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여기서 쉬라고요?… 0.96m 높이 경비원휴게실 논란
‘용역원휴게실’이라고 문패가 달린 공간은 세 걸음 만에 머리가 거의 천장에 닿았다. 이내 머리를 숙여야 했고 중간쯤부터는 허리를 굽히기 시작해 나중에는 거의 바닥에 앉은 수준으로 쪼그려 걸어도 몸을 웅크려야 들어갈 수 있었다. 입구 쪽에서 2.06m인 천고는 10걸음 정도 되는 맨 안쪽에서 0.96m까지 낮아졌다. 천장에는 시스템 에어컨이 달려 있었는데 그 높이가 1.63m에 불과했다. 키 170~180㎝ 정도의 남성이라면 이마나 얼굴이 부딪치는 수준이었다.
지난 16일 찾은 이곳은 서울 중구 대단지 신축 아파트 ‘힐스테이트 세운 센트럴’ 1단지 지하 1층에 경비원과 청소원이 쉬도록 마련된 공간이었다. 앞서 설계 오류와 입주 강행 등으로 논란(본보 2023년 4월 24일자 17면)을 빚은 이 아파트 내 용역원휴게실은 사람이 제대로 서 있을 수 없을 공간에 설치돼 있었다.
용역원휴게실이 이렇게 기이한 구조가 된 건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경사로(램프) 아래 지었기 때문이다. 이 단지와 무관한 A건설사 관계자는 “그 공간은 보통 비워두거나 자채 창고 등으로 활용한다”고 설명했다. 경비원이나 청소원 휴게실로 쓰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같은 층임에도 용역원휴게실 맞은편 상가들은 천장 높이가 모든 지점에서 2.25m 이상이었다.
천장이 가파르게 경사 진 탓에 수평으로 설치된 에어컨은 마치 시공을 하다만 듯 내부 설비가 절반 이상 노출돼 있었다. 에어컨과 천장 사이에 뚫린 곳을 막지 않아 천장 내부가 들여다 보였다. 시공사는 “에어컨을 수평으로 설치해야 해 어쩔 수 없이 드러나 보이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다른 B건설사 관계자는 “처음부터 아연판이나 스테인리스를 가공해서 그 모양대로 끼우면 되는 문제”라며 “아주 쉽게 마감을 할 수 있었을 텐데 그 부분이 아쉽다”고 말했다. 지금처럼 천장과 에어컨 사이로 크게 빈 틈이 생기면 냉난방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용역원휴게실 구조는 현행법상 휴게시설 의무화 기준에 어긋난다. 2022년 8월 18일 시행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은 휴게시설 천장 높이를 모든 지점에서 2.1m 이상이 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바닥 면적은 6㎡ 이상이어야 한다. 용역원휴게실 면적은 52.8㎡로 설치 기준을 넘어서지만 대부분 지점에서 천고가 기준에 한참 미달한다.
휴게시설 기준은 상시근로자 10명 이상이면서 아파트 경비원과 청소원·환경미화원 등 7개 취약직종 근로자가 2명 이상인 사업장에 적용된다. 휴게시설을 두지 않으면 1500만원, 설치 기준을 위반하면 10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힐스테이트 세운 센트럴 1단지에 근무하는 상시근로자는 환경미화원 5명, 수리기사 2명, 경비원 1명으로 모두 8명이다. 격일로 근무하는 야간조 경비원 2명을 포함하면 10명이다. 시행사는 상시근로자 수가 10명 미만이기 때문에 휴게시설 기준을 충족하지 않더라도 법적 책임은 없다는 입장이다.
현재 ‘힐스테이트 세운 센트럴’의 용역원휴게실은 문패만 붙였을 뿐 텅 빈 공간에 불과했다. 한 구석에 놓인 소화기 하나 말고는 아무 비품이 구비돼 있지 않았다. 휴게시설은 바닥을 좌식(온돌)으로 설치하지 않은 경우 의자를 둬야 한다. 물을 마실 수 있도록 식수 설비도 갖춰야 한다. 이 공간은 아직 사용하지 않는다는 게 시행사 설명이다.
시행사 관계자는 “2015년 준공승인과 2019년 사업승인 당시엔 관계 법령이 없어서 원설계에 휴게시설이 반영돼 있지 않았다”며 “다만 용역 근로자 휴게실 문제가 언론에 부각되고 법도 개정돼 임시방편으로 마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도의적으로 마련한 것이지 역시나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는 해명이다.
하지만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국민일보 질의에 “예전에 지어진 건물이든 현재 짓고 있는 건물이든 휴게시설은 의무적으로 갖춰야 한다”며 “휴게시설이 규정에 맞지 않을 경우 규정에 맞는 공간을 추가로 확보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휴게시설 설치에 예외가 있을 수 없다는 설명이다. 지난 17일 현장을 방문한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근로감독관도 이 아파트 용역원휴게실 천고가 설치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당초 “어떤 식으로 개선할지에 대해 아직 결론내려진 게 없다”던 시행사 측은 18일 “다목적실과 창고를 용역원휴게실로 쓰기로 합의했다”고 전해왔다. 시행사 관계자는 “관리사무소와 협의를 거쳐 추가로 다용도실과 팬룸공간을 개조해 숙식시설을 갖출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이달 말쯤 (기준에 맞는 휴게시설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허리를 펼 수 없는 기존 휴게공간은 창고 등 다른 용도로 전환하지 않고 환경미화원들이 점심식사를 하는 곳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시행사 관계자는 “문제가 되는 용역원휴게실은 잠을 해결하는 공간으로는 쓰이지 않을 것”이라며 “환경미화원이 1시간 동안 점심을 먹는 곳으로 쓸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명오 강창욱 기자 myung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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