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미안해" 부부보다 어른스러운 7살 딸의 자책

이준목 2023. 4. 18.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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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MBC 부부상담 프로그램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

[이준목 기자]

사회적으로 성인이 되고 가정을 꾸리고 부모가 된다고 해서 모두가 그냥 '어른'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진정한 어른의 자격이란 자신이 내린 선택의 무게를 깨닫고 책임을 질줄 아는 것이다. 준비안된 어린 나이에 갑작스레 짊어진 인생의 무게을 감당하지 못하고 어른과 아이의 경계선에 놓여버린 '금쪽이 부부'의 이야기가 시청자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4월 17일 방송된 MBC 부부상담 프로그램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에는 '당신이랑 결혼해서 너무 억울해-금쪽이 부부'편이 그려졌다.

결혼 10년 차, 광주에서 두 자녀를 둔 황희도-송지예 부부는 20대 초반에 만나 한 달 만에 동거에 돌입했고, 아이가 생기면서 8개월 만에 속전속결로 결혼까지 이르렀다. 특이하게도 이날 방송에 사연을 신청하게 된 계기는 당사자인 부부가 아닌, 바로 올해 만 7살인 첫째 딸의 적극적인 권유 때문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아이는 방송을 보고 부모에게 "엄마 아빠도 그만 싸우고 여기 한번 나가봐"라고 이야기했다고. 패널들은 아직 어린 아이의 눈에도 방송에서 다투는 어른들의 모습이 엄마-아빠와 똑같아 보였다는 이야기에, 놀라워 하면서도 한편으로 안타까워했다. 부부 역시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여 고개를 숙였다.

부부의 일상이 공개됐다. 비닐하우스 제작일을 하는 남편은 퇴근 후에도 집안일부터 식사 준비, 육아까지 능숙하게 소화하며 부지런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아내는 그리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남편이 잘 도와준다"는 말을 듣는 게 억울하다"고 지적하며 "남편은 먹는 것처럼 본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만 도와준다"는 불만을 토로했다. 실제로 가사일을 돕기 시작한 것도 얼마되지 않았다고.
 
 MBC 부부상담 프로그램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 한 장면.
ⓒ MBC
 
알고보니 남편은 "여자는 집안살림하면서 아이 키우는 게 주부라고 생각한다"며 젊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가부장적인 면모를 드러내며 패널들을 또 한번 놀라게 했다. 여기에 남편은 "아내는 저랑 너무 다르다, 아내는 완벽주의이고 나는 설렁설렁하는 편"이라고 성향이 전혀 다르다고 자주 부딪히는 이유를 설명했다.

건강이 좋지 않은 아내는 우울증-불안장애-신경안정제 등 여러 가지 약을 한꺼번에 복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내는 "몸이 망가진 게 모두 남편을 만나고 나서 이렇게 된 것 같다"고 주장하며 쌓인 감정을 드러냈다. 

부부는 옷장정리 문제부터 저녁식사 준비까지 사소한 일로 계속해서 충돌하며 아슬아슬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그리고 첫째 딸은 부모가 언쟁을 벌일 때마다 눈치를 보기 바빴다.

식사시간에 남편과 딸이 조곤조곤 이야기를 주고받는 와중에, 아내는 중간에 끼어들어 대화를 끊어버리고 남편에게 저녁식사 준비가 늦어진 이유를 계속 추궁해댔다. 토라진 아이가 "내가 먼저 이야기하고 있었잖아"라며 서운한 기색을 드러냈지만, 정작 부부는 말싸움을 벌이느라 아이의 반응을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심통이 난 아이는 발을 뻗다가 실수로 음식 용기 뚜껑을 걷어찼다. 그러자 가뜩이나 예민해져있던 남편과 아내는 일제히 정색하고 아이를 노려봤다. 주눅이 든 아이가 "뚜껑이 있는 줄 몰랐다. 일부러 그런게 아니다"라고 변명했지만 남편은 계속해서 무서운 얼굴로 다그치기만 했다. 서러움이 북받친 아이는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내가 속사포처럼 끊임없이 자기 할말만 퍼붓는 스타일이라면, 남편은 가만히 있다가도 갑자기 욱하는 스타일이라고. 부부는 둘다 상처받은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주기는커녕, 잠시 후 또다시 언쟁을 벌이며 네 탓 공방을 이어갔다. 결국 스스로 울음을 그친 아이가 오히려 "싸우지 말라"며 어른들을 말리는 씁쓸한 풍경이 펼쳐졌다. 지켜보던 오은영과 패널들의 표정 모두 심각하게 굳어졌다.

