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통하지 않는 낯선 땅에서 투병하는 것

윤일희 2023. 4. 18.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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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아의 나라> 서평

[윤일희 기자]

1980년 2만 5천의 몽족이 미국에 입국하자 논픽션 작가 앤 패티먼의 관심이 집중된다. 몽족은 중국에 살던 소수민족으로 어찌어찌 라오스까지 밀려나 집단생활을 해왔다. 척박한 환경에 적응하며 그럭저럭 삶을 영위해오던 이들에게 당시 급격히 확산되던 라오스의 공산주의는 고요히 살던 이들의 삶마저 위협하기에 이른다. 미국의 편에 서 공산정권에 저항하자 이들은 라오스의 반역자가 되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학살의 땅에서 탈출해야 했다. 천신만고 끝에 도망쳐 이른 곳이 미국이었다. 언어도 문화도 다른 이 땅에서 막막한 삶이 시작되었다.

<리아의 나라>라는 책 제목에 등장하는 리아는 1982년 캘리포니아주 센트럴밸리의 메세드 커뮤니티 의료센터(Merced Community Medical Center, 줄여서 MCMC)에서 태어났다. <리아의 나라>는 리아라는 아이의 뇌전증 발병부터 삶을 마칠 때까지를 기록한 셈인데, 필연적으로 몽족이라는 이질적 사회문화적 집단이 전혀 다른 서구 의료 문명 체계에 편입되며 겪는 충격과 소외와 무기력의 상처를 조명하게 된다. 제3자가 기록한 몽족 디아스포라라 할 수 있다.

저자가 견지하는 민족지학적 태도는 몽족과 리아의 투병을 패배와 좌절의 기록에 묶지 않고, 몽족의 문화와 전승된 의료 행위를 그들의 관점으로 이해하고 수용함으로써, 이질적 타문화 집단에게 무조건적으로 적용하는 서구 의료체제가 얼마나 비윤리적이고 반문명적인지를 드러낸다.

리부부(리아의 부모)는 리아의 병을 그들 나름의 방법으로 고쳐보고자 무던히 애쓴다. 서구 의료 문명 관점으로야 미개한 짓이라고 손가락질하겠지만, 그들도 병을 치료하는 나름의 체계가 있다. 갖은 약초로 약을 만들어 쓰고, 짐승을 바쳐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 몽족 샤먼의 도움을 받아 병을 유발하는 악의 기운을 걷어낸다.

몽족 샤먼의 전통 방식은 한국인에겐 낯설지 않다. 우리 전통 신앙체계에도 무당이 굿을 해 병마를 쫓아내는 방식이 있지 않은가. 우리도 일제시대를 기점으로 서구 의료가 도입되며 무당의 치료 기능을 미신화해 무력화시켰지만, 이들의 능력이 어떤 효능도 없다는 증거는 없다. 몽족이 샤먼에 의지하는 방식도 서구 의료적 관점에선 미개한 행위라 치부할 수 있지만, 치료의 본령이 환자를 끌어안고 정화시켜 회복시킨다는 것에 있다고 할 때, 샤먼의 치료 행위는 이를 믿는 사람에겐 행위 자체로 치료의 효과가 있다.

하지만 리아가 치료받은 MCMC는 몽족의 이질적 질병 치료 체계를 수용할 어떤 준비도 되어있지 않았다. 의사들은 우선 언어 소통 창구의 부재로 이들에게 적절한 투약 처방조차 내릴 수 없었다. 투약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이들을 전혀 신뢰하지 않게 되고 리부부가 오히려 리아의 병을 악화시킨다고 믿기에 이른다. 리아를 담당하던 의사는 마침내 리부부의 양육권을 박탈하고 리아를 위탁가정에 맡기는 폭력적 결정을 내리게 된다. 리부부의 입장에선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었다.

