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헤어질 결심한 여자, '병맛' 코미디의 진수
[장혜령 기자]
▲ 영화 <킬링 로맨스> 스틸컷 |
ⓒ 롯데엔터테인먼트 |
딱 10년 전이다. <남자사용설명서>를 봤을 때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한국에서도 이런 영화가 나오는구나 놀랐던 경험이 떠올랐다. <남자사용설명서>는 2013년 이원석 감독의 데뷔작으로 당시에는 싸늘한 반응이었지만 이후 재평가받은 전설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다. 이때부터였을까. 오정세 특유의 능청스러움이 녹아들어갔고 캐릭터와 어울렸다. 오정세는 이후 대중적 인지도를 높여갔다.
자축이라도 하듯 <남자사용설명서>의 자뻑 스타 승재를 10년 만에 소환했다. 이로써 이원석 유니버스가 형성되는 순간이다. 오래전 둘은 '승재가 10년 후 뭐 하고 있을까' 사담을 나누다가 <킬링 로맨스>에 차용했다고 밝혔다. 감독에게 빈대 붙어살다가 영화도 망하고 찜질방을 차리지 않았을까 생각했다고 한다. 영화의 중반 부 찜질방 장면에서 승재가 깜짝 등장해 큰 웃음과 반가움을 선사한다.
<킬링 로맨스>는 10년 만에 하고 싶은 거 다 해 보라는 주문을 받았다는 이원석 감독의 신작이다. <남자사용설명서>의 틀에 웨스 앤더슨를 덧댄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눈이 아린 쨍한 파스텔 색감과 동화를 읽어주는 화자가 존재하는 액자식 형식이 인상적이다.
무엇보다 더 막강해진 저세상 텐션을 장착하고 이선균과 이하늬, 공명의 조합으로 완성했다. B급 취향 가득한 키치적 매력이 강점이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영화라는 말이 어울린다. 클리셰를 파괴하면서도 이야기를 해치지 않는 독특함이 살아 있다.
▲ 영화 <킬링 로맨스> 스틸컷 |
ⓒ 롯데엔터테인먼트 |
두 영화는 형제처럼 닮았으며 <킬링 로맨스>가 확장된 세계관을 취한다. 전작이 연애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번 작품은 동화를 빌어 결혼생활의 환상을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잘나가던 톱스타 여래(이하늬)는 발연기 조롱에 못 이겨 11년 만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한국을 떠난다. 이후 남태평양의 콸라섬에서 재벌 조나단(이선균)을 만나 결혼해 살다가 7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왕방울만한 다이아몬드 반지에 속았다. 목숨을 구해준 왕자님을 만나 행복한 동화 속 해피엔딩인 줄 알았건만 현실은 조나단의 가스라이팅과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처지다. 몇번이고 자유를 찾아 도망치려 했지만 도돌이표처럼 늘 제자리로 돌아오는 신세다. 어쩔 수 없이 모든 것을 체념한 채 조나단의 인형으로 살아가기로 다짐했다.
한편, 서울대 출신 집안에서 혼자만 4수 중인 범우(공명)는 과거 여래의 열혈 팬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옆집에 이사 온 여래와 친해져 매일 팬미팅하는 호사를 누리게 된다. 즐거운 나날도 잠시. 우연히 여래의 속사정을 알게 된 범우는 탈출을 위해 여러 작전을 펼치지만 자꾸만 수포로 돌아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 영화 <킬링 로맨스> 스틸컷 |
ⓒ 롯데엔터테인먼트 |
영화는 여래가 조나단과 이혼 아닌, 사별하고 싶은 과정을 마법처럼 그려낸다. 어디에도 없었던 괴상망측, 괴랄발랄한 수단과 방법으로 말이다. 뻔뻔함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뚝심이 오히려 신선해 병맛을 장르로 승화했다. 본인이 마이너한 취향인지 아닌지는 초반 20여 분에 단호히 판명된다. 불만이 터져 나오는 최근 한국 영화의 뻔한 공식이 지겨웠다면 기대 이상의 재미로 다가올 듯 싶다.
개봉시기도 특별했다. 매주 수요일이 신작 개봉일인 업계에서 금요일 개봉 후 바로 주말 관객을 맞았다. 입소문의 바로미터인 첫 주말 반응은 어땠을까. 개연성이 굳이 없어도 되는 실험정신으로 똘똘 뭉쳤지만 과한 비주얼과 톤앤매너 스토리의 괴리감을 부추길지도 모르겠다. 안타깝지만 이번에도 호불호 반응은 심하게 갈린 것 같다.
하지만 HOT의 '행복'이나 비의 '레이니즘'을 개사한 '여래이즘'이 반복적으로 나올 때마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따라 부르게 만드는 중독성이 만만치 않다. 한번 웃음 코드에 빠져들면 헤어 나오지 못할 정도다.
무엇보다 진심을 다해 당황스럽고 유치한 상황을 연기한 배우들의 호연이 잊히지 않는다. 다채로운 표정과 말투, 뮤지컬까지 소화한 이하늬와 잊을만하면 주문처럼 '이츠 굿'을 연발하는 이선균의 변신이 제 몫을 다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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