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문의 진심 합심] 힘들 때 멈춰도 돼, 우린 기다릴 수 있어

차승윤 2023. 4. 18.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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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거 잭 그레인키도 신인 시절 마음의 이슈로 팀을 떠나기도 했다.AFP=연합뉴스


스포츠 선수 A의 소식을 최근 들었습니다. 좋은 결과였습니다. 큰 기록은 아니지만 힘든 시간 잘 견딘 그에게, 보고 싶다고 종종 연락하고 이해해 준 동료에게, 기다려 준 팀에게는 커다란 의미가 있습니다. 한때 팀을 완전히 떠나 방황했던 A였기 때문입니다. 프라이버시를 위해 그의 이름을 밝히진 않겠습니다. A의 스토리에서 그를 다시 세운 멈춤, 그리고 선택에 대해 생각해 보려 합니다.

한때 "세상이 나를 이용하는 것만 같다"며 뛰쳐 나간 그였습니다. 멋진 운동화를 수집하는 취미가 있는 그는 프로 팀에서의 생활이 불편했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 '답답하다'며 택시를 잡아타고 훌쩍 다른 지역으로 떠나기도 했습니다. 룸메이트에게 '전화 좀 하고 오겠다'는 말만 남긴 채 짐도 챙기지 않고 사라진 것이었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그는 6~7개월 정도를 쉽니다. 선수로 뛰기까진 1년 넘게 걸렸습니다. 처음엔 얼마나 팀을 떠날지 몰랐습니다. 팀도 그를 놓아 주기로 했으나 시간을 얼마나 줄지 전혀 가늠할 수 없었습니다. 두세달일지, 1년이 될지, 돌아오지 못하는 것도 고려했습니다. '열심히 하는 다른 팀원과 형평성을 생각해야 한다' '진짜 그만두면 누가 책임지나' 등의 이슈도 나왔습니다. A의 복잡한 가족사, 그의 성격, 동료와의 불화여부 등 원인이 무엇인지 찾아 다녔습니다.

그는 운동에서 손을 뗐습니다. 4개월쯤 지나 안부 확인차 그를 만난 팀장은 "근육이 완전히 빠져 일반인처럼 변했지만 얼굴이 밝은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회사에 알립니다. A는 떠나 있는 동안 여행을 종종 다녔다고 합니다. 특히 어릴 때 진심으로 따랐던 친척 어른 산소도 찾았다고 하네요. 

팀은 그에게 한가지 조건을 겁니다. 마음 전문가 B선생님을 한달에 한번 만나기로 말이죠. A는 그것만큼은 잘 지킵니다. 면담은 비밀유지가 전제여서 팀에는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A의 상황을 궁금해 하는 팀 앞으로 B선생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본인이 말하지 않으면 스포츠 이야기는 묻지 않는다. 얼마나 떠나 있을지 A의 선택으로 맡기자. 고민 끝에 그만둔다고 A가 결심한다면 그도, 팀도 미련없이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자기 인생을 충분히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더라." B선생님은 "원인이 무엇인지 따지지 마라"고 덧붙입니다.

6개월에 접어들 무렵, A가 팀으로 돌아오고 싶어한단 소식을 받습니다. 이후 A는 담당 팀장을 만나 "무대에 선 다른 동기들을 떨어져서 보는데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었어요"라고 합니다. 다른 일도 해보며 진짜 하고 싶은 일을 느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그렇게 복귀를 준비하지만 몇가지 우여곡절을 또 거칩니다. 정말로 그가 팀에 돌아온 날, 별다른 이벤트 없이 그냥 스케줄에 따르게 합니다. 그냥 매일 함께 했던 것 처럼 말이죠. 팀의 리더들도 그를 따로 면담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니, 어땠니" 묻지도 않기로 정했습니다. 혹시라도 A가 이유를 둘러댄다면 그것이 죄의식 같은 부담으로 남을 수 있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냥 지켜보기로 합니다.

심적 부담을 극복한 그레인키는 올 시즌 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마운드에 오르고 있다. AFP=연합뉴스


어른의 걱정은 기우였습니다. A는 잘 적응합니다. 미국 메이저리그에 비슷한 사례가 있습니다. 류현진 선수의 다저스 시절 동료이던 잭 그레인키(40·캔자스시티 로열스) 입니다. 그레인키도 데뷔 초 팀을 떠났다 돌아옵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프로 스포츠계에 유망주들의 멈춤이 최근 부쩍 늘었다고 합니다. 돌아오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요즘 일반 직장에서도 그렇지 않습니까. '막상 해보니 마음에 안든다' '내가 할 일 외에 다른 사람과의 관계까지 신경써야 하나'라며 당당하게 떠나고 있습니다.

힘들 땐 멈춰도 됩니다. 차가 문제가 있어 멈추는게 아니라 방향을 바꾸려고, 쉬려고, 어떤 이유로 휴게소에 들어가는 것 처럼 말이죠. 멈춤은 결과가 아닌 리셋의 과정입니다. 이를 다양하게 탐색시켜 줄 전문가를 만나는 것도 필요합니다. 조직이나 팀도 투자와 원인규명의 논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돌아오거나 포기하거나 선택을 이해하고 인정하면 됩니다. 민감성(sensitivity)의 시대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사람은 소중하니까요.

한국코치협회 인증코치 김종문

김종문은 중앙일보 기자 출신으로, 2011~2021년 NC 다이노스 야구단 프런트로 활동했다. 2018년 말 ‘꼴찌’팀 단장을 맡아 2년 뒤 창단 첫 우승팀으로 이끌었다. 현재 한국코치협회 인증코치(KAC)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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