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자의 V토크] 코트 떠나는 '율대장' 김유리 "제가 뭐라고…"

김효경 2023. 4. 18.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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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리는 항상 코트 위에서 밝게 웃었다. 사진 한국배구연맹

"굳이 제가 뭐라고…"
18일 연락이 닿은 '전직 배구선수' 김유리의 목소리는 여전히 에너지 넘쳤다. GS칼텍스에서 보낸 7년을 포함해 14년의 선수 생활을 끝내는 심정을 덤덤하게 털어놓았다.

김유리는 올 시즌 무릎이 좋지 않아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시즌 초반엔 경기장에 나와 선수들을 응원하기도 했지만, 재활 치료만 받고 소속팀 훈련에 불참했다. 결국 시즌 도중 은퇴를 결심했다. 지난 16일에는 SNS로 팬들에게 은퇴 소식을 전했다.

김유리는 "지난해 12월에 결심했다. 차상현 감독님은 수술을 권하셨다. 병원 세 군데를 갔는데, 다 수술하라고 하면 계속하려고 했다. 그런데 한 군데에서만 추천했고, 두 곳은 '하면 손해'라고 했다. 아프면 좀 쉬고, 괜찮으면 하라고 권유했다. 솔직히 프로선수가 놀러나온 것도 아니고, 그럴 순 없으니까 그만두기로 했다"고 말했다.

동료들에게도 '은퇴'란 말을 직접 꺼내진 않았다. 그래서 뒤늦게 안 선수들도 있었다. 김유리는 "다 어린 친구이기도 하고, 굳이 남에게 얘기하는 성격이 아니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감독님이 '유리가 재활을 하고, 운동을 쉰다'고만 했지, 은퇴란 말을 안 하셨다"고 했다.

GS칼텍스 김유리. 사진 한국배구연맹

김유리는 "(오)세연이가 울면서 뛰쳐나갔다. 껌딱지처럼 붙어다니면서 제자로 키우던 아인데… 어린 마음에 그런 것 같다"며 "오히려 잘됐다고 한 친구들도 있었다. (부상 때문에)너무 힘들어한 걸 봤기 때문이다. '사람같이 두 발로 걸으라'고도 하더라. 어떤 후배는 '언니, 나랑 같이 하기로 했잖아'라고 아쉬워했다"고 전했다. 김유리는 "(GS칼텍스에서 함께 뛰었던 페퍼저축은행)이현은 '내가 많이 돈 벌어서 맛있는 걸 사주겠다'고 하더라. 잘 키웠다"고 웃었다.

차상현 감독도 선수들 못잖게 아쉬워했다. 차상현 감독은 "다른 놈도 아니고 김유리니까 나가기 전 날 소주 한 잔 했다. 안 볼 사이 아니니까 연락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김유리는 "감독님은 이별을 못한다. 나가는 선수들에게 섭섭한 마음을 잘 표현 못한다. '그래, 가라'고 하시는데 이해한다"고 말했다.

2010년 1라운드 전체 2순위로 흥국생명에 입단한 김유리는 2시즌 뒤 코트를 떠났다. 선배와의 불화가 원인이었다. 가정 형편상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실업팀에서 뛸 기회가 생겼다. 그리고 이정철 감독의 부름을 받아 IBK기업은행 유니폼을 입고 프로 무대로 돌아왔다. 2017년엔 FA 보상선수 지명, 트레이드를 거쳐 GS칼텍스에 정착했다.

김유리는 "다시 돌아오길 정말 잘 했다. 나간 사람을 불러주는 것도 감사하고, 금전적으로 집안 형편도 좋아졌다. 이정철 감독님께 감사한다. 선수들끼리 '정철이형'이라고 부르는데 훈련이 빡셌다. GS도 훈련량으로는 뒤지지 않는 팀이다. 잘 이겨낸 게 자랑스럽다"고 했다.

김유리는 통산 246경기를 뛰면서 977득점을 올렸다. 포스트시즌에는 31경기나 출전했다. 그는 "그래도 우승 경험이 많고, 챔프전에 많이 나간 게 만족스럽다. 봄 배구 한 번 하지 못하는 선수도 있고, 챔프전 문턱도 높은데 실력에 비해 쉽게 갔다"고 했다. 이어 "팀을 잘 만났다. IBK 기업은행에서도 우승했을 때도 좋았고, GS에서 트레블(컵대회·정규리그·챔프전 우승)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며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돈도 많이 벌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팬들은 김유리의 은퇴를 아쉬워했다. 화려하진 않아도 듬직하게 팀원들을 이끈 '율대장'의 리더십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코트가 아닌 웜업존에서 다른 선수들이 좋은 플레이를 했을 때도 누구보다 힘차게 응원해 분위기를 북돋았다. 김유리는 "팬들이 저를 왜 좋아하는지 생각해봤는데, 웃겨서 좋아하는 게 아닐까 싶다. 사람 냄새 난다는 말씀도 좋았다"고 했다.

후배들이 고맙다는 김유리는 "사실 빈말도 못하고, '팩트 폭력'도 잘 한다. 못 참고, 굳이 사실을 말하는 편인데 동생들이 너무 착했다. 후배들이 뭔가 잘 못했을 때 가만히 있지 않고 말을 하면, 다시 하지 않았다. 솔직한 마음을 다 털어놓고, 혼내기도 했는데 내가 들어주다 보니까 신뢰도 쌓였다. 그래서 다가와 준 것 같다"고 했다.

잊을 수 없는 장면도 있다. 2021년 2월 5일 흥국생명전 수훈 선수 인터뷰다. 김유리가 프로에 온 지 10년 만에 한 첫 인터뷰였고, 한유미 해설위원과 김유리는 예전 이야기를 하다 눈물을 펑펑 흘렸다. GS 동료들과 스태프들도 모두 김유리를 둘러싸고 함께 기뻐하고, 눈물 흘렸다.

2021년 수훈 선수 인터뷰에서 눈물 흘리는 김유리(오른쪽)와 한유미 해설위원. KBS N 스포츠 중계화면 캡처


김유리는 "아직도 그 영상을 못 본다. 시도는 해봤는데 눈물이 아직도 난다. 내가 불쌍해 보인다"며 "좋은데, 안 되보이더라구요. 남들 다하는 건 못해보고 늦게 해서 그랬나보다"고 했다.

5월까지 재활 치료를 받을 예정인 김유리는 아직 제2의 인생을 그리는 중이다. 김유리는 "부담도 있고, '굳이 내가 뭐라고 은퇴하면서 인터뷰를 할까'란 마음도 들어서 처음엔 인터뷰를 사양했다"고 털어놓으며 "몇 달 동안 고민하고 있는데 나는 말을 잘 하는 것도 아니고, 지식도 많지 않아 지도자가 어울릴까도 싶다"고 했다.

말이야 그렇게 하지만, 김유리는 내일을 향한 걸음을 조금씩 뗐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지도자 자격증도 따고, 대학도 졸업했다. 최근엔 컴퓨터 학원을 다니면서 컴퓨터활용능력 자격증 시험도 준비하고 있다. 김유리는 "배구를 안 한지 5개월이 넘었는데, 답답하다. 재활이 끝나면 그때부터는 진로를 찾아보지 않을까"라고 했다. 코트 위에서 밝게 웃었던 그의 미소처럼, 다가올 미래도 밝을 거란 예감이 들었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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