급기야 아이는 "내가 괜히 태어나서 엄마, 아빠가 싸우는 것 같아"라는 놀라운 속마음을 고백하여 모두를 충격에 빠트렸다. 지켜보던 김응수는 "딸이 '오은영 리포트'에 사연을 신청한 건 그만큼 절실한 신호일 것"이라고 진단하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지켜보던 오은영은 "사람들은 누구나 날때부터 소중한 존재인데, 이 아이는 자신의 존재를 미안하다고 느낀다. 자신이 잘못해서 미안한 게 아니라 태어나서 미안해요라고 한다"며 안타까워 했다. 오은영은 "이 집에선 큰딸이 제일 어른 같다. 애들도 부부처럼은 안 싸운다. 아이는 아이다워야 한다. 아이가 자기 나이보다 어른스러우면 전 조금 걱정한다. 큰딸이 너무 어른스럽다"고 걱정했다.

이어 식사 자리의 상황을 분석하며 "부부는 둘 다 인상을 쓰고 있었고 딸이 분위기를 바꾸려고 애를 쓰고 있다. 그런데 엄마가 아이의 말을 무시하고 아빠에게 화를 낸거다"라고 짚으며 "속상한 아이가 작은 실수를 하니까 날벼락이 떨어졌다. 어른들은 속상한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는데, 막상 아이의 투정은 전혀 받아주지 않는다"고 두 부부의 똑같이 미성숙하고 이기적인 모습을 꼬집었다.

오은영은 "자존감이 높은 아이가 되기 위해서는, 부모가 지도할때도 아이가 잘못하는 않은 부분이나 이해가 되는 아이의 감정을 무시하면 안 된다. 그 정당성을 인정해주지 않으면 아이에게는 큰 일"이라고 단언했다.

특히 아내에게는 "아이의 아픔보다 본인이 힘듦이 우선인 것 같다. 아이가 자책하는 감정을 표현하는데도 엄마가 '쓸데없는 말 하지마'라고 일축한 것은 '너도 힘들겠지만 내가 너무 힘드니까 그만해'라는 뜻'이라고 해석하며 "그러면 아이는 내가 부모를 위하는 노력과 감정도 모두 쓸데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감정의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한 아이는 자라면서 자신의 감정을 의심하고 검열하게 된다. 아이가 그렇게 크기를 원하시냐?"라며 아내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이어진 영상에서도 부부의 갈등은 계속됐다. 둘째 아이가 아픈 상황에서 남편은 저녁을 차려놓고 친구들과 술 약속이 있어서 나가봐야 한다고 통보했다. 아내는 아이가 아픈데 꼭 술자리에 가야 하냐며 분노했다. 남편은 남편대로 자신을 전혀 이해해주지 않는 아내에게 답답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거실에서 부부의 다툼 소리를 듣던 첫째 딸은 눈을 감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남편은 마지못해 아내 앞에서 약속을 취소하는 듯 했지만, 잠시 나갔다 온다면서 그 길로 택시를 타고 술자리로 향했다. 아이가 분수토를 할 정도로 상태가 악화되자 아내가 다급하게 전화를 걸었지만 놀랍게도 남편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결국 응급실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아내는 남편에게 "네가 총각이냐?", "우리는 부모 자격이 없다"며 10년 동안 참아왔던 울분을 토해냈다.

