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관중 앞 흥미진진... 여자 아이스하키 세계선수권 첫 승

박장식 2023. 4. 18.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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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세계선수권에서 이탈리아 상대 연장전 '극장 골'... 허은비 슈퍼 세이브 빛나

[박장식 기자]

 17일 수원 광교에서 열린 여자아이스하키 세계선수권대회 이탈리아전에서 선수들이 페이스오프를 하고 있다.
ⓒ 박장식
 
17일 수원 광교복합체육센터 아이스링크에서 개막한 2023 수원 여자아이스하키 1B디비전 세계선수권대회. 1400여 명의 관중이 찾은 가운데 펼쳐진 개막 경기에서 대한민국이 이탈리아를 상대로 짜릿한 극장 골을 터뜨리며 2대 1로 승리했다.

한국을 비롯해 영국·이탈리아·폴란드·카자흐스탄·슬로베니아가 출전해 상위 디비전으로의 승격이나, 하위 디비전으로의 강등이냐를 두고 다투는 이번 대회는 특히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에 의미가 막중하다. 한국이 여자 아이스하키 사상 최초로 1A디비전(2부)으로 승격할 수 있을지를 두고 홈에서 열전을 펼치기 때문이다.

한국은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 세계대회와 비교해 보더라도 더욱 나은 공격력과 실력으로 경기를 펼치며 승격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다. 특히 스물한 살 수문장 허은비(코네티컷대)의 슈퍼 세이브가 빛났다. 허은비는 마흔 개의 슈팅 중 서른 아홉 개의 슈팅을 막아내는 선방을 보이며 이날 경기 승리를 지켰다.

허은비가 막고, 김희원이 뚫었다

오후 7시 시작된 개막식 이후 진행된 한국과 이탈리아의 경기. 한국은 경기 초반부터 강한 공격력으로 이탈리아를 압박하고 들어갔다. 하지만 강한 압박에는 페널티가 뒤따랐다. 한국은 1피리어드에만 세 명의 선수가 페널티로 2분간 퇴장하며 어려움을 겪었지만, 상대에 골을 내주지 않으며 0-0으로 1피리어드를 마쳤다.

이어진 2피리어드, 첫 골은 한국의 몫이었다. 이은지가 난전 상황 박윤정이 쳐낸 퍽을 그대로 골대의 빈 자리에 꽂아넣으며 선제골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이탈리아가 아니었다. 발렌티나 베타리니가 쳐낸 퍽이 한국 골망을 뒤흔들며 다시 균형을 맞춘 것. 한국은 2피리어드를 1-1로 마쳤다.

3피리어드에는 주전 골리 허은비의 슈퍼 세이브가 빛났다. 허은비는 3피리어드에서 발생한 어려운 상황마다 몸을 던지고, 퍽을 손으로 잡는 등 슈퍼 세이브를 펼쳤다. 한국은 3피리어드에도 세 명이 페널티 아웃을 당하며 수적 열세에 놓였지만, 허은비가 슈퍼 세이브를 펼친 끝에 정규 시간동안 추가 실점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른바 '골든 골'이 걸린 연장전으로 경기가 이어졌다. 이탈리아가 정규 시간 종료 전 페널티를 내준 탓에 한국은 한 명 더 많은 선수로 연장전을 이끌어 갈 수 있었다. 5분 안에 누구 하나라도 골을 넣으면 경기가 바로 끝나기에 연장전은 팽팽하게 진행되었다.

연장전이 시작된 지 1분이 약간 지난 시각. 김희원이 받은 퍽을 이은지에게 건넸고, 이은지가 골대 정면에 선 김희원에 다시 퍽을 내줬다. 김희원은 순간의 빈 틈을 노려 골대에 퍽을 던졌고, 그 퍽이 그대로 골리 사이를 뚫고 골문을 뒤흔들었다. 대한민국이 승격 후보 이탈리아를 물리치는 순간이었다.

김희원은 이날 경기 세 번의 페널티 아웃을 기록했을 정도로 공격적인 플레이를 펼쳤다. 그런 난관 속에 마지막 골의 주인공이 된 것. 한국 선수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얼싸안으며 첫 경기 승리를 축하했다.

