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인부터 전우원까지’…마약 수사 더딘 이유는?

공소사실 특정돼야 기소 가능
밀행성으로 증거 확보 난해
인력 보충, 범죄 급증 못미쳐

마약 투약 혐의를 받는 배우 유아인(본명 엄홍식)과 전두환 전 대통령 손자 전우원씨 등 체내 마약 성분이 검출되고 혐의를 일부 인정한 피의자들에 대한 경찰의 수사가 지연되자 '수사의지가 약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마약을 상습 투약한 것으로 의심되는 중대 사건인데도 구속영장 신청이 이뤄지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공소사실 특정이 어려운 점과 범죄 급증에 따른 인력 문제 등을 마약 수사가 더뎌지는 이유로 꼽았다.

대마·프로포폴·코카인·케타민 등 마약류 투약 혐의를 받는 배우 유아인(본명 엄홍식)이 지난달 27일 오후 경찰 조사를 마친 뒤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를 나서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이미지출처=연합뉴스]

전문가들은 모발 등에서 마약 성분이 검출된 것만으로는 혐의 입증이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박진실 변호사는 “공소사실 특정이 돼야 기소까지 이뤄질 수 있다. 검사 결과가 나오는 시간에 더해 마약 투약 시간과 장소, 방법 등을 보강 수사해야 하다 보니 수사가 더딘 경우가 있다”면서 “소변 검사에서 마약성분이 나왔다면 투약 시기가 일주일 이내로 특정이 가능해 상대적으로 기소가 용이하지만 모발 검사의 경우 최대 1년까지 투약 여부 확인을 할 수 있어 시기 특정을 위해 보완 수사할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체모 감정 결과 프로포폴·대마·코카인·케타민 등 마약류 4종이 검출된 유씨의 사례가 이와 유사하다. 경찰은 유씨 측이 대마 흡입 혐의 일부를 제외한 다른 의료용 마약류 투약 혐의를 부인하자 보완 수사로 방향을 선회하는 모습이다. 현재 경찰은 유씨와 마약류를 함께 투약한 공범 등을 상대로 한 수사를 진행 중이다.

마약 수사를 하는 한 경찰관은 “사법기관에서 국과수 모발 감정 결과나 자백 등 개개의 증거만으로는 무죄 판결을 내린 판례가 있다”며 “송치를 위해선 마약 획득 경로와 투약 시기, 장소까지 다 수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일반 시민들 입장에선 모발에서 마약 성분이 검출됐는데 왜 수사를 뭉개고 있냐는 오해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적인 장소에서 숨어서 저지르는 마약 범죄의 특성상 공소사실을 특정하기도 어렵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학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마약을 자택 등에서 혼자 혹은 지인들과 한다면 증거 수집이 쉽지 않다”면서 “마약 범죄를 흔히 피해자 없는 범죄라고 한다.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인 것이다. 피해자가 없으니 신고도 없고, 피해자가 있는 수사보다 어려움이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마약 범죄 증가 속도를 인력 보충으로 즉각 따라가긴 힘들다”며 “신종 마약이 많아지는 것도 수사 늦추는 요인 중 하나다. 절대적인 범죄 수도 늘어나는데 기술도 다양해져 시간이 더 걸리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전경수 한국마약범죄학회장은 “수년째 음지에서 마약이 점차 확대하고 있었다. 양지의 인력은 충원되지 않던 상황에서 곪아오던 문제가 터진 것”이라며 “신종 마약이 수천종류가 대두되는 상황에서 각 시도 차원에서 감정기관을 설치하고 전문가 양성을 위한 투자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중대한 사안임에도 구속영장 신청 한 번 없이 수사가 진행된 것에 대한 지적에는 불가피한 부분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 교수는 “형법은 불구속을 원칙으로 한다. 도주 우려와 재범의 가능성, 증거 인멸 가능성이 없다면 구속은 불가능하다”고 알렸다.

최태원 기자 skking@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