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반도체 보조금 200곳 의향서, 삼성은?…“마라톤협상 이어질 듯”
미국 정부가 반도체법 지원금 신청 의향을 보인 기업이 200곳을 넘었다고 발표한 가운데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의 움직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 상무부는 지난 2월 반도체 생산보조금 신청 절차를 공개하며 기업들에 신청서 제출 최소 21일 전 의향서(SOI)를 내라고 안내한 바 있다.
18일 삼성전자·SK하이닉스 측은 “SOI 제출 여부를 확인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익명을 원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현재는 SOI 제출 단계이고 신청 기한이 정해지지 않은 만큼, 두 기업이 미 정부와 마라톤 협상을 이어나가며 끝까지 고심을 거듭할 것으로 보인다”며 “SK하이닉스의 경우 미국 사업 규모가 확정되지 않아 서두를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앞서 미 반도체법 프로그램 사무국은 지난 14일까지 35개 주(州)에서 200개 이상의 반도체 기업이 SOI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도 이날 CNBC 인터뷰에서 “200개 이상 기업이 반도체법 보조금 신청에 관심을 나타냈다”며 “다만 아직 신청 절차에 들어간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미 정부는 SOI 제출 기업 명단을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이들 기업이 반도체 생태계 전반에 걸쳐 있다고 밝혔다. 절반 이상은 최첨단 및 레거시(성숙) 공정, 패키징 등 제조시설 분야다. 나머지는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과 연구개발(R&D) 시설 관련이라는 설명이다.
사무국은 이어 반도체 제조시설 보조금을 원하는 모든 잠재적 기업이 계속해서 신청서를 내줄 것을 권장한다고 덧붙였다. 미 상무부는 지난달 31일부터 첨단 반도체 공장을 건설 희망 기업의 신청서를 접수하고 있으며, 레거시 공정이나 패키징 등 후공정 시설은 오는 6월 26일부터 신청서를 받는다. 신청서 접수 전 제출해야 하는 의향서에는 기업이 보조금을 받아 지으려고 하는 공장의 규모·위치·생산능력을 비롯해 생산제품, 투자 시기, 금액, 예상 고객 등을 상세히 밝히도록 했다.
실제로 미 정부는 보조금 신청 기업 평가를 위한 용역업체 발주 공고를 내기도 했다. ▶웨이퍼, 조립·패키징 등 장비의 시장 점유율과 지역별 판매 예측 정보 ▶반도체 및 장비 공급망의 가격·재고·성능 등 주요 지표 업데이트 ▶장비 수요, 가동률 등 반도체 공급망 운영에 대한 예측 ▶생산제품·노드·용량 등 300㎜ 팹의 세부분석 등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미 정부가 각 기업이 제출한 자료를 바탕으로 ‘현미경 검증’을 예고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반도체법 프로그램 사무국은 보조금 지원 독소조항으로 꼽혀온 초과이익 공유 이슈에 대해 “기업의 이익을 규제하려는 게 아니다”며 “전망치보다 과도한 이익이 있는 경우만 해당해 실제 발동 가능성이 매우 작다”고 밝혔다. 또 사무국 관계자는 블룸버그통신 인터뷰에서 미 반도체법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부인했다. 마이크 슈미트 총괄은 “동맹국·파트너와 협력해 더 견고한 글로벌 공급망을 만드는 게 목표”라며 “비건설적인 경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기업에 보육시설을 요구하는 등 보조금 수혜 요건이 까다롭다는 지적에 대해선 “TSMC·삼성 등의 성공은 노동 생산성 덕분이었다. 보육 서비스 제공으로 다양한 노동자가 반도체 산업에 진입하게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자사주 매입 제한 등 단서는 미국 반도체 산업의 지속 투자를 위한 것이라고 답했다.
실제로 미국 내에선 반도체법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 조 바이든 정부의 산업 정책이 성과를 보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해 미국 내 반도체·친환경 기술 투자가 전년보다 2배 이상 늘어나 2000억 달러(약 262조원)에 달했다고 보도했다. 투자액수가 2019년보다 약 20배 늘어났다는 분석이다.
김용석 성균관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는 “기업들이 보조금을 신청하지 않을 경우 미국에 ‘중국 편에 선다’는 시그널을 줄 수 있어 결국 SOI 제출은 시간 문제”라며 “다만 미 정부가 처음 내세운 조건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으므로 협상을 이어가야 한다. 미 정부는 ‘세금을 허투루 쓰지 않는다’는 시그널을 자국민에게 준 것인데, 실질적으로 계약 단계에서는 까다로운 조건이 상당 부분 완화될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고석현 기자 ko.suk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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