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도사에게 롤을 묻다
17일 서울 마포구 DRX 사옥에서 롤도사 ‘베릴’ 조건희를 만났다. 스프링 시즌 부진 이유보다는 그의 ‘리그 오브 레전드(LoL)’ 이론에 대해 듣고 싶었다. 그에게 ‘LoL 땅따먹기론’ ‘1-3-1 스플릿 시대의 종말’ ‘정규 리그와 빅 게임의 차이점’을 질문했다.
LoL은 땅따먹기다
조건희는 LoL이 턴제 게임이자 자리 잡기 게임이라고 말한다. 그는 “해설진도 늘 미드 1차 포탑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지 않나”라고 반문하면서 “팀들이 미드 1차 포탑을 목숨 걸고 지키는 건, 이 포탑을 잃는 순간 상대방이 땅의 절반을 먹기 때문이다. 내가 누빌 수 있는 지역이 많아야 게임을 유리하게 풀어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오브젝트 한타 역시 결은 땅따먹기로 같다. 그는 “재작년에 배우면서 느꼈다. 한타를 할 때 다섯 명이 옹기종기 모여있으면 안 된다”라며 “상대방의 스킬을 같이 맞지 않도록 퍼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 “카사딘처럼 혼자 있어도 물리지 않는 챔피언이 있듯 챔피언 특성과 조합에 따라 다른 포지셔닝을 해야 하고,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걸 잘하는 팀이 한타를 잘하는 팀”이라고 덧붙였다.
한타 포지셔닝 능력은 후천적 학습으로 늘리기 어려운, 선천적인 재능에 가깝다고 조건희는 말했다. 그는 “수많은 상황에 따라 최적의 포지션이 달라지기 마련”이라면서 “스크림에서 피드백하기 어려운 것이 한타 포지셔닝이다. 감각적으로 타고나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론을 알아도 실행하기 위해선 평정심이 있어야 한다. 조건희는 “선수가 긴장하는 상황이 나온다. 대치 구도에서 상대의 스킬 사거리도 재야 한다. 내가 뒤를 돌아야 하는지, 정면에 있어야 하는지, 원거리 딜러를 지켜야 하는지도 생각해야 한다”면서 “혼잡한 상황 속에서 누가 더 집중력을 유지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가장 까다로웠던 한타 상대는 ‘바론 킬러’ T1
조건희가 데뷔 후 가장 애를 먹은 한타 상대는 T1이었다. 조건희는 “2021년 롤드컵부터의 T1, 2022년 스프링 시즌부터의 T1이 한타를 잘한다”면서 “특히 바론을 치는 타이밍이 까다롭다. 바론 싸움을 정말 잘한다. 버스트 각을 보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T1은 잘 해낸다. 바로 싸움으로 전환하는 순발력도 좋다”고 평가했다.
조건희는 T1 바론 버스트 패턴이 한동안 파훼되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그는 “T1이 바론을 치기 전 시야 장악을 잘한다. 때로는 상대 팀을 겁주는 플레이를 하거나, 오버 턴을 쓰기도 한다. 패턴이 정말 다양하다”면서 “게임 안에서 완벽한 정보가 있는 게 아니라면 파훼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T1이 메타를 잘 이용하고 있다고 봤다. 조건희는 “T1 챔피언이 하나도 안 보이면 ‘바론을 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아주 강하게 든다. 팀에 바론을 체크할 수단이 많으면 괜찮겠지만, 그럴 수 있는 메타가 아니다. 지난 시즌엔 그나마 애쉬 정도가 리스크 없이 바론 체크가 가능한 메타 픽이었다”고 말했다.
1-3-1 스플릿은 죽었다
조건희는 1-3-1 스플릿 회의론자다. 지난해 서머 시즌에 “1-3-1 스플릿을 선호하지 않는다”고 대놓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또 한 번 T1을 예시로 들면서 “작년과 올해 좋은 성적을 거뒀는데, 그들이 1-3-1을 거의 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1-3-1을 해야 하는 상황이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요즘 유행하는 조합과 챔피언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면서 ”1-3-1은 맵을 크게 쓰는 전략이다. 상대의 실력이 많이 떨어지는 게 아니라면 이득을 보기가 어렵다. 요즘엔 미드 웨이브가 빠르게 오니까 미드를 먼저 미는 쪽이 운영 주도권을 잡기가 편하다”고 밝혔다.
