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 학생들의 자유여행 위한 험난한 앱 탐험기
경증의 성인 발달장애인을 위한 대안학교의 특수교사로 11년째 근무하고 있습니다. 발달장애 학생들이 자립과 취업을 준비할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 및 수업을 합니다. 캠핑, 농사, 라이딩, 메타버스 등 여러 가지 도전을 하다 드디어 해외 자유여행까지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경증의 발달장애인들에게 필요한 교육에 대해 함께 나누고, 비슷한 어려움을 가진 사람들에게 힘이 되길 바라며 글을 씁니다. <기자말>
[권유정 기자]
우리를 배신한 구글맵 대신 대한민국을 점령한 카카오맵으로 두 번째 길 찾기 연습을 해보기로 했다. 일반화가 어려운 발달장애 학생들의 특성을 고려하여 되도록 실전과 같은 어플로 연습하고 싶었지만 경로 검색을 하지 않고 목적지와 나의 위치만 보며 방향을 잡아가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구글맵 활용은 일본에 도착해서 다시 연습 시간을 갖기로 하고, 우선 경로찾기를 해 표시된 길을 따라 가는 방법부터 연습하기로 했다.
▲ 업그레이드 된 두 번째 길 찾기. |
ⓒ 권유정 |
발달장애가 있다는 것은 어느 영역이든 한 부분 이상에서 명백한 제한을 갖고 있다는 것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히 발달이 지연되고, 오랜 시간에 걸쳐 충분히 노력한다면 정상발달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는 것과는 다르다. 아무리 노력해도, 극복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경증의 발달장애인을 교육할 때에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것과 노력하면 할 수 있는 영역, 도움이 필요한 영역을 분명히 구별하는 것이 필요하다. 스스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 또는 시간이 걸려도 충분히 반복하면 가능한 것을 미리 불가능하다 단정짓고 전적인 도움을 제공하면 안 된다. 작은 부분, 쉬운 과제라도 시도하고 반복하여 조금씩 성취하는 과정들이 자기효능감을 높이고 아이들의 세상을 넓어지게 한다. 공부는 그 성취의 결과보다도 '노력하는 태도'를 기르기 위해 꼭 필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노력해도 안 되는 영역이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특히 성인이 된 우리 아이들에게는 더더욱. 성취하기 너무 어려운 목표는 도전의식보다 좌절감을 부른다. 스무살이 넘도록 수년간 반복해도 할 수 없는 과제는, 계속 매달려도 이룰 수 있는 성취보다 잃어버리는 자존감이 더 많다.
경계선급의 인지 능력을 가진 우리 학생들 중에는 자신의 장애를 수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자신은 장애인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언젠가 장애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 경우 상당수 부모님들도 자녀의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감추려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마음은 기대에 못 미치는 현실에 번번이 실망하고 좌절할 수밖에 없다.
우리 학교 아이들 중에는 일반대학에 진학했다가 실패를 겪은 후에 혹은 취업을 앞두고 나니 막막해 뒤늦게 장애 진단을 받는 학생들이 종종 있다. 심지어 군대를 다녀온 케이스도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까지 그닥 발달이 지체되지 않거나 약간의 학습적인 문제만 보이다가 학년이 올라갈수록 갭이 생기며 결국 장애가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장애를 수용하지 못하고 심리적인 어려움을 가진 채 성인기가 되면 우울이나 조울증, 조현병 같은 정신질환이 발병하기도 한다. 중증의 발달장애보다 향후 직장생활이나 사회생활에 더 큰 어려움을 야기하는 문제다. 일반학교에 진학하고 비장애 학생들과 물리적으로 함께 있어도 대등한 친구관계를 맺기 어렵고 학업에서는 번번이 실패하니 건강한 마음을 갖기가 쉽지 않다. 자신을 오롯이 수용하지 못하면, 결코 행복할 수 없다.
우리 아이들의 발달은 모든 영역에서 고르지 않고, 어떤 부분에선 장애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또 어떤 부분에선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무리 해도 안 되기도 한다. 우영우처럼, 어떤 부분에선 비장애인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을 보이기도 한다. 서번트 증후군 등 특별한 능력을 가진 장애인들을 보며, 예술이나 체육 등 다른 재능을 찾아보려 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흔치는 않다. 대개 장애가 있다는 것은, 남들보다 부족한 부분이 있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다.
부족한 점을 인정하지 못하면 약점을 감추기 위해 시도하기 전에 포기하거나 할 수 있는 척 허세로 자신을 포장한다. 혹은 문제의 원인을 다른 곳으로 귀인하고 이런저런 변명으로 자신을 합리화한다. 약점을 솔직하게 노출하지 않으니 개선되기 어렵고,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았을 땐 장애보다 인성의 문제로 비춰지며 더 이해해주기 어렵게 한다.
