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분기 영업익 추월한 LG전자
‘군계일학(群鷄一鶴)’.
증권가에서 LG전자의 올해 1분기 실적을 표현할 때 자주 등장하는 용어다. 정보기술(IT) 산업 전반적으로 여전히 수요가 부진한 가운데, LG전자가 견조한 실적을 거둔 영향이다. 전통적인 캐시카우(현금 창출원)인 생활가전(H&A)과 TV(HE)는 물론, 신사업인 자동차 전장(VS) 등 전 분야에서 고루 선방하며 적자 사업부가 사라졌다. 특히 처음으로 삼성전자의 분기 영업이익을 추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증권가는 올해 LG전자가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번 호실적이 단발성에 그치지 않고 추세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 같은 전망에 증권사들은 줄줄이 LG전자 목표주가를 상향 조정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주가가 저평가됐다는 분석이 나오는 상황이다. 다만 변수는 있다. LG전자는 과거에도 상저하고 흐름이 반복된 경험이 있다. 여전히 IT 산업 전반적으로 수요 둔화가 지속되는 상태기 때문에 가전 수요 회복을 논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업체 간 출하량 수성을 위한 경쟁이 심화된다면 마케팅 비용이 급증할 여지도 있다.
고른 성장에 연간 최대 실적 전망
LG전자는 연결 기준 올해 1분기 잠정 실적을 집계한 결과 매출 20조4178억원, 영업이익 1조4974억원을 기록했다고 4월 7일 공시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2.6%, 22.9% 감소한 수치다. 단, 역대 1분기 실적 가운데 매출은 두 번째, 영업이익은 세 번째로 높은 기록이다. 영업이익은 지난 3월 증권사 평균 전망치였던 8854억원보다 69%나 웃돌았다. 특히 삼성전자의 1분기 영업이익을 앞지른 점이 눈에 띈다.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96%가량 줄어든 6000억원을 거둔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LG전자의 분기 영업이익이 삼성전자를 넘어선 것은 지난 2009년 국제회계기준(IFRS)이 도입된 이후 14년 만에 처음이다.
LG전자의 1분기 깜짝 실적은 재고 상태가 건전화된 가운데, 비용 절감 효과가 나타난 영향이 크다. LG전자는 지난해 글로벌 경기 둔화에 따른 전반적인 수요 감소에 선제적으로 재고를 조정하며 대응했다. 특히 TV를 담당하는 HE사업본부는 지난해 말부터 영업손실을 감수하고 가동률을 15%가량 낮춰 강도 높은 재고 조정을 진행했다. 그 결과 3분기 연속 적자를 탈피하고 이번 분기 흑자로 전환했다. 가동률을 낮춘 덕분에 회전율이 빠르게 늘어 재고 자산이 매출로 빠르게 이어졌다.
프리미엄 위주 제품 믹스와 비용 효율화도 수익성 개선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TV 부문에서 재고 조정 효과로 낮아진 패널 가격에 힘입어 비용 절감이 마진 확대로 이어졌고, 마케팅 비용을 줄인 것도 수익성 개선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여기에 물류비 하락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박형우 SK증권 애널리스트는 “원가에서는 물류비 감소로 가전 영업이익률이 10%를 웃돌았다”며 “패널 가격 하락도 HE와 모니터(BS) 부문의 수익성 개선에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TV 등 가전뿐 아니라 신사업인 VS 부문 성장세도 무시할 수 없다. VS 부문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25% 이상 증가하며 가파른 외형 성장을 이뤄냈다. 영업이익률 역시 2.6%로 지속적인 성장세를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양승수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는 “VS 부문은 차량용 반도체 가격 인상 등으로 비용 증가가 있었으나, 매출 상승효과로 흑자 기조를 유지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가장 큰 변수는 ‘매크로 환경’
증권가는 LG전자의 이번 호실적이 단발성 사건이 아닐 것으로 판단하는 분위기다. 분기 호실적을 넘어 LG전자가 올해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증권사들이 평균적으로 전망하는 LG전자의 올해 실적은 매출 85조6652억원, 영업이익 4조3325억원이다. 지난해 기록한 3조5510억원보다 22%가량 늘어난 영업이익을 달성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기존 역대 최대 영업이익을 기록한 2020년의 3조2959억원을 넘어서는 수치다. 특히 2020년은 코로나19 수혜가 있었던 반면, 올해는 전반적인 수요 약세에도 불구하고 최대 이익을 달성한다면 의미가 남다르다는 평가가 벌써부터 나온다.
이 같은 장밋빛 전망을 내놓으며 증권사들은 줄줄이 LG전자 목표주가를 상향 조정했다. KB증권(17만원), 하나증권(16만8000원), 메리츠증권(15만원), DS투자증권(15만원), 삼성증권(14만5000원), SK증권(13만8000원) 등이 LG전자의 잠정 실적 발표 후 기존보다 높은 목표주가를 제시했다. 이로써 증권사들이 제시한 LG전자 평균 목표주가는 15만579원으로 맞춰졌다. 4월 12일 종가(11만4600원) 대비 31.39% 상승 여력이 있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여전히 LG전자 주가가 저평가됐다는 데 의견을 모은다. KB증권에 따르면 4월 10일 기준 LG전자 주가는 12개월 선행 주가순자산비율(PBR) 0.9배, 주가수익비율(PER) 7.2배 수준이다. 과거 10년간 지표와 비교하면 역사적 하단에 해당한다.
글로벌 경쟁사 시가총액과 비교하면 저평가가 심각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올투자증권에 따르면 전 세계 3위 TV업체인 TCL의 시가총액은 약 15조원이다. 3위 가전업체 월풀(Whirlpool) 역시 9조원에 달한다. 반면 전 세계 TV 2위, 가전 1위인 LG전자의 시가총액은 19조원에 불과하다.
김양재 다올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현재 LG전자 주가는 글로벌 경쟁사들과 비교하면 HA·HE 두 개 부문 가치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수준이다. HA·HE뿐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VC 부문의 성장성 등을 감안하면 LG전자의 주가 재평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LG전자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이 지배적이지만, 투자자들이 주의해야 할 부분도 있다. 대부분 전문가들이 올해 변수로 꼽는 것은 ‘거시 경제 환경’이다. 비용 절감 등으로 인한 수익성 회복이 이뤄진 상황에서 주가의 추가 상승은 거시 경제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다. 김광수 이베스트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글로벌 경기 침체 가능성이 지속되는 가운데 소비 둔화에 따른 매출 부진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이유로 아직 LG전자의 실적을 낙관하기에는 이른 시점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IT 수요 회복은 불확실성이 크며, 과거에도 상고하저 흐름이 반복됐다는 이유다.
LG전자는 최근 5년간 1분기에 호실적을 기록한 반면, 2분기부터는 부진한 흐름이 지속됐다. 여기에 업체 간 경쟁이 심화된다면 마케팅비가 급증할 여지도 있다.
“여전히 IT 산업 전반적으로 수요 둔화가 지속되고 있다. 소비 수요의 급반등을 예단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TV 등 가전 수요 회복을 논하기에는 이르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영업비용이 연말 유통 재고 건전화를 목적으로 크게 늘고, 1분기에 일시적으로 감소했다가 2분기부터 정상화될 여지도 있다. 이런 이유로 IT 기업들의 미래 실적에는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박형우 SK증권 애널리스트의 분석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05호 (2023.04.19~2023.04.2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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