관중 1400여 명 운집... 평창 이후 '최다 관중'
 
 17일 수원 광교에서 열린 여자아이스하키 세계선수권대회 이탈리아전에서 승리한 대표팀 선수들이 서로를 얼싸안고 있다.
ⓒ 박장식
 
한편 이날 경기는 1400여 명의 관중들이 운집한 가운데에서 펼쳐졌다. 수원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안양에 연고지를 둔 HL 안양의 유니폼을 입은 팬들도 적잖았고, 아이스하키를 하는 어린이들을 둔 부모들도 적잖게 경기장을 찾아 경기장이 북적북적한 분위기가 되었다.

이날 개막전은 여자 아이스하키 대회로서는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 국내 최다 관중을 기록했다. 특히 수원시와 대한아이스하키협회 등이 대회를 앞두고 SNS를 비롯한 온라인 홍보, 그리고 현장 홍보에 공을 들인 것이 월요일 오후라는 악조건에도 '만원 관중'을 기록한 이유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강릉 등 다른 지역에서 열렸던 아이스하키 국제대회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관중석이 많지 않은 것이 오히려 관중들끼리 한데 모여 응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장내 아나운서의 호응에 관중들 역시 응답하면서 현장이 뜨거운 분위기를 이어간 것도 긍정적이었다.

116석 남짓이 준비된 유료 좌석 역시 현장에서만 발매한다는 핸디캡을 안았음에도 모든 좌석이 매진되었다. 데이패스와 응원 도구, 다과를 제공한 유료 좌석은 대한민국 대표팀 선수들을 테마로 만들어져 특별함을 더했다. 이렇듯 뜨거운 현장의 분위기에 협회 관계자도 "이렇게 많은 분들이 오실 줄 몰랐다"며 놀란 눈치다.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알리는 계기 되었으면"

대표팀 김도윤 감독은 "스코어를 조금 더 내고 득점을 만들려고 했는데 쉽게 풀리지 않았다. 페널티가 많아 어렵게 가더라"면서도, "허은비 선수의 세이브가 좋았고, 평소 (수적 열세가 발생하는) 페널티 킬링 상황 연습을 잘 한 덕분에 첫 경기 잘 푼 것 같다. 남은 경기 잘 풀어서 우승에 도전하겠다"고 승리 소감을 전했다.

김도윤 감독은 많은 관중의 방문에 대해서도 "평창 올림픽 이후로 여자 아이스하키가 침체기였는데, 이번 세계선수권을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를 널리 알리는 계기로 삼고 싶다"고 웃었다. 김 감독은 "선수들과의 대화를 통해 페널티 킬링을 줄이고, 득점도 준비하겠다"며, "잘 준비해서 관중 분들에게 재미 주겠다"고 남은 경기 운영 방법을 전했다.

'극장 골'로 이탈리아의 골망을 뒤흔들었던 김희원 선수는 "가장 어려운 경기인 이탈리아 전을 이겨서 너무 좋았다"며, "마지막 골은 내가 넣게 되었지만, 팀원들의 도움 덕분에 이겼기에 더욱 기분이 좋았다"고 웃었다. 그러면서도 김희원은 "페널티가 많아 초조했는데, 그래도 골로 만회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라고도 말했다.

김희원은 다음 경기 대비에 대해서도 "어떤 팀에 맞추어 준비한다기보다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우리는 공격적인 하키를 하는 팀이기 때문에 더 많은 득점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음 경기에서도 잘 해서 좋은 성적 내고 싶다"고 각오했다.

이날 40개의 슈팅 중 39개를 막아낸 허은비 선수는 그 사실을 전해 듣고 "정말요?"라며 깜짝 놀란 반응을 보였다. '슈퍼세이브'의 비결을 묻자 허은비는 "어떤 생각이 있었다기보다는, 혼전 상황이어서 내 팀을 위해 몸을 날려 막자는 생각을 했다"며 '비결'을 전했다.

허은비는 "2017년부터 언니들과 함께 경기에 나섰지만 성인 대표팀 주전으로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긴장되었다"면서도, "언니들이 떨려 하면 긴장하지 말라고 해주시는 등 잘 리드해주셔서 한 게임 한 게임 잘 따라가는 것 같다"며 웃었다. 허은비는 "남은 경기에서도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나서겠다"며 각오도 던졌다.

첫 경기에서 '잊을 수 없는 밤'을 보낸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18일 오후 7시 15분에 폴란드와 경기를 치른다. 폴란드와의 경기는 유튜브 등을 통해 중계될 예정이며, 누구나 무료 입장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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