알고보니 아내는 이전에 자신이 아플 때도 무심한 남편에게 외면받았던 아픔이 있었다. 아내는 결혼과 출산 후 불과 24세라는 꽃다운 나이에 자궁경부암 진단을 받았던 가슴아픈 사연을 고백했다. 당시 아내가 심상치 않은 고통을 여러 번 호소했으나 남편은 병원에 같이 가 달라는 부탁을 번번이 거절했다고.

남편은 아내가 평소 꾀병이 심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며 "제가 아픈 게 아니니까 신경을 못 쓰게 되더라"는 어처구니없는 답변을 내놓았다. 아내는 병원에서 암 진단을 받고 "조금 빨리 왔다면 약물로도 치료가 가능했을 텐데"라는 이야기를 듣고나서 절망에 빠졌던 순간을 회상하며 끝내 눈물을 흘렸다. 아내의 마음 속에 남편 때문에 이 모든 비극이 시작되었다는 원망이 깊이 새겨진 진짜 이유였다.

부부의 모습을 지켜본 오은영은 남편에 대해서는 "자신의 의지로 일궈낸 성공에 대한 자긍심이 강하다 보니 그 잣대를 가족에게까지 적용하다 보면 오해와 섭섭함이 쌓이게 된다.고 분석하며 "남편에게 아내가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그랬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내가 건강상 큰 위기가 왔을 때는 '당신의 인생에 내가 소중한 사람이 아니구나'라는 서운함이 대못이 되어 아직까지 빠지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MBC 부부상담 프로그램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 한 장면.
ⓒ MBC
 
한편으로 오은영은 부부의 현재 모습을 똑같은 '억울이들'이라고 정의했다.부부가 모든 잘못을 서로의 탓으로만 돌리며 자신의 억울함만을 주장하기에 바쁘다는 것. 아내는 만일 남편을 안 만났더라면, 만일 결혼해서 광주에 안 내려갔더라면. 커리어도 쌓고 일을 하며 아프지도 않았을 텐데라는 억울함이 결국 화살이 되어 남편에게 향하여 끊임없이 달달 볶게 된다. 또한 남편은 남편대로 열심히 사는데 집에 오면 매일 혼나고 자유도 없다는 억울함을 느낀다.

오은영은 부부를 위한 솔루션으로 "지금의 이 갈등과 억울함은 아이가 생겨서도 아니고 남편 때문도 아니고 두 사람이 사랑해서 같이 인생을 살기로 '스스로' 결정한 거다"라고 일깨워주며 "두 사람은 자신의 결정에 책임을 지고 부모로서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거다. 협박받은 것이 아닌 본인의 선택이기 때문에 억울해 할 필요 없다"라고 조언했다.

특히 아내에게는 "아플 때 배우자가 옆에서 돌봐주고 위로해 줘야 하는 건 맞지만 이것이 모두 남편 때문이라는 억울함은 이제 내려놓고 가야하지 않을까"라고 당부했다. 남편에게도 "남편이 스스로 내린 선택이다. 그리고 그 선택과 결정은 잘하신 것이다. 지나온 세월을 탓하기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힘을 합쳐 잘 살아나갈까를 생각하셔야 된다.고 조언했다.
  
또한 부부의 갈등으로 가장 큰 상처를 받았을 첫째 딸을 위하여 오은영은 치유와 사과의 시간을 주문했다. 오은영은 "우리 두 사람은 정말 많이 사랑했어. 네가 그 사랑의 결과야. 엄마 아빠는 너를 너무 많이 사랑해. 네가 있어줘서 너무 좋았어. 힘든 이야기를 너무 많이해서 미안하다"라고 차근차근 아이에게 설명해줄 것을 당부했다. 비로소 자신들의 잘못을 돌아보게 된 부부는 울컥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함께 눈시울을 붉혔다.

마지막으로 부부는 큰 딸에게 보내는 영상편지를 통하여 "아빠가 너를 많이 사랑하고 미안해" "너는 엄마 아빠에게 찾아온 천사야"라며 그동안 못다한 마음을 전했다. 비로소 진짜 어른이자 부모가 되기 위한 한 걸음을 내딛게 된 부부는, 손을 마주잡고 가족의 새로운 출발을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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