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피재점 진달래 능선을 걷다
[이보환 기자]
▲ 오미재 충북 제천의 진산인 용두산에서 능선을 따라 피재점으로 가다보면 송한재를 만난다. |
ⓒ 이보환 |
어느 시인의 시 한 구절이 와닿는 계절이다. 어디 오는 게 꼭 사람들에게만 한정됐을까? 나무와 새, 꽃, 바람 소리도 그럴 것이다. 여기저기를 걸으며 그동안 모르고 지냈던 우리나라 사계절의 아름다움, 자연의 오묘함을 배운다. 매일 아침 베란다에서 보는 연두빛 나무새순이 하루가 다르게 선명해진다. 이렇게 시나브로 계절이 바뀐다는 것 역시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파가 심했던 겨울을 보내며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하게 봄을 기다린 탓도 있을 것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봄은 찾아왔다. 매년 그렇듯 생명체가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운다. 한결같은 자연이 좋고 듬직하다. 항상 그 자리에서 자기의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
제천의 진산인 용두산 자락 피재골에 진달래가 곱게 피었다는 소식에 지난 9일 배낭을 꾸렸다. 구운 달걀과 떡, 물도 챙겼다. 어제까지만해도 비바람으로 봄을 시샘하던 날씨가 거짓말처럼 화창하다. 겨울 등산복을 입고 왔는데 계산 착오다.
▲ 바위틈 아기 소나무 임도를 만드느라 깍은 절벽 바위 틈에 솔씨가 떨어져 아기 소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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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서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가 들린다. 무슨 일인가 돌아보니 어르신 몇분이 자전거를 타고 오신다. 여유 있게 오르는 모습을 보니 전기자전거라는 걸 알 수 있다. 마치 말을 타고 유람 중인 양반들 같다. 곧이어 페달을 힘차게 밟고 올라오는 이도 있다. 안장에서 엉덩이를 떼고 있는 힘을 다한다. 힘껏 바퀴를 구르는 뒷사람을 응원한다.
탁 트인 임도에서 바라보니 위쪽으로 용두산이 쏘옥 들어온다. 발아래 의림지와 제2의림지도 또렷하게 보인다. 건너편 까치산에도 봄꽃이 군데군데 피었다. 제2의림지로 불리는 비룡담 저수지는 제천시의 농업용수 보조수원이다. 농사용으로 1968년 착공하여 1970년 준공했다. 최근에는 주변에 둘레길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운동공간이 됐다.
송한재에서 오미재 방향으로 산을 오른다. 숲속 좁은 오솔길 곳곳에 작은 노란꽃이 활짝 폈다. 자세히 보니 그 모습이 노란 리본 같다. 순간 나도 모르게 날짜를 확인했다. '아! 가슴 아픈 그날이 다가오고 있구나.' 작고 여린 꽃을 밟고 싶지않아 조심스레 발을 내디뎠다. 푹신한 흙길을 느리게 걸으며 무거운 마음을 정리한다. 숲속 맞바람이 땀을 식혀준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다.
굵고 키가 큰 소나무로 숲이 빽빽하다. 울창한 산림을 보니 마음이 든든하다. 용이 승천하는 모양의 소나무는 이곳을 지키는 수호신 같다. 낙엽 부스러기가 흙을 덮어 폭신하다. 파란하늘과 어울리는 맑고 고운 새소리에 콧노래가 저절로 난다.
푸른 소나무와 짝을 이루는 진달래가 '녹의홍상'이다. 새색시같은 진달래는 생명력이 강하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쉽게 퍼진다. 꽃을 따서 먹기도 하는데 참꽃이라고 불린다. 누구나 어린시절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우리의 정서를 담고 있다.
계속되는 흙길에 발걸음이 신났다. 바람과 함께 전해지는 숲내음에 엔도르핀이 샘솟는다. 소나무 틈으로 숨은 진달래를 따라 걷다보니 군락지가 나타났다. 봄의 정취를 한껏 느낀다.
오미재가 다가오니 슬슬 배가 고파졌다. 배낭풀기 적당한 장소를 찾는다. 이른바 명당은 일단 평평하고 그늘이며 바람이 적어야 한다. 날씨가 춥지않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체온이 떨어질 수 있는 계절이다. 따라서 정상이 가까울수록 좋다. 음식을 먹은 뒤 비탈길을 오르는 것은 금물이기 때문이다.
▲ 진달래길 용두산~송한재~오미재~피재점을 지나는 길목 곳곳에 진달래가 산꾼들을 반겨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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