몽족은 공동체성이 매우 강하고 아이들을 소중히 여긴다. 그런 이들에게 아이를 빼앗기는 사태는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를 불신하게 만들었다. 실제로 몽족 난민이 미국에서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은 것은 미국 기관과의 갈등이었다. 언어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환경에서 이래라저래라 고압적으로 명령만 내리는 기관이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삶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 이들은 깊은 우울감과 두려움 공포 소외감 등으로 심각한 정신 질환을 겪으며 고통받았다.

이들이 겪는 고난을 보고 있자면, 앞선 세대의 한국인들이 낯선 땅에서 겪었을 모진 풍파와 지금 여기에서 이주민이나 난민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떠올리게 된다. 만주 러시아 하와이 멕시코 그리고 지금 전쟁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까지 역사의 격랑에 휘말려 떼밀리며 삶을 이어간 앞선 사람들은 어떻게 마음과 몸의 아픔을 견디고 살아갔을까. 그리고 지금 타국에서 아픈 몸을 가진 이들은 어떤 고통에 놓여있을까. 말이 통하지 않는 땅에서 아픈 것만큼 신산한 일이 또 있을까.

어떤 의료건 의료에는 통증에 대한 이해가 우선되어야 한다. 이 책에도 등장하는 아서 클라인먼은 질병의 신체화에 천착한 연구자로서, 질병 치료에 있어 의사는 모두 인류학자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그는 <우리의 아픔엔 서사가 있다>에서 모든 문화는 고유한 질병 서사를 가지고 있으며, 어떤 질병도 그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심리적 생물학적 유산과 무관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타 사회의 생활과 삶을 그들의 관점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 환자의 질병을 비로소 해석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떨까. 이주민 이백만이 넘는 우리 사회는 타사회인에 대한 어떤 의료적 태도가 있을까. 한국의 의료체계는 반세기 전 리아를 진료했던 MCMC의 의사들과 차이가 있을까. 대면진료 1분이 만연한 의료 환경에서 내국인에게도 야속한 의료가 이주민이나 난민에게 얼마나 더 얄궂을지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프다.

착잡하던 차 지난해 입국했던 아프가니스탄 특별 기여자들이 생각났다. 탈출해 목숨을 건졌지만 무슬림이 대부분인 이들은 먹는 것에서 언어까지 낯설고 막막했을 터다. 궁금해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그간에도 우여곡절이 많았던 듯하다. 인터뷰에 응한 일부 아프간인들은 긍정적이고 희망차 보였지만,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며 이들이 특별 기여자의 전부도 아니다.

울산에 정착한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며 새들처럼 조잘대고 웃는 모습은 보는 이의 마음을 안심시킨다. 이들이 하나같이 호소한 가장 큰 어려움은 언어였으며, 언어교육을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시켜주기를 가장 희망했다. 나는 이들이 한국어를 익히고 한국 문화에 익숙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들에게 적절한 의료적 행정적 법률적 통역지원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의 학교생활이 궁금한 아프간 부모는 교사와 어떻게 소통하겠는가.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겠지만 꼭 로마어를 써야 하는 건 아니다. 그들의 언어로도 의료적 행정적 법률적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문명국의 역할이며, 이 책이 이종 문화 간 의료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짚은 지점이기도 하다. 리아의 병을 악화시킨 건 영어를 못한 이주민의 잘못이 아니라, 이들이 통증을 설명하고 치료행위를 이해받을 통역 소통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MCMC가 의료 통역을 배치한 후 몽족에 대한 치료 효과가 급속히 진전된 것은 물론이다.

리아는 서른이 될 때까지 부모 곁에서 보살핌을 받다 세상을 떠났다. 부모라고는 하지만 실은 엄마 푸아 양의 지극한 돌봄이었다. 푸아 양은 늘 헌신적이었지만 보이지 않는 그의 고뇌와 슬픔을 외면해선 안 된다. 몽족은 강하게 결속된 공동체지만 대단히 가부장적이다. 저자는 몽족의 공동체성과 혼(魂)의 의료에 경의를 표했지만, 결국 공동체의 돌봄에 여성 특히 엄마의 헌신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분명한 한계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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