 권리가 붙어 있다.
바이오 호황기였던 2020년과 2021년, 국내 바이오 기업들이 CB를 통해 조달한 금액은 총 3조원 이상이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 5년 동안 바이오 기업이 발행한 CB 총액(2조5900억원)을 훌쩍 넘어선다. 이때 발행한 대다수 CB의 만기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다. 다만 조기상환청구권(풋옵션)이 걸려 있는 경우가 많은데, 풋옵션 행사는 통상 CB 발행 2~3년 뒤부터 가능하다. 올해부터 CB 풋옵션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의미다.
바이오주 주가 부진이 이어지면서 풋옵션을 행사할 채권자가 상당수일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CB와 BW는 주가 상승에 따른 시세 차익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주가가 예상보다 낮을 경우에는 원리금이라도 지켜야 한다는 심리가 생길 수밖에 없다. 문제는 바이오 기업들의 현금 보유량이다. 이렇다 할 수익원, 기술력이 없는 기업들도 무리하게 CB·BW를 찍어내 자금을 조달해왔던 터라 돈을 갚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다만 최근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일종의 ‘산업 정화’ 과정이라는 주장이다. 호황기에 각종 기업들이 ‘바이오’를 외치며 난립했는데, 오히려 위기가 기술력을 갖추지 못한 ‘좀비 바이오’를 시장에서 퇴출하게 만들었다는 분석이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산업 상황이 좋지 않아도, 일정 규모 투자는 이뤄진다”며 “기술력을 갖춘 기업은 기술 수출 등을 통해 살길을 찾고 있다. 바이오 산업이 재도약하기 위해서는 난립했던 업체들이 정리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올해 1분기, 기술 수출 성과가 눈에 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 따르면, 올 1분기에만 총 8건의 기술 수출이 이뤄졌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건 늘었다. 총 수출 규모는 2조1556억원. 전년 동기(2조1740억원)와 비슷한 수준이다. 다만 바이오업계에 따르면 올해는 계약상 비공개한 수출 사례가 3건 있다. 이에 올해 1분기 기술 수출 규모는 지난해 같은 기간을 훌쩍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정유경 신영증권 애널리스트는 “현재와 같이 자금 조달이 녹록지 않은 환경에서는 더욱 기본 기술과 플랫폼 경쟁력을 보유한 기업 중심으로 투자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신규 상장 기업 수익률 ‘두 자릿수’
최근 바이오 기업들의 연이은 IPO 선방 사례도 바이오업계에 기대감을 불어넣는 요소다.
올해 1분기 증시에 입성한 바이오 기업은 3곳이다. 이 중 지난 2월 코넥스에서 코스닥으로 이전 상장한 이노진을 제외하면 바이오인프라, 지아이이노베이션 2곳이 IPO에 나섰다. 바이오인프라와 지아이이노베이션 IPO는 선방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특히 지아이이노베이션은 수요 예측에 기관 투자자 563곳이 참여하는 성과도 이뤄냈다.
상장 이후 투자 심리도 긍정적이다. 변동성이 크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지만 4월 12일 기준 바이오인프라와 지아이이노베이션 종가는 2만8300원, 2만5000원이다. 공모가와 비교하면 각각 34.7%, 92.3% 증가한 수치다.
이들의 IPO 선방에 힘입어 바이오 기업들의 공모 자신감도 회복세다. 최근 바이오 기업들의 IPO 본격화 행보가 이어지는 배경이다. 일부 기업들은 계획을 수정해 연내 증시에 입성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백신·면역 질환 치료제 개발 기업 큐라티스는 최근 증권신고서를 제출하고 IPO 일정에 착수했다.