조건희는 2019년 G2 e스포츠가 1-3-1 운영의 시대를 끝냈다고 평가했다. 그는 “그해 롤드컵에서 G2가 1-3-1 운영을 하는 LCK 팀들을 다 잡아냈다고 생각한다. 결승전에서도 FPX가 1-3-1이 아닌, 맵을 한정적으로 활용하는 ‘도인비’ 김태상의 움직임을 통해서 우승을 이뤄냈다”면서 “2019년 롤드컵 이후 1-3-1 운영은 없어졌다”고 전했다.
이는 ‘라이너가 CS를 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그의 지론과도 연결되는 얘기다. 조건희는 “게임 안에 무수히 많은 상황이 존재한다. 우리가 강하게 치고 나갈 수 있는 타이밍과 그렇지 못한 타이밍이 있다. 또는 상대방과 대치해야 하는 타이밍도 있다”면서 “버려야 하는 라인이 필연적으로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어 “상대를 압박하고, 상대가 웅크리게끔 만드는 게 라이너의 역할이다. 팀적인 움직임을 통해서 이기는 것”이라면서 “당장 환산되는 골드보다도 상대를 밀어내는 움직임이 중요할 때가 있다”고 덧붙였다.
정보전(情報戰)서 필승하는 챔피언, ‘도피쵸’의 와드
그렇다면 지난 스프링 시즌의 DRX는 어떤 부분이 부족했을까. 조건희는 “스프링 시즌엔 바텀이 중요했는데, 바텀에서 사고가 자주 났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바텀 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나와 원거리 딜러가 잘해야 한다. 또 정글러가 턴을 맞춰서 함께 진출하고, 전장을 설정하는 플레이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플레이를 가장 잘하는 팀으로 스프링 시즌 챔피언을 꼽았다. 조건희는 “젠지 경기를 보면 상대 정글에서 정보를 많이 얻는다고 느낀다”면서 ‘도란’ 최현준과 ‘쵸비’ 정지훈의 숨은 공로에 주목했다.
조건희는 “‘도란’ 선수가 라인전을 리드하고 있으면 상대 정글에 와드를 박아준다. ‘쵸비’ 선수도 깊숙하게 와드를 박는다. 레드사이드에서 바위게 등장 지점보다도 아래쪽에 와드를 박는 것도 봤다”면서 “젠지가 상체 삼인방도 그렇고, 전반적으로 상대 움직임을 예측하기 쉽게끔 정보를 얻는 와드를 박는다”고 평가했다.
그는 결승전 직전 메타 역시 젠지를 향해 웃어줬다고 말했다. 조건희는 “‘피넛’ 한왕호 선수가 국내에서 마오카이를 가장 자주 쓰고, 잘 쓴다. 마오카이와 세주아니가 그 선수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면서 “덕분에 젠지가 결승전에서 유리했다고 생각한다”고 첨언했다.
국내 리그는 바텀 게임, 빅 게임은 상체 게임
조건희는 2019년 LCK 승격 이후 매년 롤드컵 무대를 밟고 있다. 4회 참가해서 2회 우승을 기록했다. 그는 지난달 초 “국내 대회에선 선수들이 긴장을 하지 않지만, 국제 대회는 다르다. 평소 100의 기량을 가진 선수도 70밖에 발휘하지 못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론으로 증명하긴 어렵지만, 큰 무대일수록 상체 선수들의 분전이 중요해진다는 걸 조건희는 체득했다. 그는 “정규 리그처럼 길게 이어지는 대회에선 바텀을 이기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국제 대회나 국내 대회의 큰 무대에서는 바텀이 터지는 경우가 거의 없다”면서 “보통 상체 싸움에서 승패가 결정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큰 무대일수록 대범한 플레이를 하기가 어려워지고, 그러다 보니 정규 리그처럼 바텀 라인전에서 승패가 정해지는 경우는 적다. 조건희는 “바텀이 터지면 최근 결승전 3세트처럼 원사이드 게임이 나온다. 워낙 치명적이다 보니까 큰 경기에서는 선수들도 평소처럼 공격적으로 게임을 하기가 어렵다.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게 있다”면서 “그래서 상체 싸움에서 웃는 쪽이 유리하다”고 말했다.
다만 “바텀과 달리 상체에서 (과감한) 플레이가 가능한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빅 게임 헌터’는 존재한다고 봤다. 조건희는 “큰 무대에서 잘하는 건 경험이 풍부하거나, 심리적 압박감에 대한 저항이 있는 선수들”이라면서 “분명 큰 무대에서 더 잘하는 선수가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자신에 대해서는 “뒤 없이 게임 하는 스타일”이라면서 “무대의 규모 같은 건 신경 쓰지 않는다”고 밝혔다.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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