발달장애인들이 직장에서 실패하는 이유가 능력보다 태도의 문제인 경우도 많다. 어렵다고 생각되어도 일단 도전해보는 것, 주어진 일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 관리자가 보든 안 보든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것, 어려움이 생겼을 때 적절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 잘못을 했을 때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 등이 직무능력 못지 않게 중요하게 길러야 하는 태도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사랑하는 것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충분히 소중하고 가치있다는 믿음이다. 부족해도, 장애가 있어도, 존재 자체로 귀중하며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는 확신을 주어야 한다.
물론 '장애인'이라는 말 자체가 비하로 사용되는 사회에서 장애가 있다는 것을 건강하게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다. 오죽하면 우리 아이들도 서로 싸울 때 장애인을 욕으로 쓰니 단어가 갖는 의미가 당사자와 가족들에겐 어떻게 다가올지 감히 짐작한다 말하기도 조심스러울 정도로 가슴 아픈 일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장애를 비하하고 조롱하는 사람들이 잘못된 것이지 장애를 가진 것이 잘못은 아니다.
가진 바 능력과 상관없이 사람은 모두 존중받기에 마땅하고, 충분히 가치 있다. 있는 그대로 자신을 수용할 때 건강한 자존감이 형성된다. 그렇게 확고한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가족과 사회가 함께 애써야 한다. 할 수 있는 영역에서는 최선을 다해 노력하되 부족한 부분은 인정하고 대안을 찾을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돈 계산을 아무리 배워도 안 된다면 계산기나 어플을 활용하는 방법, 카드를 사용하고 영수증을 보는 방법 등을 연습하고 필요하면 적당한 대상에게 적절하게 도움도 요청할 수 있어야 한다. 돈 계산을 못할 지라도, 나는 너무나 소중하고 귀한 사람이다. 그래야 정말 행복하게, 건강하게 삶을 꾸려갈 수 있다.
각자의 능력 안에서, 각자의 속도로
공간지각에 어려움이 있는 아이들은 지도를 보며 자신의 위치를 알고 목적지를 찾아가는 것이 쉽지 않다. 등하교 등 자주 가는 길을 반복해서 기억하는 것은 충분히 연습하면 가능할 수 있겠지만 낯선 길에서 방향을 찾는 건 또다른 영역의 문제다.
그렇다고 아예 안 해볼 순 없으니 대안으로 길을 잃었을 때 자신의 위치를 공유하는 법을 가르쳤다. 카카오맵에는 카톡 친구에게 위치를 공유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 다들 카카오톡을 사용하는 지라 계정 로그인도 간편했고, 위치 공유도 한 번만 사용동의하면 쉽게 할 수 있었다. 구글맵에도 비슷한 기능이 있는데, 구글은 메세지로 전송이 되어 꼭 로밍된 휴대폰이 필요하다. 반면 카카오맵은 톡으로 전송이 되어 데이터만 연결되면 사용할 수 있다.
이 글을 보는 개발자들이 있다면 이런 아쉬움들이 보완된 어플을 만들어주면 참 좋겠다.
▲ 위치를 공유하면 서로 어디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
ⓒ 권유정 |
도보로 15~20분 내에 거리로 도시 외곽을 돌며, 각 학생별 특성을 고려해 한 명씩 내려주었다. 체력이 좋고 길 찾기가 원활한 아이는 조금 더 멀고 구석진 곳에, 움직임이 불편하거나 길 찾기가 덜 능숙한 아이는 비교적 가까운 대로변에. 아직 지도보기가 어려운 아이들은 지난주처럼 한 곳에 모여 각자 다른 목적지를 찾아가 인증샷을 찍어오게 했다. 학생들의 능력을 파악하고, 개인차에 맞추어 적당한 난이도를 설정하는 건 늘 고민해야 하는 문제다.
도시 곳곳에 떨군 아이들은 모두 성공적으로 미션을 완수하고 귀환했다. 첫번째 미션은 실패하여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지만 두번째 미션은 성공하여 의기양양하게 걸어온 아이도 있다. 지도보기를 확실하게 습득했는지 한 주만에 눈에 띄는 발전을 이뤄낸 아이들도 몇 있었다. 처음 입학했을 때는 지하철도 혼자 못 탔었는데, 이제는 지도 보고 길 찾기까지 성공한 아이를 칭찬하자 자랑스럽게 대답한다.
"그땐 안 해봐서 못 했던 거고, 지금은 연습 많이 해서 할 수 있어요."
크게, 또 작게 성장한 모든 아이들이 대견했던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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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brunch.co.kr/@h-teacher) ‘발달장애 대학생들과 해외 자유여행 도전기’에도 게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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