또 큐리옥스바이오시스템즈, 엔솔바이오사이언스, 와이바이오로직스는 연내 코스닥 입성을 목표로 IPO를 진행할 계획이다. 이들은 한국거래소에 상장 예비심사를 청구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셀트·SK M&A 예고…증설 나선 삼성
침체에 빠진 바이오 산업 재도약을 이끄는 건 ‘바이오 거인’들이다. 그동안 확보한 현금을 바탕으로 올해 적극적 지분 투자와 인수합병(M&A), 공장 증설 등을 통한 경쟁력 확대에 나선다. 이들의 신사업 행보가 국내 바이오 생태계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초기에는 대형 M&A 위주로 진행되더라도, 장기적으로 바이오 스타트업 M&A 등이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실제 국내 주요 바이오 기업 M&A는 다소 소극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최근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 SK바이오사이언스는 ‘K-바이오 랩허브’를 구축하고 유망 기술·플랫폼을 가진 스타트업에 자금 지원, 협력 기회 등을 부여하며 향후 전략적 연계, M&A 등을 도모하고 있다.
M&A에 가장 적극적인 거인은 ‘셀트리온’이다. 2년 만에 경영 일선에 복귀한 서정진 셀트리온 명예회장을 앞세워 대형 M&A를 노리고 있다. 내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셀트리온은 국내외 10여개 M&A 인수 후보를 검토하고 있는데 올해 하반기 M&A를 본격화할 방침이다.
실제 서 명예회장은 글로벌 빅파마 ‘박스터인터내셔널’의 바이오파마 솔루션 사업 부문 인수도 검토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박스터의 바이오파마 솔루션 사업 부문은 인수 가격만 5조원으로 평가받는 초대형 매물이다. 서 명예회장은 3월 28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박스터 쪽에서 연락을 받았는데) 저렴하면 인수한다고 말했다”며 “(박스터 쪽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와달라고 얘기했다”고 전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도 세포유전자치료(CGT) 위탁개발생산(CDMO) 등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M&A를 활용할 방침이다. 안재현 SK디스커버리 사장을 기타비상무이사로 선임하는 등 준비는 마친 상태다. 안 사장은 SK그룹에서 대표적인 M&A 전문가로 통한다. 코로나19 기간 진단키트로 호황을 누렸던 만큼, M&A에 필요한 자금도 넉넉한 상태다. 지난해 말 기준 SK바이오사이언스 현금성 자산(단기 금융 상품 포함)은 1조4808억원에 달한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주력 사업인 CDMO 초격차에 나선다. CDMO는 위탁개발(CDO)과 위탁생산(CMO)을 합친 단어다. CDMO는 바이오업계에서 통용되는 일종의 아웃소싱 사업이다. 반도체 사업의 ‘파운드리’와 비슷한 역할이다. 차이가 있다면, 파운드리는 단순 생산 위탁이지만 CDMO는 연구·개발, 임상 시험, 제품 생산, 인허가 지원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CDMO 성패를 가르는 요소도 파운드리와 유사하다. 특히 CMO의 경우 생산 설비 규모가 핵심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20년 11월부터 인천 송도 글로벌캠퍼스에 4공장을 건설 중이다. 현재 삼성바이오로직스 공장은 3곳이다. 1공장은 3만ℓ, 2공장은 15만4000ℓ, 3공장은 18만ℓ 생산능력을 갖췄다. 4공장의 연간 생산능력은 24만ℓ에 달한다. 생산능력만 놓고 보면 압도적 1위다. 여기에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최근 5공장 증설 계획도 밝혔다.
(반등 조짐 4) 곳간 연 전통 제약사
제약·바이오 생태계 단비 될까
전통 제약사 움직임도 주목할 대목이다. 전통 제약사들은 대규모 현금을 보유하고도 지금까지 눈에 띄는 투자 행보를 보이지 않았다. 현재 영위하는 사업에 만족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최근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기존 사업이 삐걱거리자 미래 먹거리 창출을 위해 외부 리소스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신약 개발 기업부터 의료 기기, 디지털 헬스케어 등 바이오 산업 전반에 투자하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바이오 생태계에 위치한 기업들의 지분을 사들이거나 M&A 절차를 밟고 있는데, 위기에 빠진 중소형 바이오 업체들의 새로운 탈출구가 되고 있다는 평가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유한은행은 최근 ‘프로젠’과 300억원 규모 투자 계약을 체결했다. 프로젠은 다중표적 항체 기반 플랫폼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다. 유한양행은 기존 최대주주 에스엘바이젠이 보유한 주식을 전량 넘겨받고, 향후 프로젠이 발행하는 신주를 인수하는 조건으로 투자 계약을 맺었다. 기업결합 신고 절차를 거쳐 5월 초 인수 절차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유한양행은 프로젠 인수로 신약 개발 역량을 강화한다는 밑그림을 그린다. 양 사는 다중타깃 항체 치료제 등 차세대 혁신 바이오 신약 후보물질 개발에 힘 쏟을 방침이다. 프로젠은 플랫폼 기반 신약 개발을 25년째 이어온 기업이다. 최근 이렇다 할 수익성을 내지 못해 경영 위기를 겪기도 했는데, 유한양행이라는 든든한 뒷배가 생긴 셈이다. 프로젠은 최근 2년 동안 100억원에 가까운 적자를 냈다.
