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수 펑크’보다 물가 우려…유류세 인하 연장한 정부

김기환 2023. 4. 18.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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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주유소. 연합뉴스

세금은 거둬야 하는데, 물가는 틀어막아야 하는 갈림길에서 정부는 후자를 택했다. 기획재정부는 이달 말 종료하는 유류세(교통·환경·에너지세 등) 인하 조치를 8월 말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최근 ‘세수 펑크’ 우려에도 불구하고 국민 부담을 우선한 조치로 풀이된다. 김태정 기재부 환경에너지세제과장은 “주요 산유국 협의체인 OPEC+가 원유 감산을 발표한 이후 국제유가가 올라 국민의 유류비 부담을 경감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18일 기재부에 따르면 정부는 2021년 11월부터 유류세 한시 인하 조치를 시행 중이다. 지난해 4월까지 20%를 깎아줬고, 물가 부담이 커지자 같은 해 7월엔 인하 폭을 37%로 확대했다. 같은 해 12월엔 휘발유 인하율을 다시 25%로 축소했지만, 경유 인하율은 37%를 유지하고 있다. 18일 기준 L당 전국 평균 휘발유값은 1660원, 경유값은 1547원이다. 유류세는 각각 L당 615원, 369원이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정부가 유류세 인하를 두고 고심한 건 세수 부족을 우려해서다. 기재부는 유류세 인하 조치로 세수가 5조5000억원 줄어든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올해 세수 결손은 최소 2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2019년 이후 4년 만에 세수 결손이다. 3대 세목인 소득세·법인세·부가세 징수가 회복세를 타야 ‘세수 펑크’를 막을 수 있는데 전망이 어둡다. 올해 국내총생산(GDP)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1%대로 내려앉은 데다 자산시장과 기업 실적, 내수 경기 모두 빠르게 얼어붙고 있어서다.

이 때문에 기재부 안팎에선 인하 조치를 연장하되 인하 폭을 줄이는 방안이 거론됐다. 하지만 정부는 인하 폭조차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연장하기로 했다. 당정 협의 과정에서 물가 부담을 우려한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4.2%로 둔화시킨 ‘일등공신’은 1년 전보다 14.2% 하락한 석유류 가격이었다. 국제 유가가 오르는 상황에서 유류세마저 환원할 경우 가까스로 틀어막은 물가가 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기름값은 물가의 ‘바로미터’로 여길 만큼 소비자가 민감하게 여긴다”며 “정부가 유류세 환원에 따른 세수 증대 효과와 물가 안정을 두고 ‘계산기’를 두드린 결과 물가 안정을 선택했다”고 분석했다.

유류세 인하 연장 효과가 정부 기대대로 될지는 미지수다. OPEC+가 최근 감산 계획을 발표한 뒤 국제유가가 반등하기 시작했다. 국제유가는 2~3주 시차를 두고 주유소 기름값에 반영된다. 2008년 유류세를 내렸을 당시 국제 유가가 배럴당 140달러까지 급등하면서 기름값이 오히려 올랐다. 유류세 인하 혜택이 대형차를 갖거나 차를 여러 대 가진 고소득층에 집중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세수 확보에는 비상이 걸렸다. 연중 구멍 난 세수는 보통 한국은행 일시차입금, 재정증권 발행 등 ‘급전’을 당겨 막는다. 줄어든 세입에 맞춰 올해 지출 예산을 줄여서 다시 짜는(세입경정) 방안도 있다. 세수가 모자란 만큼 나랏빚을 늘릴 수도 있다. 하지만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가장 최근인 17일까지 “올해 세수 여건이 녹록지 않다”면서도 “(대응 방안으로)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대안이 마땅치 않다는 얘기다.

옥동석 인천대 무역학부 명예교수는 “나라 곳간을 지키는 취지의 ‘재정 준칙’ 마련도 지지부진한데 세수 펑크에 대응할 수 있는 카드(유류세 인하 정상화)를 정부 스스로 하나 줄였다”며 “경기 둔화 상황에서 증세로 돌아설 수 없는 만큼 재정 누수가 없는지 점검해 지출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유류세는 국제유가가 오르든 내리든 논란거리였다. 유가가 너무 오르면 물가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이유로, 유가가 폭락하면 유류세 때문에 기름값이 내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유류세를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대한석유협회가 202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기름값을 분석한 결과 한국의 유류세 비중은 56%(휘발유 기준)로 나타났다. 산유국인 미국(21.7%)은 물론이고, 한국 못지않게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일본(47.2%)보다 높았다. 스위스(55.4%)·독일(61.4%)처럼 물가 비싸고 환경 규제가 엄격한 유럽 국가와 비슷했다. 18일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넣은 직장인 박낙준(47)씨는 “세금 비중이 그렇게 높은지, 그동안 세금을 깎아줬는지도 몰랐다”고 말했다.

세종=조현숙·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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