종근당, JW중외제약 등도 전략적 투자, 공동연구 등 다양한 방법으로 바이오 생태계에 자금을 지원한다. 종근당은 이엔셀에 20억원을 투자하고 세포·유전자 치료제를 공동 연구한다. CAR-T(키메라 항원 수용체T) 치료제와 AAV(아데노부속바이러스) 기반 바이러스 치료제, 세포·유전자 치료제 등 첨단바이오의약품을 함께 연구하고 생산 프로세스를 가속화할 방침이다.
JW중외제약도 에스엔이바이오에 전략적 투자를 단행했다. 지난해 20억원을 투자해 에스엔이바이오 지분 5.1%를 취득했다. 에스엔이바이오는 약물을 손상된 부위에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에는 마이크로RNA를 탑재한 줄기세포 기반 엑소좀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JW중외제약은 에스엔이바이오 투자를 통해 엑소좀 신약 파이프라인 확보를 노린다는 방침이다.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바이오 기업들이 안정적 실적을 올리는 전통 제약사의 지원으로 R&D 재원을 마련하게 된 셈이다. 바이오헬스케어에 특화한 헤지펀드를 이끄는 한 관계자는 “선진 자본 시장에서는 바이오 기업도 M&A를 통한 엑시트(Exit)가 활성화돼 있다”면서 “유한양행의 프로젠 인수처럼 국내에서도 바이오 기업 M&A가 이뤄졌다는 점은 긍적적 요소”라고 강조했다.
(반등 조짐 5) 정부 지원 의지
‘제2의 반도체’…11만 인력 양성 계획
정부의 바이오 산업 육성 의지도 긍정적 요소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월 28일 바이오 산업을 ‘제2의 반도체’라고 표현하며 바이오 강국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후 정부는 지난 3월 15일 열린 제14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바이오를 6대 첨단 산업 분야에도 포함했다. 정부는 6대 첨단 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할 방침이다. 최근에는 바이오업계 고민거리 ‘인력난’ 해결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정부는 지난 4월 6일 ‘바이오헬스 인재 양성 방안’을 발표했다. 향후 5년간 핵심 인재 11만명 양성이 골자다.
구체적인 계획을 보면, 우선 올해 2개 대학 6개 학과에 바이오헬스 마이스터대를 도입한다. 특성화고, 마이스터고와 공공·민간 실습 시설을 연계해 실습 교육을 확대한다. 디지털 치료 기기 등 융복합 기술 발전에 대응한 혁신 융합 대학 등 융복합 교육도 제공한다.
바이오업계는 정부의 인력 육성안을 반기는 분위기다. 바이오업계 인력난은 꽤나 오래전부터 이어졌다. 지난해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바이오 인력 부족률은 3.4%다. 국내 12대 주력 산업 중 바이오 인력 부족률은 두 번째로 높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근에는 기업 간 ‘인력 유출’ 이슈가 확산하고 있다. 일부 기업은 법정 공방까지 펼치고 있다. 실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롯데바이오로직스에 “삼성바이오로직스 임직원을 상대로 한 지속적인 인력 유인 활동을 중단해달라”며 내용증명을 세 차례 보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05호 (2023.04.19~2023.04.2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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